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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앞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청춘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어릴적 TV에서 보던 사람은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가끔 부음도 들린다). 허나 정작 내 나이는 그리 들지 않았다 생각했다. 어느날 한번 멈춰 둘러보니 어느덧 오십줄에 가깝다.바로 얼마 전까지 ‘자이언티(Zion.T)’도 모르고 ‘양화대교’만 알고 살았으니 글자 그대로 ‘꼰대’다.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뻗친 유리 마천루를 바라보면 멋지다는 생각보단 ‘저게 깨져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먼저든다. 그야말로 노파심(老婆心)이 아니라 노옹심(老翁心)이라고나 해야할까.(이런 순간에도 ‘노옹심 신라면’이 떠오른다. 아… 어쩔 수 없는 아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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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인근 청연루.
몇년 전부터 연고에도 없는 전주에 마음이 많이 간다. 파도처럼 이리저리 어깨를 맞댄 기와 지붕이 끝도 없는 곳. 땡볕 가린 처마 검은 그늘에 앉아 있어도 톡톡 떨구는 빗소리를 들어도 뭐든 좋은 곳. 마주 걸으면 반드시 인사를 나눠야만 하는 비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이어지는 곳, 한옥마을이 전주에는 있다. 좁은 골목길을 봤더니 마음은 널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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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사이에 위치한 풍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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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있는 전주 한옥마을.
◇한국인의 고향 전주 한옥마

하루종일 한옥마을에 있으래도 있겠다. 요 몇년 사이 한옥마을이 인기라 젊은 여행자들이 수도 없이 모여든다. 주말은 물론이며 평일에도 풍남동 골목길을 가득 메운다. 한옥엔 역시 한복. 때깔좋은 한복을 차려입고 경기전 담장에 모인 청춘 커플이 보기에도 고와 꽃이래도 칭찬이 아닐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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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젊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한옥마을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생각과는 달리 도너츠와 칼국수, 지팡이 아이스크림도 그렇게 한옥마을과 어울린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온 카카오 열매로 만든 초코파이가 어떻게 전주 한옥마을을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대답할 길이 없다. 아무튼 누구나 초코파이 봉지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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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은 사람을 불러모아 즐거움을 주고, 사람은 한복을 차려입어 보답한다. 전주 한옥마을.

어찌 그럴까. 1914년에 지은 비잔틴·로마네스크 혼합 양식 전동성당도 그보다 꼭 300년 전에 중건한 경기전(1614년)과 지독히도 잘 어우러진다. 죄다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지어올린 한옥들도 레고블록처럼 딱딱 맞아떨어진다. 누가 몇 백년의 세월을 염두에 두고 전주 한옥마을을 조성했는지 정말 불가사의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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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전동성당(1914년 건축)도 한옥마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길거리 음식점에서 만두 몇개를 챙겨들고 산책에 나섰다. 낯붉힌 태양은 비록 성이 나있는 듯 보였지만, 담장길 옆으로 붙으면 이리도 시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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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 모여든 2030 관광객.

오목대와 이목대로 이어지는 즐거운 산행. 유월의 푸름이 풍남동을 점령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숍과 전시관, 체험관을 눈과 발로 훑고 다닌다. 거대한 테마파크이며 가장 한국적인 거리 풍경이다. 일부러 좁고 막다른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핏줄 속 수천년 내려온 유전자가 금세 이곳이 ‘고향’임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전주에 처음 왔더래도, 아파트 몇동 몇호만 평생 살았다 하더라도 이 골목에 서면 누구에게나 왠지 고향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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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에는 다양한 전시체험 공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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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루 가는 길. 전주천이 진록의 만춘을 그대로 비춰 두배의 절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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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관광객 커플이 전주 한옥마을의 아름다운 저녁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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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루가 선 남천교 아래에서 여행 중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

졸졸 흐르는 전주천 개울물을 따라 한벽루까지 걷는 길.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힌다. 어디선가 부터 맵싸라 칼칼한 향기가 섞였다. 오모가리 집앞 평상에는 초저녁임에도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매운탕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젊은 처자들이 매콤한 민물 매운탕을 잘도 먹는다. 나도 저들에 섞였으면….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아 외로움과 시장기를 달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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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의 막다른 골목길. 중년에겐 추억을, 젊은이들에겐 신선한 감동을 준다.

◇진화하는 원도심, 흥이 넘치는 전주의 밤

한옥마을은 풍남문 남부시장과 이어지고 또 객사길로도 이어진다. 전주 원도심 중앙 객사길은 ‘객리단길’로 불리며 한옥마을과는 또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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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앙시장 인근은 전주 원도심의 풋풋한 매력을 한가득 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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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영화의 거리.

서울 경리단길에서 나온 별칭처럼 ‘핫’한 곳이다. 이 거리는 ‘벤저민 버튼(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내용의 영화)’처럼 역진화하는 중이다. 젊어졌단 소릴 듣는다. 효자동에 뺏긴 과거의 영화를 되찾아가고 있다. 멋진 카페와 맛집이 낡은 도심을 채운다.

