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스포츠서울 김효원 대중문화부장]방송예술인 1만여명이 모인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이하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가 최근 창립대회를 열고 정식 출범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단체인 이 연합회에는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한국방송실연자협회, 한국성우협회, 대한민국코미디언협회 등 4개 단체가 합류했다. 배우 유동근(61)이 첫출범한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의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돼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각각 활동하던 방송예술인 단체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앞으로 방송예술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맹활약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한 유 이사장은 “대중문화가 한류 등으로 성장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양극화가 심각하다. 소외된 저소득 방송예술인들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힘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초대 이사장에 추대된 소감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한국방송실연자협회, 한국성우협회, 대한민국코미디언협회 등 각 단체가 그동안 굉장히 열심해 일해왔다. 그러나 각 단체가 사단법인 친목 단체다 보니 정부에 정책적인 것들을 요구하는데에는 미흡하고 한계가 있었다. 지금까지 각 단체가 많이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면 앞으로는 하나의 연합회가 만들어졌으니 하나 돼서 한 목소리로 우리를 알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첫 단추를 끼워 기쁘다.

-초대 이사장으로서 책임이 막중할 듯하다. 어깨가 무거울 듯.

어깨는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으로 살림살이를 맡으면서부터 무거웠다. 사실 방송연기자협회를 맡기 전에는 몰랐다. 방송연기자협회는 45년전 이순재 선배님이 만들어놓으셨는데 어느날 만나자고 하시더니 봉사를 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존경하는 선배가 말씀하시니 제가 한 번 맡아보겠습니다 했다. 맡고 보니 1800명 정도 회원이 있었는데 어려운 회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일을 했는데 정부 예산을 따보려고 해도 한계가 많았다. 그때 국회에서 만난 분들이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한국방송실연자협회, 한국성우협회, 대한민국코미디언협회 등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면 훨씬 더 동력이 붙을텐데 왜 그렇게 따로 따로냐는 말을 해주셨다. 그래서 하나의 연합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4개 단체의 마음이 같아서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를 출범하게 됐다. 현재 연극협회와도 조율 중에 있다.

-4개 단체를 통합한 것만으로도 무척 보람이 있을 듯.

상당히 보람을 느낀다. 요즘에 보면 한류의 영향으로 잘나가는 배우들이 많지만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점점 적어 어려운 배우들이 더 많다.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가 출범했으니 이제 어려운 분들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임기가 3년이다. 초대 이사장으로 꼭 하고 싶은 사업은 무엇이 있나?

제가 초대 이사장을 하면서 꼭 하고 싶은 것은 아카데미 교육관이다.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해오면서 우리 후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인성교육이라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특히 더 크게 느껴지는데 주인공을 맡아 주목받는 후배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기존 연기자들을 위한 재교육도 필요하다. 지금은 모든 드라마의 템포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다. 그에 비해 기존 연기자들은 연기에 심취돼 연기를 정성스럽게 담아내려고 하니까 빠른 호흡을 놓쳐버려서 그 시장에서 자꾸 멀어지게 된다. 옛날에는 공채 탤런트로 방송국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아서 선배들을 모시고 짧은 역할도 정말 과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런 노력을 알기에 카메라 감독님들이 단역이라도 정성껏 앵글에 담아줬고 작가분들도 대사 한줄이라도 극에 스며들게 써줬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종편까지 나오면서 호흡이 빨라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소속사 시스템으로 상업성이 우선이 됐다. 과거처럼 지상파 방송국에서 공채를 뽑지 않는다. 그로 인해 힘이 기획사로 건너갔고 기획사는 배우를 상품 가치로 본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가 아카데미 교육관을 만들어서 연기자를 발굴하고 기존 연기자를 재교육하고 프로듀서를 교육하는 등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배우들의 활동을 돕는데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 일을 하면서 놀랐던 부분이 80%의 연기자들이 소속사가 없이 활동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소속사가 없는 80%의 연기자들은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활동을 하고 싶어도 설 자리가 없어서 활동을 못하는 연기자들이 종종 나를 찾아온다. 그 분들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들을 꾸준히 찾아내려고 한다.

