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국내에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어느덧 35년 째가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프로야구는 매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며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 국가대표 팀의 선전으로 다시금 전성기를 맞은 프로야구는 꾸준한 관중 상승세를 이어가며 지난해 8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올해는 900만 관중 돌파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프로야구의 폭발적인 인기상승과 더불어 야구장에 가지 못한 야구팬들에게 현장의 열기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중계 기술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야구팬들이 야구 중계를 통해 현장의 열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탯이나 기록 등을 세세하게 전달받는 시대가 됐다.


이석재 MBC SPORTS+ 센터장은 국내 야구 중계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온 스포츠PD 중 한 사람이다. 유년시절부터 미친듯이 사랑했던 야구를 업(業)으로 삼고 20년 가까이 활약한 그의 노력과 열정은 MBC SPORTS+가 12년 연속 프로야구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3년 연속 시청률 1위, 더 나아가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이석재 센터장을 만나 그만의 방송 철학과 향후 목표를 들어봤다.


▲ 의외의 한 마디, "지금은 프로야구 방송사들의 위기다."


Q. 베테랑 PD이면서 스포츠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현재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


이석재 : 현업을 안한지는 4년정도 됐다. 보통 팀장이 되면 현업에서 물러나고 관리자가 된다. 직책인 스포츠센터장은 예전으로 말하자면 국장이다. 스포츠국이 스포츠센터로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5개 팀이 있는데 제작, 편성, 마케팅 등을 총괄하고 있다.


Q. 12년 연속 시청률 1위를 넘어 13년 연속 시청률 1위에 도전하고 있다. 매년 프로야구 개막때마다 부담감이 상당할 것 같다.


이석재 : 부담이 상당하다(웃음). 마치 올림픽 양궁같다. 시청률 조사기관 중 한군데라도 1위를 놓치면 회사 분위기가 안 좋다. 하지만 앞으로는 시청률이 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Q. 왜 그런가.


이석재 : 과거 지상파 3사가 스포츠시장의 전부였을 땐 시청률이 중요했다. 먹고살기 위해서였으니까. 1위라는 지표를 가지고 광고시장에 접근을 해서 광고를 따올 수 있었기에 중요했다. 물론 지금도 시청률은 중요하지만 점차 방송사 별로 시청률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 뿐만 아니라 타사도 중계를 잘한다. 우리가 그들을 앞선다고 말할 수 없다. 중계 시청률은 사실 매치업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가 중계한다고 시청률이 높은 건 아니다. 광고시장도 이를 안다.


Q. 그렇다면 이젠 어떤 것이 중요해진 것인가.


이석재 : 뉴미디어 시장이 커지다보니 올드미디어가 위기다. 예전엔 지상파 3사가 스포츠의 전부였고 서로 경쟁을 했다면 지금은 3사가 힘을 합쳐도 뉴미디어를 못 따라가는 실정이다. TV도 올드미디어가 된 세상이다. 뉴미디어로 시장이 옮겨 가고 있다. 3사가 똘똘 뭉쳐야 될 상황이다. 그렇기에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올해다. 지표를 보면 알겠지만 프로야구 평균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예전엔 광고주들이 3사만 눈독을 들였기 때문에 1등 매체에 광고를 많이 줬지만 이젠 광고주들도 뉴미디어를 선호하기에 방송사들이 똘똘 뭉쳐서 살길을 찾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광고매출도 떨어질 것이다. 올해는 시청률보다는 어떻게 하면 부가가치를 더 만들어 낼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Q. 중계 방식에도 차별화를 둬야 할 듯 하다. 올해 엠스플만이 자랑하는 중계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나.


이석재 : 사실 최근엔 방송사들의 사정이 어렵다보니 적극적으로 투자를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자체 개발한 장비가 있다. 피칭캠이나 엠존 등이 그것이다. 엠존은 작년에 처음 시도했는데 오류가 많아서 일시적 중단상태다. 올해 버그를 수정한 버전이 리플레이로 나가고 있다. 오류가 없어서 다시 라이브 상황에 도입할까 생각 중이다.


Q. 그만큼 중계 방식이 많이 디지털화 됐다고 볼 수 있겠다.


이석재 : 그동안 중계에 있어 디지털화가 너무 많이 됐다.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각 사가 경쟁적으로 투자했다. 이후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스탯이나 세이버 매트릭스에 나오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면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국내 3사의 중계기술은 메이저리그 수준을 능가한다. 일본 야구는 이미 뛰어넘었고 대만에는 중계기법을 컨설팅할 정도다. 이런 것들 외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곁들여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Q. 엠스플의 중계방식에 대해 호평도 있지만 비판도 존재한다. 비판에 대한 피드백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이석재 : 온라인상에서 중계가 너무 산만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겸허하게 수용하지만 이런 비판에서 오는 딜레마가 있다. 열혈 야구 매니아층은 인터넷에서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한다. 이들은 대부분 2, 30대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모바일로 중계를 본다. 지금은 포털사이트에 중계가 나가기에 모바일 유저들이 보지만 실제로 중계가 모바일에서 소비됨으로인해 방송사에 돌아오는 수익은 없다.


수익이 되는 올드미디어(TV)를 이용하는 층은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이 사람들이 야구를 야구학적으로 중계하는 것을 좋아할까 의문이다. 중장년층은 편하게 보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2, 30대와 50대 이상의 취향이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딜레마다. 주 소비층인 50대 이상의 시청자들은 온라인 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다. 지난해 시청률조사기관에 의뢰해서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 50대 이상 연령층은 압도적으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좋아했다. 하지만 젊은 층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야구에 몰입하고 공하나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어떻게 세대별로 접점을 찾을지 고민 중이다.