전주국제영화제 거리로부터 이리저리 이어진 길에는 눈여겨 찾아볼 곳이 꽤 많다. 서울 명동처럼 이름난 국수와 보리밥을 파는 집, 메밀국수로 소문난 집, 갈빗집 등 수십년을 이어온 노포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바리스타와 소믈리에가 차린 새로운 트렌디 커피숍과 와인 레스토랑 등이 생겨나 그 틈에서 공존하고 있다. 젊은 커플도 ‘꼰대’도 모두 즐거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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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도 부산처럼 영화의 거리가 있다. 최근엔 객리단길로 불리며 젊은층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곳이다.

신중앙시장도 변화했다. 원래는 반찬과 떡, 주단 등을 파는 재래시장인데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확 젊어졌다. 시장 2층에는 남부시장 청년몰처럼 청년들이 창업한 ‘청춘밀당’이 들어섰다. ‘후딱 골라보랑께’ 활기찬 어투의 슬로건으로 백반과 찌개, 덮밥, 일식, 커피 등을 판다. 젊은 오너셰프들이 직접 조리한 음식과 함께 술 한잔 곁들일 수도 있다. 한옥마을과는 또다른 매력이다. 어느 중소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원도심과 재래시장이지만 전주 특유의 끼와 풍류가 더해져 재미와 맛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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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앙시장 2층에 들어선 청춘밀당.

인근에 새로 들어선 라마다호텔 전주는 전주에서 유명한 가맥(가게맥주)을 루프톱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도심의 전경이 펼쳐지는 호텔 옥상에서의 가맥이라니 과연 전주다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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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역이며 버스 정류장이며 톨게이트 모두 한옥기와를 올리고 섰다.

어둑해지면 당연히 막걸리집과 가맥집으로 발길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전주니까. 늘 넉넉하고 푸짐한 곳이니 위장 빼곤 부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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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먹걸리집은 워낙 유명해서 이젠 필수 순례코스가 됐다. 사진은 다정집.

완산소방서 인근에 위치한 다정집. 막거리를 가득 채운 주전자 하나를 맨 처음 주문엔 1만5000원, 두번 째부턴 1만2000원 씩 받는다. 비싸다고? 술값만 받는대도?. 안주는 공짜다. 그날 그날 있는 재료로 안주를 만들어 깔아준다. 이날은 꽁치 무조림, 번데기, 대수리(다슬기), 대파, 찐 감자, 데친 호박잎, 버섯, 단호박찜, 도토리묵무침, 새우튀김, 시래기국 등이 나왔다. 술을 주문할수록 더 비싼 안주가 나온다.

아쉽지만 그쯤에서 접고 가맥집을 갔다. 가맥집의 원형을 지키고 있는 곳은 ‘전일갑오(전일수퍼)’인데 새로운 형태의 가맥집이 있다해서 ‘안행광장’을 찾았다.

거의 실내 포장마차 분위기다. 안주도 다양하다. 갑오징어 등 어포 뿐 아니라 볶음, 튀김, 전, 탕 등 없는게 없다. 외진 곳인데도 이미 가득하다. 관광객보단 전주시민들의 명소다. 내친 김에 전일갑오까지 들러 늦도록 맥주를 마셨다. 그래도 내일이면 끄떡없다. 전주엔 콩나물국밥이 있고 피순대로 만든 순대국도 있다.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맛집=안행광장은 전주시민들로부터 인기 높은 곳. 가맥을 표방한 실내 포장마차 형식의 맛집으로 값싸고 맛있는 안주를 다양하게 취급한다. (063)228-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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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새참국수.

영화의 거리에 위치한 새참국수는 보리밥과 멸치국수로 입소문난 집. 이름처럼 새참으로 즐기는 국수는 국물이 시원하고 김치맛이 좋아 슬슬 잘도 넘어간다. 비빔국수도 식지않는 인기를 자랑한다.(063)278-5188. 삼천동 막걸리 골목의 막걸리집 중 다정집은 그날 장을 봐온 찬거리로 맛있는 안주를 내는 집이다. 관광객보다는 시민들이 즐겨찾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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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다 전주 호텔 루프톱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뷰. 이제 이곳에서 ‘최상의 가맥’을 선보일 예정이다.

●숙소=최근 전주 ‘영화의 거리’ 인근 전라북도 최초의 특급 호텔로 자리잡은 라마다 전주 호텔. 전망좋은 총 330실에 전주 한옥마을, 오목대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루프톱 공간까지 갖췄다.

연회장과 뷔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며 ‘미향(味鄕)’ 전주를 대표하는 호텔답게 현재 로컬 대표음식을 개발 중이다.

위치도 좋다. 풍남동 한옥마을, 남부시장, 영화의 거리까지 5~10분이면 닿는다. KTX전주역에서도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했다. 특히 야시장을 운영하는 신중앙시장과는 지척이라 나이트라이프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편리한 입지와 편안한 숙소를 선호하는 고급 자유여행객들의 숙소로 제격이다.

라마다 전주 호텔은 지난 5월 개관과 동시에 전주국제영화제와 U-20 월드컵대회(본부호텔) 등 대형 이벤트·행사를 거치며 깔끔한 시설과 투숙객을 배려하는 능숙한 컨시어지로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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