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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23일 중국전에서 먼저 실점한 뒤 킥오프를 준비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감독의 패배다.”

중국전 0-1 패배의 충격이 한국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전 패배는 선수들의 패배 이전에 감독의 패배로 볼 수 있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팀은 한국이 질 수밖에 없었던 패인 3가지를 떠올리며 결국 사령탑의 지략 대결과 그에 따른 단조로운 공격이 화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질 수밖에 없었던 패인 3가지

중국대표팀을 지난해 11월부터 맡은 이탈리아 출신 마르첼로 리피는 신문선 연구소가 분석했던 ‘대 중국전 종합경기분석’에서 경계해야 할 불안요소로 지목했던 3가지 테마를 갖고 경기를 펼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을 꺾었다. 리피 감독은 보다 적극적인 공격 진행과 조직적인 압박으로 통해 지난해 11월 카타르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펼쳤다. 한국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리피 감독은 조직적인 압박을 바탕으로 좋은 경기를 펼쳤다. 가오홍보 전 감독보다 유기적인 패스를 중시했다. 가오 감독이 이끌었던 지난해 9월 홈 중국전과 이번 원정 중국전 데이터를 비교 분석하면, 점유율은 41%에서 44%로 증가했고 패스는 290개에서 392개로 늘었으며 성공률 또한 50%에서 54%로 늘었다. 반면 크로스는 9회에서 5회로 줄었으며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오프사이드는 1회에서 7회로 늘었다. 이것은 윙백의 전진을 통한 크로스 중심의 전술에서 공격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침투패스를 통한 공격을 시도하는 ‘리피 중국’의 변화를 설명한다.

‘리피 중국’ 기본적인 공격패턴은 조직적 압박 후 공격수의 침투를 노리는 공격적인 역습이었다. 전방의 공격진은 우레이와 왕용포 위다바오의 쓰리톱으로 구성됐는데 수비 때 위다바오가 한국의 뒷 공간을 철저히 노렸다. 또한 측면 공격수들은 4-5-1 혹은 5-4-1 형태로 내려 앉아서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고는 공격 때 서로의 위치 변경을 통해 역습을 진행했다. 이러한 형태의 역습은 35%로 떨어지는 공격지역 패스 성공률과 오프사이드 7회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점유를 확보하고 공격할 때는 하오준민과 왕용포가 모두 측면에 위치했다. 이는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유리한 공격을 풀어나가기 위한 전술을 구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리피 감독이 한국전을 앞두고 가장 준비를 잘한 부분은 역시 수비다. 중국의 변화된 압박에 슈틸리케는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중국은 1차전과는 다른 수비양상을 보였다. 데이터론 대인 압박 빈도에서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으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했다. 가오 감독의 중국은 포지션 이탈을 통해서 효율적이지 못한 압박을 보여주는 반면 리피는 대인 압박과 함께 패스를 받을 선수들에게도 부담을 줬다. 4명이 순간적으로 한국 공격수를 에워싸 볼을 따내는 장면도 보여줬다. 압박으로 인한 한국의 짧은 패스 비율은 지난 9월 중국전 20%에서 이번 경기 14%까지 떨어졌다. 한국의 패스 성공률도 약 8% 낮아졌다. 패스 성공률이 낮아진 한국은 제대로 된 공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중국의 변화된 수비가 효율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 중국의 공중볼 경합 성공률이 기존 35%에서 67%로 증가하며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패스차단은 35회에서 41회로 증가했는데 선수들의 위치선정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수비 전술에서 특히 펑샤오팅과 정즈는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전북 출신 펑샤오팅의 적극적 마크는 한국 공격수들의 볼 키핑을 힘들게 했다. 후반전 공격 전개에선 가로채기 뒤 전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리피 감독의 전술 핵은 정즈였다. 정즈는 4-3-3 포메이션의 중앙미드필더에 위치했다. 그의 위치선정은 한국 공격을 상당히 힘들게 했다. 정즈는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때 중앙에서 빌드업을 맡았다. 하지만 수비할 땐 중앙 수비수들 가운데 혹은 옆에 위치하면서 파이브백 형태를 보였다. 정즈는 수비적 위치 선정으로 한국 공격수의 침투 공간을 커버했다.

리피 감독의 짜임새 좋은 역습 전술과 수비수들 활약에 힘입어 중국은 한국을 이길 수 있었다. 그런 전술을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분석과 사전 준비였다.

◇한국이 상대 역습에 말리는 전술적 문제

중국이 정확한 철저한 분석과 사전 준비로 좋은 성적을 낸 것과 다르게 한국의 준비는 형편 없었다. 중국 원정에서도 같은 포메이션과 같은 전술로 나섰다가 화를 불렀다. 풀백이 바뀌고 중앙 미드필더가 한국영에서 고명진으로 바뀌었으나 전술적 역할은 거의 동일했다. 역시 점유율을 늘리며 공격하는 전술이었다.

