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실 감독
유영실 대덕대 여자축구부 감독이 3일 오후 경북 경주시 알천체육공원에서 진행된 제25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경주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경주=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한국 여자 축구 역사는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핸드볼, 투포환, 육상, 하키 선수 출신을 불러모아 급조된 국가대표팀이 시초다.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의 초석이 된 것도 이듬해였다. 과거와 비교하면 현재 여자 축구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2003년 인천INI스틸과 대교 캥거루스 두 팀 뿐이던 실업팀도 8개로 늘어났고 2009년 WK리그 출범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저변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유망주가 대거 등장했고 국제무대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2010년 FIFA U-17 월드컵 우승과 U-20 월드컵 3위, 2015 캐나다 성인월드컵 16강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캐나다 월드컵을 거친 ‘윤덕여호’는 최근 북한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 ‘공북증’을 극복하며 본선 진출에 성공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여자 축구 1세대의 발자취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그 중 ‘한국수력원자력 제25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 대학부에서 대덕대를 이끌고 참가한 유영실 감독(42)은 ‘1세대의 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전남 광양여고 2학년이던 1992년부터 선수 은퇴한 2008년까지 16년이나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A매치 65경기를 뛰었다. 2003년 여자 축구가 사상 첫 성인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을 때 2005년 동아시안컵 때 북한을 누르고 우승했을 때 모두 유 감독은 주장 완장을 달고 뛰었다. 수비의 중심 구실을 한지라 ‘여자 홍명보’로도 불렸다. 2009년 동산정보고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로 제2 인생을 지내는 그를 여왕기가 열리는 경북 경주에서 만났다.

후배들의 ‘평양 대첩’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렵기로 소문난 평양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나머지 경기에서 전승, 북한을 골득실로 밀어내고 1장뿐인 아시안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유 감독은 “나도 대표 생활하면서 평양에 가본 적은 없는데 후배들의 축구 인생에 있어 가장 인상 깊은 대회가 됐을 것”이라며 “5만여 북한 관중들에게 둘러싸인 경기장에서도 좋은 결과를 낸 건 그만큼 우리가 정신력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잘 갖춘 팀이 됐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여자축구는 북한과 역대 전적에서 1승3무14패를 기록 중이다. 유일한 1승이 바로 유 감독이 뛰었을 때다. 지난 2005년 8월4일 전주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2차전에서 박은정의 결승골로 1-0 신승을 거뒀다. 그는 “북한이 물론 당시 한 수 위였으나 우리도 월드컵을 거치면서 성숙해졌다. 북한은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축구를 했다. 하지만 늘 부담을 안고 뛰어서인지 긴장을 많이 했고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것 같더라. 그들이 지쳤을 때 우리가 틈을 잘 파고드는 게 중요했다”고 회상했다.

한국 여자대표팀은 그 대회에서 중국과 첫 경기 2-0 완승, 일본과 최종전 0-0 무승부 등 ‘아시아 빅3’를 상대로 2승1무의 성적을 거둬 우승을 차지했다. 유 감독은 “당시 대회를 앞두고 파주NFC에서 인터뷰할 때 어떤 기자분께서 다소 형식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미 우리는 다른 팀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어렵다는 시선이 그만큼 팽배했는데 사실 화가 많이 났었다. 오히려 그게 계기가 돼 더 이를 악물고 뛴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베테랑 골키퍼 김정미를 비롯해 지소연, 이민아 등 신구 세대가 어우러진 윤덕여호가 노련미를 갖춘 황금세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직 우리 현실은 대표팀 성적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초, 중, 고교 팀 운영이 쉽지 않다.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황금세대가 호성적을 거둬서 여자 축구에 대한 시선이 더 나아지고 자생력 있는 팀이 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 감독은 아직도 선수 은퇴 후 제2 인생 설계가 국한돼 있는 여자 축구 시장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와 한국여자축구연맹 차원에서 여자 선수들의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제도적 보완을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특히 남자 축구가 1세대 등 과거 스타들도 꾸준히 부각받으면서 다각도로 축구계에 기여하는 것과 다르게 여자 축구인이 쉽게 잊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단순히 현장 지도자 뿐 아니라 행정이나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경험을 녹이고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감독은 “우리나라 문화는 학연, 지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올바른 소리를 해도 구설에 올라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 뒤 “나 역시 1세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길을 잘 닦아서 후배가 여러 꿈을 꿀 수 있게 돕고 싶다. 우리도 남자처럼 OB축구회를 만들어서 여러 기관과 소통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kyi0486@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