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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한강이 바라보이는 용산 철도구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 한국야구위원회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 한국에서 경기를 치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한국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인연은 굉장히 깊다. 한국에 프로야구가 존재하기 한참 전부터 메이저리그 특급 선수들이 한국을 찾아 친선경기를 펼쳤다. 무려 95년 전인 1922년 12월 8일 메이저리그 선수단이 한국 선수들과 용산 만철구장에서 맞대결을 벌였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단은 전 세계에 야구를 보급하기 위해 일본 도쿄와 중국 상하이에 친선경기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도쿄 경기를 마치고 상하이를 향하기에 앞서 한국 야구선수의 설득으로 갑작스럽게 한미전이 성사됐다. YMCA 야구단 선수 이원용과 동경 유학생 학우회 야구부 박석윤이 일본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단과 교섭해 극적으로 친선경기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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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선청년회와 친선경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들. 제공 | 한국야구위원회

한국을 찾은 메이저리그 선수단에는 특급 선수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 양키스 투수 웨이트 호이트와 보스턴 레드삭스 투수 허브 페낙, 뉴욕 자이언츠 1루수 조지 켈리 등이 팀의 중심을 잡았다. 세 선수 모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빼어난 커리어를 쌓았다. 특히 호이트는 한국을 찾은 해 19승 12패 방어율 3.43으로 마운드를 굳건히 지켰다. 베이브 루스, 조 부시와 함께 양키스를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려놓은 주역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단은 경기를 마친 후 저녁에 현재 종로 피카디리 극장이 자리한 명월관에서 벌어진 환영식에 참여한 뒤 이튿날 오전 10시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향했다.

1922년 메이저리그 선수단 출전료는 당시 돈으로 1000원이었다. 이원용은 메이저리그 선수단 허브 헌터 감독에게 출전료 1000원과 서울 체재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최초의 야구 한미전을 성사시켰다.

한국은 이후에도 미국과 야구 교류를 이어갔다. 시카고 대학 야구팀, 미국 여자야구단, 흑인야구단 등과 초청경기를 치르며 일제 강점기에도 야구를 통해 희망을 키웠다. 시카고 대학 야구팀은 1925년 10월, 미국 여자야구단은 1925년 11월, 흑인야구단 로열 자이언츠는 1927년 5월에 한국을 찾았다.

이후로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방한이 이뤄졌다. 1958년에는 스탠 뮤지얼이 뛰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메이저리그 팀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국가대표팀 격인 ‘전서울군’과 맞붙었다. 1964년에는 디로이트 타이거스가 방한경기를 펼쳤고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에도 행크 애런이 이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방한해 국내 프로팀들과 8차례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아니라 올드스타와 더블A 선수들을 섞은 혼합팀이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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