Q. 타 방송사와 비교해 다수의 해설진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부분이 중계에 있어 어떤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는가.


이석재 : 굉장히 큰 순기능을 한다고 본다. 해설위원은 식당에서 메뉴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해설자든 시청자들을 100% 만족시키는 해설자는 없다. 어떤 해설자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대답이 다 다르다. 또 타자출신 해설자가 보는 관점과 투수출신 해설자가 보는 관점도 다르다. 우리는 주로 한국 야구 레전드들을 모셔왔는데 메뉴가 다양한거다. 시청자들이 보기에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수 있게 하고 있다. 또 본인들이 국내 야구계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레전드다보니 보이지 않게 경쟁의식들이 강하다. 이런 점들이 중계에 있어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본다.


Q. 엠스플 뿐만 아니라 타 방송사들도 수준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엠스플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석재 : 장비나 카메라 배치 등 눈에 보이는 중계력은 거의 비슷하다고 본다. 우열을 가릴수 없을 정도다. 결국은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호흡과 그들의 중계 내용에 걸맞는 연출을 누가 잘해내느냐 싸움이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투수라고 생각한다. 투수력이 강하면 게임에서 이기게 돼있다. 연출자는 포수다. 포수가 얼마나 리드를 잘하고 상대방 약점을 분석하며, 투수가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고 나머지 야수들 즉 제작진들과 신뢰를 갖고 호흡을 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과 호흡, 친밀도가 엠스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 동대문야구장의 추억, 야구에 미치게 하다


Q.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야구에 대한 사랑이 물씬 느껴진다.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석재 : 프로야구 원년부터 열혈팬이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대문야구장에서 했던 MBC 청룡과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을 보기 시작하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 이후로 야구에 미친놈처럼 살았다(웃음). 야구장도 많이 갔다. 당시에 '700 서비스'라고 있었다. 요즘은 전경기가 생중계되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700 서비스'는 돈을 내고 전화를 하면 현재 스코어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하도 많이 이용해 요금이 몇 만원씩 나오기도 했다. 또 PC방에서 500원을 결제하면 여성 VJ가 현장에서 카메라 한 대를 놓고 중계를 해주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야구를 봤다. 그 정도로 야구에 빠져 있었다.


Q. 그 때부터 야구를 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을 했던 건가.


이석재 : 대학 졸업 때 스포츠채널이 한국스포츠TV 하나 뿐이었다. 야구를 좋아했지만 업으로 삼겠단 생각은 안해봤다. 다른 방송사에 취직했다. 2001년부터 방송 3사에 스포츠채널이 만들어졌다. 2002년에 월드컵 때문에 사람을 많이 뽑았다. 당시 예능 PD를 하고 있었는데 스포츠 PD가 돼야겠다고 결심했고 운좋게 합격했다. 메이저리그 중계부터 시작해 2005년에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하면서 참여 하게 됐다.


Q. 야구팬들 사이에서 이석재 센터장은 '야구 입담꾼'으로 통한다. 그만큼 다양한 야구 관련 방송에 패널로 출연 중인데,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석재 : 솔직히 출연하고 싶지 않다(웃음). 야구 해설위원이 부족할 당시 회사에서 간판 PD를 키워보는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PD 대부분이 언변이 서툴렀다. 그나마 내가 입담이 있다보니 회사가 방송에 출연해보라고 했고, 2011년 쯤 '베이스볼 투나잇'으로 처음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Q. 방송 출연을 하는 것이 야구 관련 프로그램 연출이나 기획에 미치는 영향이 있었나.


이석재 : 당연히 있다. 출연자의 입장을 알게 됐다. 연출자일때는 출연자들의 애로사항을 잘 챙겨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출연자들도 PD에게 속속들이 불편한점을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출연자의 입장이 되다보니 PD로서 출연자들과 대화할 때와 같은 출연자로서 대화하는게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현업에 복귀하게 되면 이런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Q. 이석재 센터장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석재 : 야구자체가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서 수십년을 해오고 있고 메이저리그도 백년을 해도 야구에서는 매번 새로운 일들이 생긴다. 반복되는 것이 없다. 조그마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중계도 변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많이 얘기한다. 다른 스포츠들도 극적이고 재미있지만 야구는 공 하나하나에 승패가 좌지우지 된다. 야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시청자들에게 100% 충족은 못시켜줘도 어느정도는 반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 가변성이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야구는 연출자가 개입할 요소가 굉장히 많은 종목이다. 연출자의 역량에 따라서 얼마든지 재밌게 만들 수 있는 연출적인 요소가 많은 종목이다. 제일 연출하기 힘든 종목이기도 하지만 제일 보람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Q. 이석재 PD에게 야구란?


이석재 : 야구선수들과 같다. 내 삶이자 내 생계다. 청소년기에 스포츠를 하도 좋아해서 어머니가 공부하라고 내쫓을 때 비디오 예약녹화 기능으로 야구를 녹화하고 공부를 하러갔다. 공부 마치고 돌아와서 새벽까지 녹화된 야구경기를 보곤 했다. 결국 그 때 경험들이 나의 생계가 됐고 삶이 됐다. 야구는 20년 넘게 즐겁게 회사를 다니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Q. 이석재 PD의 목표는?


이석재 : 나이 60이 돼서도 현장에서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현역 PD였으면 좋겠다. 야구계에서 그 때까지 현업 연출을 하고 있는 선배로 남고 싶은게 꿈이다. 은퇴 이후에는 플랫폼이 다변화된 만큼 저만의 야구관련 팟캐스트를 만들던지 해서 살아가고 싶다(웃음).


뉴미디어국 superpower@sportsseoul.com


사진 | 서장원기자,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