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현
데스크가 만난 사람. 박기현 배드민턴협회 회장. 2017.03.09. 올림픽공원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위원석 체육1부장]한국 배드민턴은 역대 올림픽에서 대표적인 ‘효자 종목’으로 꼽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7개 대회에서 금 5개,은 7개,동 6개 등 총 18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중국 덴마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과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배드민턴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것은 의외로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86년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는데 이때 진행됐던 경기가 국내에서 열렸던 첫 배드민턴 국제대회였다면 아마도 믿기 힘들어하는 팬들이 적지 않을 것같다. 박기현(70)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은 국내 배드민턴의 산 역사나 마찬가지다. 박 회장은 1986 아시안게임 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당시 대회 심판운영담당관으로 일했는데 국내에서 열리는 첫 배드민턴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불과 8년전인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때 우리 배드민턴은 ‘나가봤자 메달을 따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파견 거부를 당했던 종목이었다. 우여곡절끝에 4명의 선수를 파견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수모를 당했던 종목이었다. 4년뒤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강행숙-황선애가 여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기폭제를 마련했다.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첫 (배드민턴)국제 대회를 열게 됐는데 말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국제대회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아시안게임을 치러야 하니 얼마나 노심초사했겠는가.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전영오픈에 견학도 다녀오고, 세계배드민턴연맹의 심판이사를 초빙해 강습도 받으면서 심판교육을 시키고, 운영요원들도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없어서 우리가 일일이 다 만들어야 했다. 매일 밤을 새워가면서,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면서 일을 했다. 지금 뒤돌아봐도 내 평생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던 적은 없었다. 서울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배드민턴인들이 정말 죽을 고생들을 했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박 회장이 한국체대로 스카우트했던(당시 그는 한체대 교수로 일하면서 배드민턴팀을 지도하고 있었다) ‘훗날의 배드민턴 황제’ 박주봉(당시 한체대 4년)이 3관왕(남복·혼복·남자단체)에 오르며 한국 배드민턴 역사의 새 장을 활짝 열었다. 박 회장은 이후에도 배드민턴 현장을 단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 한체대 출신으로 그의 손때가 묻은 박주봉 황혜영 라경민 이동수 등은 한국 배드민턴의 간판이 됐다.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통합해 통합배드민턴협회가 출범했을 때 박 회장은 초대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제 올림픽 효자종목인 엘리트쪽의 부활을 물론 축구 다음으로 국내 동호인수가 많다는 생활체육 파트의 관리까지, 한국 배드민턴 전체를 조율하고 이끌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됐다. 마침 배드민턴협회는 박 회장 부임 이후인 지난 3일 대만 브랜드 ‘빅터’와 연간 70억원 규모(현금+현물)로 4년간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면서 또한번 ‘대박’을 터뜨렸다. 빅터는 이번 계약으로 2009년 이후 2021년까지 12년간 배드민턴협회의 메인스폰서를 맡게 됐다. “(임기 4년동안)탄탄하면서도 정직하고 올바른 협회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싶다”는 박 회장을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내 있는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빅터와 다시 한번 4년간 메인 스폰서십를 맺게 됐는데 의미를 설명해 준다면.

우리들이 대기업을 회장사로 모시지 못한 상황에서도 협회가 자생력을 가지고 대표선수 지원과 유소년 육성 등의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거액의 스폰서십 유치로 협회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배드민턴의 에이스였던 이용대가 요넥스에 입단하면서 그동안 빅터 브랜드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누렸던 ‘이용대 마케팅 효과’가 없어진 것으로 고려하면 꽤나 큰 계약조건이다. 빅터가 ‘이용대 없는 한국배드민턴 대표팀’에 계속 투자 의지를 가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걱정하고 염려했던 부분이었다. 세계 최고 스타가 (대표팀에서)빠진 것은 사실아닌가. 그럼에도 빅터가 변함없이 투자를 한 것은 한국 배드민턴의 잠재력과 미래 발전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평가한다. ‘제2,제3의 이용대’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면 그런 투자는 힘들었을 것이다.

