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00691
도르지 펜조레 부탄국민행복연구소장. 그는 ‘행복’이란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 수치화 시켰다.

[팀푸(부탄)=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 디지털기획부장]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히말라야 작은 나라 부탄의 헌법에 적시된 대목이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선 부탄(Bhutan)이 연일 화제다. 어찌 경기·강원권 넓이 정도의 산중 소국 하나가 미국과 중국 만큼의 존재감으로 떠올랐을까. 많은 이들이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이는 새 대통령의 영향이 크다. 지난달 새 정부 출범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행복’을 이야기하며 부탄을 언급했다. 그리고 최근 문 대통령이 ‘부탄형 국민행복지수’를 한국식으로 개발해 연내에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히말라야 여행 중 부탄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은 부탄 국민의 절대적인 행복 만족도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집권 초기에 그와 같은 행복지수를 국내에 적용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국정 목표를 경제적 생산 증대에 두는 것이 아니라 국민행복을 가늠할 수 있는 한국형 지수를 개발해 모든 정책에 골고루 반영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국민 ‘삶의 질’을 우선하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도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마침 지난달 초 부탄 현지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도르지 펜조레(Dorji Penjore) 국가행복연구소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국민의 행복을 학술적으로 측정하는 GNH(국민행복지수) 연구 책임자(차관급)다. 수도 팀푸 외곽에 있는 국가행복연구소 건물에서 전통의상 ‘고’를 입은 그를 만나 한 시간 여 대화를 나눴다.

DSC00691
국가행복연구소 건물은 팀푸 외곽 산쪽에 위치했다. 그 곳에서 도르지 펜조레 소장을 만났다. 제공 | 정태겸 작가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행복의 조건’에 대해 헷갈리고 있다.” 도르지 펜조레 소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행복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자마자 잘라 말했다. 넉넉한 경제력과 건강한 신체, 즐거운 유희 등은 결국 행복의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고 영속할 수 있는 행복 그 자체는 아니란 주장이었다. 머릿속이 온통 새하얘졌다. 행복의 나라로 불리는 부탄, 그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우리의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 지 물어봤다.

DSC00691
도르지 펜조레 소장은 “행복과 행복의 조건을 헷갈리면 안된다”고 말했다.

-척 보기에 부탄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뭔가.

부탄은 경제적 성장이 국정목표가 아니라 행복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할 때도 많이 있지만,반대로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하진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않나?. 국력을 단순한 경제력으로 평가하는 GDP(국민총생산)대신 부탄은 GNH(국민행복지수)를 늘이기 위한 정책을 편다. 고성장을 보장하는 어떤 경제 정책도 ‘국민 행복’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시행하지 않는다. 큰 돈이 생긴다고 공장을 짓지도 나무를 베지도 않는다. 대량 수확을 위해 농약도 화학비료도 치지 않는다. 그런걸 먹으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의 차이란 뜻인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은 보통 무엇을 소유하고,실행할 수 있고,소비할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대부분의 (넉넉한)나라들은 복지를 늘리는 방식으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복지라도 이는 행복의 조건에 해당할 뿐이다. 행복이란 그 순간 마음의 상태,절대적인 마음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행복은 이미 행복한 마음 그 자체가 아니란 뜻이다.

DSC00691
도르지 펜조레 소장이 행복지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떤 정책을 펴야 국민이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어떤 정책이라도 시행되기 전 ‘행복지수’를 통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 현재 부탄 정부가 내놓은 모든 정책은 ‘국민총행복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목적보다 상위에 있고 정책의 기준인 셈이다. 총점 78점을 넘기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예를 들면 동·서 부탄의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터널을 뚫고 열차를 도입하려 한 적도 있으나 그것이 자연환경을 지켜 그 속에서 공존하려는 국민 행복권과 상충해 자동 폐기됐다(부탄 헌법에는 숲의 면적을 총 국토 면적의 6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국민들은 7시간 이상 노동하지 않는다. 또 폐기물을 쏟아내는 공장을 지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부탄 국민들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정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지를 보낸다.

-국민 95%가 믿고 있는 금강승 불교가 종교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이처럼 높은 행복지수를 만드는데 한몫했는가.

아무래도 종교는 인간에게 행복을 주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부탄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생활 속에 종교를 강요하는 정책을 쓰진 않는다. 스스로 불교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심신의 고통을 치유하려고 힘쓴다.

-자국 내에서 담배를 제조 판매하지 않는 강력한 금연 정책이나 관광객 입국 숫자를 제한하는 것도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인가.

무척 지엽적 질문이지만…. 담배가 건강에 좋지않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임 가운데 하나다. 관광객 제한 역시 그렇다. 관광객들이 많아지면 국가 경제적으로나 국제 사회에 대한 소통 등 얻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불편해지고 자연이 훼손되는 부작용도 있다. 이를 적절히 조정해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DSC00691
부탄 국가행복연구소 도르지 펜조레 소장.

