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지난해 가을 한국여자야구는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부산시 기장군에서 열린 '2016 기장여자야구월드컵'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기 때문.


당시 대회에서 약체로 꼽혔던 한국대표팀은 조별 예선에서 파키스탄과 쿠바를 꺾고 조 2위에 올라 전체 6위까지 진출하는 슈퍼라운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비록 슈퍼라운드에서 실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연달아 패배했지만 열악한 환경속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선전은 한 줄기 희망을 안겼다.


국내 여자야구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지난 2007년 설립된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어느덧 10주년을 맞았다. 10년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성장해온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이제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그 중심에는 김세인 한국여자야구연맹 운영부회장이 있다.


김세인 운영부회장은 여자야구연맹의 초대 발기인이자 연맹 10년 역사와 함께해 온 산 증인이다. 여자야구선수들과 연맹 사이에서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며 여자야구의 발전과 선수들의 권익 향상에 힘쓰고 있는 김세인 운영부회장의 일상은 대부분 여자야구관련 업무로 꽉 채워져있다.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김세인 운영부회장을 만나 여자야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Q. 지난해에는 감사를 맡았는데 올해는 운영부회장이 되었다. 운영부회장이 하는 업무는 무엇인가.


김세인 : 공문이나 각종 대회에 관한 회의, 그리고 자금 집행에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연맹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Q. 지난 해 감사와 올해 운영부회장을 맡으면서 국내 여자야구의 열악한 현실을 더욱 체감했을 것 같다.


김세인 : 열악하다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웃음). 예를 들어 10년 전엔 서울 팀과 부산 팀이 경기할 때 인원, 장소, 비용이 해결돼야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이게 열악한 것이다. 지금은 50개 정도의 팀이 있고 팀들끼리 야구를 하기엔 아주 좋아졌다. 공문을 보낼 수도 있고, 운동장 섭외 요청을 할 수도 있으며 심판이나 기록원들이 자체적으로 기술을 습득해 양성되고 있다. 경기하는 건 이젠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성장은 많이 했는데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구조적인 모순을 깨야 된다. 기존의 야구와 여자야구는 다르다.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되는데 기존 틀에 맞춰 여자야구를 보기 때문에 우리와 그들 사이에 괴리감이 생긴다.


Q. 구조 얘기가 나온김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지난해 여자야구월드컵은 한국대표팀의 선전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선수 선발 과정에서 소프트볼 선수들의 선발 문제로 잡음이 있었다. 여자야구 선수들은 대회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나.


김세인 : 오해로 벌어진 일이다. 연맹과 여자야구선수 모두 서로에게 오해가 있었다. 여자야구인들이 원했던 것은 우리만 데리고 세계대회를 나가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회원 단체이고 여자야구를 전부 주관하는 곳이 여자야구연맹인데 왜 우리가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야하느냐'가 여자야구선수와 단체들이 연맹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반면 연맹이 여자야구단체에게 가지고 있었던 시각은 '너희가 빨리 세상에 알려지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여자 축구처럼 올라설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방해를 하느냐'였다. 여자야구선수 측은 소프트볼 선수들을 데리고 대회를 나간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었는데 연맹은 여자야구선수들이 국가대표가 안 됐다고 화를 내고 있는 걸로 오해를 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소통이 됐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서로에게 오해를 하고 있던 상황이라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버렸다. 10년동안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고생한 분들이다. 여자야구선수들은 야구를 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했고, 그 분들은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해서 맺어진 인연이다. 근본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한순간에 오해가 깊어진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본다.


Q. 2017 BFA 여자야구아시안컵을 대비해서 대표팀 상비군 선발전을 실시했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대표팀 선발과정이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건가.


김세인 : 그렇다. 앞으로 국가대표는 떳떳하게 선발이 되어야 하며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 그리고 후원이 따라야 한다. 선발과정에서 불거지는 의혹들이 없이 깨끗하게, 모든 선수들이 선발결과를 인정할 수 있게 돼야 한다. 선수들도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동안 대표 선발 때마다 나왔던 기회균등의 원칙이라는 말도 더 이상 나올 일이 없다. 원하는 만큼 다 받아주겠다고 했고, 다 받아줬다. 테스트를 거쳤고 스스로 자신과 참가자들의 기량을 확인했다. 공정하게 국가대표팀을 꾸려서 세계대회에 출전해 어떤 성적을 받던 결과는 냉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Q.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되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세인 : 여자야구의 정체성이 확립돼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여자야구를 실제 생활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 실업팀이나 프로팀 등이 생겨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매일 야구를 하면서 실력도 키울 수 있다. 지금은 하루 운동하고 6일을 쉬는 실정이다. 야구를 생활로 연결할 수 있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책적으로 가까운 방법은 여자야구가 전국체전 종목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자체에서 팀을 만들어 출전을 시켜야하는 의무감이 생긴다. 여자야구 실업팀 창단을 이끌 수 있는 정책적 구조의 확립이 필요하다.


