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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19일 레스터 시티 원정 경기에서 올시즌 20호골을 세운 뒤 손가락으로 ‘20’을 만들고 있다. 출처 |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시즌 20~21호 골을 터뜨리며 유럽 1부에 진출한 아시아 공격수 역사상 처음으로 ‘꿈의 20골’ 고지를 정복한 손흥민(25·토트넘). 아시아 유럽파 50년 역사를 다시 쓰는 동시에 전설을 향한 발걸음을 지속하게 됐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 빅리그 1부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된 건 1970년대. 한국의 차범근과 일본의 오쿠데라 야스히코는 당대 최고 리그로 불린 독일 분데스리가에 나란히 진출해 10년동안 소속팀 간판 골잡이로 활약했다. ‘갈색폭격기’로 불린 차범근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10년간 98골을 해내면서 분데스리가 최고 외국인 공격수로 이름을 알렸다.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고 뛴 1985~1986시즌 19골(리그 17,독일축구협회 포칼 2) 기록은 손흥민이란 존재가 등장하기 전 아시아 선수 유럽 1부 한시즌 최다득점 기록으로 장기간 유지됐다.

2000년대 들어 박지성 설기현 박주영 등 한국 선수 뿐 아니라 바히드 하세미안(이란) 순 지하이(중국) 오쿠보 요시토(일본) 등 수많은 아시아 선수가 유럽 1부에서 경쟁했다. 가장 돋보인 건 단연 박지성으로 10년간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을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빅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며 아시아 최고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4~2005시즌 에인트호번에서 11골을 넣으며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2010~2011시즌 맨유에서 8골을 터뜨렸다. 특히 맨유에서만 리그 4회 우승,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경험했다. 골 숫자로만 보면 이란의 하세미안이 돋보였다. 분데스리가 5년차였던 2003~2004시즌 보쿰에서 뛴 그는 리그에서만 16골을 터뜨리며 득점 4위에 오르는 저력을 뽐냈다.

‘유럽파 3세대’로 불리는 2010년대 들어서는 손흥민이 단연 돋보인다. 초반 일본의 가가와 신지가 2011~2012시즌 도르트문트에서 17골(리그 13,리그컵 3,챔피언스리그 1)을 터뜨리며 하세미안 기록을 넘어 큰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이후 맨유로 이적해 새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손흥민은 만 18세였던 2010년 함부르크에서 프로로 데뷔한 뒤 매 시즌 성장을 거듭하다가 2014~2015시즌 두번째 팀 레버쿠젠에서 17골(리그 11,포칼 1,챔피언스리그 5)을 해내며 가가와 신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똑같이 독일 무대 성공으로 잉글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가가와는 실패로 귀결됐으나 손흥민은 달랐다. 이적 첫해였던 지난 시즌 8골에 그치면서 성장통을 겪었으나 올 시즌 선발과 교체를 오가면서도 21골(리그 14,FA컵 6,챔피언스리그 1)을 기록 중이다. 주말 헐시티 원정 경기가 남아 있어 아직 손흥민의 골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특히 유럽 빅리그에선 시즌 골 숫자보다 정규리그 골 숫자를 더 가치있게 매긴다. 그간 손흥민은 차 부위원장의 기록을 넘어섰지만 리그 골 숫자에서 17골을 해낸 선배 위용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13년 전 하세미안의 16골, 차 부위원장의 17골에 2~3골 차이로 근접한 상황이다. 이미 강등을 확정한 헐 시티전에서 또 기회를 잡는다면 얼마든지 새 역사 창조가 가능하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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