-부탄국가행복연구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국무총리가 당연직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가행복위원회(Gross National Happiness Commission)가 가장 위에 있다. 부위원장은 재무부장관이 맡는다. 그 산하에 국민행복지수(GNH)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국가행복연구소와 이를 실제 적용하는 실질적 정책반영 업무를 맡는 부탄학연구소가 있다. 글자 그대로 행복을 연구하는 곳이다. 국민 생활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국민행복지수(GNH)를 체계화하고 이를 연구하는 기관이다. 행복을 기술로 바꾸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해 ‘당신이 오늘 얼마나 행복한지를 1~10 중에 골라서 답하라’고 한다면 이는 객관성이 떨어진다. 부탄행복연구소는 매우 객관적이고 실질적 방식으로 행복을 측정할 수 있도록 연구한다. 현재는 4가지 주제와 9가지 세부 내역, 33가지 계측점으로 구성돼 있다. 4가지 주제는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전통문화 보존,환경보호,정부의 책임 등으로 삼았다. 행복을 위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전통문화와 자연 유산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둔다. 권력과 금전을 가진 사회 지도층이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것을 통해 계층간 화합을 이루는 사회를 만들면 그 안에서 국민행복이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각각 주제는 다시 9가지로 구체화된다. 심리적 안정,건강,시간 사용,행정,문화 다양성,교육,공동체 활력,환경,생활 수준 등이다. 이를 세분화한 33가지 계측점을 통해 행복도를 측정하게 된다. 행복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곧바로 실제 생활과 정책에 적용한다. 정부와 의회가 법을 입안하면 연구소의 측정방법을 통해 총 250개 부분에서 평가를 한다. 이중 83점 이상을 얻을 때만 비로소 정책이 시행된다.

DSC00691
행복하는 것이 어떻게 기술화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부탄 국가행복연구소 도르지 펜조레 소장.

-자살률이 높은 한국에서 최근 부탄의 행복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상황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 국가행복연구소와 행복위원회,부탄문화원이 공동으로 한국에서 행복지도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한다(5월 24일부터 10주간 진행 중이다). 추상적 개념인 ‘행복’을 부탄이 어떻게 구상화시켰는지, 한국에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등을 공동으로 연구하는 프로그램이다.

demory@sportsseoul.com

DSC_4207
히말라야 고산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 부탄은 세계 최초로 행복을 국정목표에 둔 나라다.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DSC_4207
히말라야 고산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 부탄은 세계 최초로 행복을 국정목표에 둔 나라다.

DSC_4207
히말라야 고산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 부탄은 세계 최초로 행복을 국정목표에 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탄 그리고 행복

문재인 대통령은 대권 ‘잠룡’ 시절이던 지난 해 7월 히말라야 여행을 떠났다. 여행기간 중 2주간 부탄을 방문해 체링 톱게 총리,카르마 우라 국민행복위원장 등과 국민총행복지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이후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면,정부의 존재 가치가 없다’란 포스팅(부탄 헌법 중 발췌)을 SNS에 올린 바 있다. 또 대선 기간 중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주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천명했다. 당선 이후 한달도 채 안돼 다시 ‘한국형 국민총행복지수’를 언급하며 ‘행복’에 대한 정치적 대중적 관심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부탄형 국민행복지수란 무엇인가

부탄은 척박한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위치했다. 인구 75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에도 못미치지만 국민 91.2%(2015년 기준)가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지난 2008년 부탄 정부는 ‘국민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를 공식 발표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행복’의 개념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구해왔다. 1970년대부터 불교적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민행복지수’ 개념을 제안했다. 1972년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당시 국왕(4대)은 “국민총생산(GNP)보다 국민총행복(GNH)이 더 중요하다”고 천명했다. 이후 그는 절대 왕권과 왕실 재산을 스스로 내려놓고 총선을 실시했다. 세계 최초로 부탄이 ‘행복 정책’을 실제 적용한 이후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여러 나라들도 사회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국민행복지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엔(UN)과 국제경제협력기구(OECD) 역시 행복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32개 회원국 중 31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DSC00691
부탄 국가행복연구소 도르지 펜조레 소장.

◇도르지 펜조레는 누구인가

1999년 부탄 정부가 국가행복지수를 체계적으로 연구 보급하기 위해 설립한 부탄행복연구소장(차관급)으로 일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일본 유학(문화인류학·고고학) 등을 거친 후 귀국해 부탄학연구소(Centre for Bhutan Studies)와 행복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며 GNH를 구체화·수치화·계량화시켰다. 대국들 사이를 걷는 부탄의 안보,네팔과 부탄,부탄 지역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서와 논문을 썼다.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