-연기자들의 생활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

방송연기자협회를 맡고 난 뒤 어려운 사람들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그래서 ‘아 지금까지 내가 앞만 보고 왔구나’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해오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을 돌려드릴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동료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좋은 문화를 만들자는 목표도 생겼다. 지금의 나이에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나게 된 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봉사해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을텐데 가족들, 특히 아내(전인화)의 반응은 어땠나.

집사람은 내가 어떤 일 하는지 잘모른다. 방송연기자협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창립대회 하는 날도 오지 말라고 했다. 그날 하루 참여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다. 이 일은 어쩌면 혼자와의 싸움이다. 일을 안하려면 할 일이 없다. 하려면 무궁무진하다. 아마도 지금 나이 젊은 후배들도 잘 모를거고 관심이 없을 것이다.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배우의 존재감을 작품에서 드러내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일 것이다. 젊은 후배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게 되면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돼있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서 우리 품으로 왔을 때 다음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가 선배니까 길을 많이 닦아 놓고 넘겨주고 싶다. 지금 우리 협회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후배가 송일국이다. 방송연기자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묵묵히 열심히 일해주는 송일국 후배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유동근
유동근 한국방송연기자단체협회 회장.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힘든 일인데 하는 이유는?

마음이 편안하다. 감사한 마음도 생긴다. 혼자서 기도도 해보고 그런다. ‘지혜를 주시고 기운을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한다. 그게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어려운 분들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하루 나가서 운동하는 것 보다 좋다. 또 하나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방송예술인회관을 건립하는거다. 그 옛날 김구 선생님이 이 조그만 나라는 문화강국이 되어야만 세계를 잡을 수 있다고 한 연설문 한 페이지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으로 가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한가 생각해본다. 방송예술인회관을 만들어서 여러 단체가 모여 합심하게 되면 문화강국으로 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어려운 일이지만 해볼만한 일이라고 본다.

-연합회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예산이 무척 중요할 것 가다. 예산은 어떻게 확보하고 있나.

한국방송실연자협회가 예산의 주요 발생처다. 재방송을 하면 비용을 받기 때문이다. 연합회 예산의 첫 단추는 거기서 풀리게 되지 싶다. 또 이제 여러 기획들을 만들어서 정부에 안을 내보려고 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연기와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듯하다. 게다가 최근 안방극장 활동이 뜸하다.

지금 안방극장은 젊은 세대로 세대교체가 됐다고 봐야 한다. 또 작가분들도 젊은 여성작가분들이 많으니까 드라마 소재 자체가 가족 소재가 적다. 그러다 보니 저뿐 아니라 아까운 배우들이 사실은 기차를 타지 못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역 대합실에 앉아만 있다. 배우는 뽑혀야 가서 연기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뽑힐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게 기본 훈련이다. 뽑혔다고 모든 작품을 할 수도 없다.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어려운 작업을 끝까지 배우의 끈을 놓지 않고 모범적으로 하고 계신 이순재 선생님 같은 분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절로 나온다.

-1980년에 데뷔해 38년간 연기활동을 이어왔다. 40년 가까운 연기자 생활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배우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옛날의 배우에겐 자유가 있었다. 그래서 배우가 멋있었다. 그런데 지금 배우에게는 자유가 적다. 들여다 보고 간섭하고 뭘 해도 도덕적 잣대로 평가한다. 과거에는 작품에 도전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재미가 덜해진 듯하다. 그래서 다시 선택하라면 연기자를 선택하지 않을수도 있겠다 싶은데 또 연기를 안했으면 집사람을 못만났을테니 그건 또 안된다. 집사람은 전인화만의 독특한 신뢰라는 걸 갖고 있는 사람이다. 예쁘다는 말 말고 뭔가 다른 표현이 필요한 여자다. 옆에서 지켜보면 욕심을 안부린다. 뭔가 큰 걸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적당히 마음이 약하고 적당히 자기 고집도 있다. 그렇게 생활하니까 엄청난 미모가 아닌데 편안하면서 깨끗한 신뢰가 예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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