문제점도 동일했다. 점유율을 가져가기 위해선 선수들의 간격을 좁히고 수비라인을 올려야 한다. 그 수비라인 넓은 뒷공간은 점유율을 높이는 팀의 아킬레스건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약점을 막는 방법은 조직적 전방 압박이다. 공을 빼앗기자마자 수비를 위해 선수들이 단순히 물러서는 것은 좋지 못한 방법이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압박으로 상대의 공격 전개 속도를 늦춰야 한다. 한국은 최종예선 6경기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이지 못했으며 이번 중국전에선 더 심했다.

이전 5경기에선 평균 21회의 전방압박을 했다. 중국전에선 7회에 그치며 소극적이었다. 이게 바로 중국이 역습에서 볼 전진을 매끄럽게 이어나간 이유다.

◇한국의 무의미한 점유, 그리고 형편없는 득점력

뒷공간이 뚫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높은 점유율을 선택했으면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은 항상 무의미한 점유율에 그쳤으며 중국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무의미한 점유율이란 비판에 답을 내놓으려는 듯 공격지역 패스 비율을 지난 5경기 평균 21%에서 중국 원정 27%로 늘렸다. 하지만 슛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슛 횟수는 평균 11.4회에서 중국전 12회로 큰 차이가 없었다. 유효슛 역시 평균 3회에서 5회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 중 두 차례는 기성용의 먼 거리에서의 슛이었다.

문제는 단순한 공격패턴이다. 한국은 측면공격에 이은 크로스 공격이 주 패턴이다. 김신욱 투입 이후엔 그의 헤딩 패스에 이은 2선 침투를 통해 공격을 풀어나간다. 득점 역시 그 두 패턴이 대부분이다. 중국 원정에선 더 심각했다. 손흥민과 이청용이 없는 측면 공격은 지지부진했고 김진수와 이용으로 대체된 풀백 역시 크로스가 최악이었다. 오늘 경기 크로스는 22번 시도해 3번만 성공, 14%의 성공률로 최악이었다. 김신욱 역시 준비를 철저히 한 펑샤오팅에 번번히 막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 가지 공격 루트로는 철저한 대비를 한 상대 수비수에게 유리하게 작용 할 것이 틀림없다.

◇맨마킹 낙제점, 실점의 핵심이 되다

위다바오의 전반 34분 실점은 수비수 홍정호가 맨마킹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나타났다. 홍정호는 위다바오의 움직임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위다바오는 자유롭게 코너킥 낙하지점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수비 가담한 지동원은 등 뒤에서 쇄도하는 위다바오를 파악하지 못해 실점을 막지 못했다. 중국의 준비된 세트피스를 칭찬할 수도 있지만 한국 선수간 콜 미스, 마킹 실수, 가까운 쪽 포스트 수비수 미배치 등 많은 문제가 종합되어 나타났다.

◇볼터치로 나타난 이정협과 김신욱의 차이

한국은 지난 9월 중국과의 홈 경기보다 데이터론 더욱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총 12개의 슛을 기록했는데 유효슛은 5개였다. 팀 내 가장 많은 슛을 기록한 선수는 지동원이었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출전한 지동원은 오른쪽 측면 뿐만 아니라 최전방과 중앙지역을 드나들며 답답했던 한국의 공격에 활발함을 더했다. 기성용의 중거리 슛 2개가 모두 유효슛으로 기록되었으며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남태희 구자철 황희찬 이정협은 각 1개의 슛을 날렸는데 특히 남태희는 왼쪽 측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으로 중국 수비수 흔들어 놓는 역할을 수행했다. 반대로 이정협은 최전방 공격수로서 출전했지만 특별한 활약이 없이 하프타임에 교체당했다.

볼 터치 기여도를 보면 고명진은 기성용과 투 볼란테로 배치되어 39번의 볼터치를 기록, 빌드업의 기점이 되었다. 황희찬과 허용준은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되며 각각 6번과 2번의 볼터치를 기록했는데 공격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이정협과 김신욱을 비교하는데 볼터치는 좋은 지표가 된다. 이정협은 전반전 높은 위치에서 머리로 침투하는 공격수에게 볼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11번의 터치를 하는데 그쳤고 하프타임 교체되었다. 반면에 김신욱은 이정협보다 낮은 위치에서 머리와 발을 통해 22번의 터치를 기록하며 공격진영에서 보다 볼이 도는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경기에서 슈팅과 터치면에서 한국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선수는 손흥민과 이청용이다. 손흥민과 이청용은 측면 공격을 이끌며 많은 공격 지표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전에는 둘 다 나오지 못했다. 양측면에서 제대로 흔들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경기에서 공격패턴이 단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리아전에는 손흥민이 나오면서 부족했던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원정에서 가장 많은 슛을 기록했던 지동원이 경고누적으로 다음 경기인 28일 시리아와의 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따라서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 전 경기에 출장한 지동원의 부재라는 또 다른 고민을 안게 되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 원정에서 손흥민이 빠진 자리를 감독의 임기응변으로라도 극복하길 바랬으나 그렇지 못했다. 시리아는 24일 우즈베키스탄을 1-0으로 누르면서 경기력이 대폭 강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들은 상대팀을 철저히 분석하고 공략해야만 한다. 이번 중국전 같은 경기력과 무기력함을 보여준다면 약체라고 평가받는 시리아에게도 무릎 꿇고 본선 진출마저 힘들게 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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