Q. 이쯤되니 운영부회장의 야구 인생이 궁금해졌다.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김세인 : 야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웃음). 2006년에 한창 당구를 배우고 있었다. 그날도 당구를 치고 레스토랑에 갔는데 야구복 입은 여자들이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신기해 직접 가서 물어보고 그들이 뛰는 야구장에 찾아가 입단을 했다. 그렇게 37살에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야구를 좋아했고 룰도 다 알고 있었지만 직접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거다. 그 때 레스토랑에서 만난 여자야구선수를 보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시작하게 된 계기도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속에서 야구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김세인 : 처음 들어간 팀의 초대 감독이 됐다. 재밌게 야구를 했다. 그런데 마침 여자야구연맹이 생긴거다. 당시 전국 여자야구 선수 중 내가 공식적으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초대 발기인이 됐다. 연맹에서는 여자야구 선수들의 의견을 모으는데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소통의 창구 역할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게 알게모르게 여자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게 됐다. 이후 연맹에 선수이사 제도가 생겼고 선수이사로 들어가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야구인이 되어 있었다. 여자야구선수로서 성공하겠다는 열정보다는 여자야구가 성장해 나가는데 내가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이 낫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한다. 연맹과 현장의 격차가 멀어지면 안된다. 그런 부분에 대해 내가 목소리를 내고 선수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웃음).


Q. 연맹 업무 외에도 이스트 서울 여자야구팀을 이끌고 있다. 팀 소개를 부탁한다.


김세인 : 인원은 15명 정도 된다. 지난해 6월에 팀 창단 모임을 하고 8월에 창단식을 했다. 불과 2개월 만에 15명이 모였다. 어마어마하게 빨리 모인 거다. 팀원들은 여러 야구단을 보며 재고 들어온 친구들이 아니다. 친한 친구가 야구를 하는데 재밌다니까 들어온 팀원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정서 자체가 계모임 같다(웃음). 그 중 특이한 입단자가 박지아다. 어느날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 박지아를 소개받았다. 운동을 한다길래 인터뷰가 필요할 거 같아서 인터뷰를 했다. 기존 팀원들과 출발이 다르고 생각도 다른 선수다. 국가대표라는 꿈을 가지고 있고 야구를 정말 잘하고 싶어하는 친구다. 우리팀을 대표해서 성장해나가는데 기꺼이 응원을 해준다. 얼마전에 상비군 선발전 나간다고 해서 팀원들이 고기도 사먹였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 나는 다른 곳에 우리팀을 소개할 때 '서울속의 시골팀'이라고 소개한다. 그게 우리팀의 콘셉트다.


Q. 팀을 이끄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김세인 : 즐거운 야구를 하는 것이다. 야구가 스트레스가 되어선 안 된다. 와서 즐거워야 한다. 못하면 못하는대로 배워서 재밌고, 잘하면 못한 친구들 보고 자신감을 얻어서 좋고 나라도 더 잘해야되겠다는 책임감을 가져서 좋아야 한다. 좋은 기운을 가져가야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팀에 와서 기분나쁘면 야구할 필요 없다. 졌다고 스트레스 받는 거? 스트레스도 즐거운 때가 있다. 경기에 집중할 때 생기는 긴장감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즐거워야 한다. 좋은 기운을 가진 팀이 됐으면 좋겠다. 지친 일상 속에서 우리 팀이 힐링을 하고 갈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


Q. 본인만의 목표는 무엇인가.


김세인 : 먼저 연맹이 제 갈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여자야구연맹이 여자선수들에게 어떤 비전을 줄 수 있고, 여자야구단체들을 위해서는 어떤 존재라고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기초공사를 하는 중요한 시기가 지금이다. 또 지난 10년간 여자야구를 밀어주고 후원해준 많은 야구인들과 전 연맹 임원들이 함께 모여서 그동안 쌓였던 모든 오해와 앙금을 다 털고 감사한 부분에 대해서만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야구단은 전국대회 기준으로 1승씩만 하는게 목표다. 1승 이상 하면 안된다. 다른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웃음). 팀에 야구공을 처음 만지는 사람이 3분의 2다. 1년동안은 질 수 밖에 없다. 야구가 그만큼 힘들다. 1승씩만 챙기면 다 이룬거다. 선수 개인으로는 큰 꿈을 꾸고 있는 박지아 선수가 본인이 원하는 꿈을 향해 후회없이 노력해서 상비군을 포함해 국가대표까지 선발돼 꿈을 이루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뉴미디어국 superpower@sportsseoul.com


사진 | 한국여자야구연맹, WBSC, 김세인, 더그아웃 매거진 제공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