장웅 김운용
북한 장웅(왼쪽)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27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 VIP실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우리 같은 선배가 물러나야 후배들이 더 올라오지.(김운용),”

“(김운용) 선배도 계시지만 저도 이제 80이 다 돼서 손자,손녀들하고 낚시도 좀 다녀야죠.(장웅).”

과거 남북 체육 교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던 두 거목의 대화에서 끈끈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김운용(87)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겸 세계태권도평화통일지원재단(GTSF) 명예이사장과 북한 장웅(79) IOC 위원이 모처럼 저녁 자리를 함께하며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했다. 김 이사장과 장 위원은 27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더케이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전용원 GTSF 이사장, 천해성 통일부차관, 리용선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 등과 만찬을 가졌다. 김 이사장은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기념해 10년 만에 ITF를 이끌고 방한한 장 위원과 지난 24일 무주 태권도원 T1아레나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재회했으나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사흘 만에 서울에서 저녁 자리를 갖게 된 것이다. ITF 시범단은 28일 국기원에서 세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다.

남북 스포츠계 살아있는 전설인 김 이사장과 장 위원은 1990~2000년대 여러 차례 역사적인 체육 교류를 성사시킨 주역이다. 특히 사상 첫 올림픽 남북 동시 입장으로 기록되는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회자되는 일이다. 당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맡은 김 이사장은 장웅 당시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과 공동입장 합의를 끌어냈다. 남북 체육 교류 활성화를 공언한 문재인 정부는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북한의 참가는 물론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 북한 마식령 스키장 활용 등을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쏟아지고 있다. 17년 전 시드니올림픽 때와는 달리 남북 체육계 주요 현안을 다룰 수 있는 위치에서 한 발 물러선 두 사람이지만 여전히 양측 체육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만남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방콕아시안게임98 남북 소프트볼경기장 남북위원 만남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남북 소프트볼경기가 열린 스리나카린 위롯대학구장에서 만난 장웅(왼쪽), 김운용(가운데).  (스포츠서울DB)

만찬이 예정된 시간은 오후 7시. 김 이사장이 오후 6시25분께 먼저 도착해 VIP실로 이동했다. 장 위원은 약 10분 뒤에 도착해 김 이사장과 악수를 하며 웃었다. 이전까지 최근 남북 체육 이슈와 맞물려 불편한 심기를 보인 장 위원이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둘은 지난 2007년 장웅 당시 ITF 총재가 시범단을 이끌고 방한했을 때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오찬 회동을 한 적이 있다. 장 위원은 만나자마자 10년 전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김포공항에서 (북으로 돌아갈 때)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라며 “당시 (ITF 방한과 관련해서 당시 WTF 총재였던 김 이사장과 협약을 맺고) 대구에서 사인했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 이사장은 “뭐 그 때만 사인했느냐. (남북 체육 교류에 있어서) 여러 번 사인했지”라고 웃으며 화답했다. 그러면서 “이젠 (우리 같은) 선배가 물러나야 후배들이 올라오지. 선배가 해놓은 것을 후배들이 발전시켜야지”라고 말했다. 장 위원도 “맞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천 통일부 차관과 인사를 나눈 장 위원은 “통일부 차관 오래 하셨느냐”고 물었다. 천 차관이 “이번 달에 왔다”고 하자 “새 기운으로 한 번 멋있게 잘 해보시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천 차관이 “장 위원께서 도와주셔야 한다”고 하자 “초야지신(草野之臣)의 마음이다. (김운용) 선배도 여기 계시지만 나도 80이 다 돼서 손자, 손녀하고 낚시도 좀 다니고 해야 한다”고 껄껄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찬 자리가 이어졌다.

장웅
지난 2000년 9월13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IOC총회 개막식에서 사 마 란 치 위원장이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한 동시입장을 발표한뒤 로비에서 김운용(좌),장웅 남북한 IOC위원이 함께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김 이사장은 이날 만찬 전 취재진과 만나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평창의 북한 참가건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IOC 룰에 맞춰가야지 (정치적인) 쇼로는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IOC는 물론 각 국제경기연맹이 ‘OK’를 해야한다. 대통령께서 여러가지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으나 IOC와 협의를 잘 하면 어느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7년 전 시드니 남북 동시 입장에 대해서는 “갑자기 된 게 아니다. 직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에서 내가 제안을 했고 OK 사인을 받았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방북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협의했고 시드니에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 장웅 위원과 3일간 7차례 회의 끝에 해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시간은 촉박했다. 그러나 남북 분위기가 좋지 않았냐. 김대중 대통령과 북이 가까워서 문화체육 뿐 아니라 정치, 경제 교류가 잘 됐다”고 말했다. 도움을 줄만한 일이 없겠느냐는 말엔 “나야 뭐 은퇴한 사람”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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