-배드민턴협회는 자생적으로 마케팅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아마추어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 부분에서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선 그동안 세계적인 스타가 배출되면서 대표선수들 활약이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최근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이전에는 박주봉 방수현 김동문 나경민 이용대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나왔다. 배드민턴협회가 성공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협회는 1980년대부터 이미 세계적 배드민턴 용품 회사인 요넥스를 후원사로 유치했다. 지금 한국실업배드민턴연맹을 맡고 있는 김학석 회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어떤 종목의 협회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후 한국 배드민턴은 급상승 물결을 탈 수 있었다. 또 국내에서 배드민턴이 동호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아직 정확한 숫자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대략 200~300만 동호인이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생활체육의 무한한 잠재력도 뒷받침을 해줬다.

-하지만 공식 스폰서업체의 용품(특히 라켓)을 모든 국가대표가 의무적으로 사용하면서 경기력에 악영향을 준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다. 런던과 리우 올림픽에서 부진하면서 이런 논란이 있었는데.

일부에서 그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빅터 용품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질적 향상을 이뤄냈다. 리우 올림픽에서 중국이 금메달 두개를 따냈는데 자국 브랜드인 리닝을 썼다. 지난 두번의 올림픽에서 부진했던 것은 용품의 질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기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협회는 이번 스폰서십을 바탕으로 더 많은 선수를 국제대회에 참가시켜 경기력을 높이려고 한다. 또 스폰서 선정은 공개 입찰이어서 더 많은 금액을 써낸 후원사를 선정할 수 밖에 없다.

-우여곡절속에 이용대가 대표팀에서 조기은퇴한 것도 스폰서십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용대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인은 공개적으로 “대표팀이 불러만 주면 들어갈 준비가 됐다”고 말했는데.

이용대 문제는 굉장히 어렵고 예민한 사안인 것은 사실이다. 선수가 개인적으로 (대표팀에서)사퇴한 것이고 당분간은 개인적인 활동을 할 것으로 알고 있다. 소속팀(요넥스)의 사정도 있기에 (대표팀 복귀에 대해)즉답을 하기는 어렵다. 만일 이용대가 대표팀 복귀를 할 의사가 진짜로 있다면 협회 내부적으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절차나 형식면에서도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다. 다만 이용대는 한국 배드민턴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선수이기에 앞으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올림픽에서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었던 배드민턴이 런던과 리우 올림픽에서 각각 동메달 하나에 그치는 부진에 빠졌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반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 한국 스포츠는 큰 변화의 시기에 있다. 비록 최근 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이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우리 배드민턴이 퇴보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물론 국가대표를 포함한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서 이전과 다른 마인드가 있는 것은 일부 맞는 것같다. 머라고 할까, 국가대표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협회는 대표선수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지난 두번 올림픽에서의 침체가 단순히 선수들의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총체적으로는 협회에게 책임이 있다. 더 깊게 반성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연구하고 있다. 협회는 올해 통합을 잘 마무리하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원년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즉생’의 각오로 배드민턴의 명성을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 강경진 감독을 신임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하면서 지도자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신임 감독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소 예민한 부분이다. 일단 대표팀 감독 교체는 리우 올림픽에서 동메달 1개로 저조했던 성적의 책임을 묻는 부분이 있다. 새로운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는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줄 것이다. (대표팀 운영에 대한)권한을 충분히 주고, 이에 따른 책임도 지게 할 것이다. 코칭스태프가 요구하는 부분도 다 들어주려고 한다. 일단 이번 코칭스태프는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책임을 지게 된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종의 ‘중간평가’라고 할 수 있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도쿄로 가는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그대로 도쿄까지 갈 것이다.

-임기중 맞는 2020 도쿄올림픽의 목표는 무엇인가.

오는 8월 스코틀랜드에서 세계선수권대회도 열리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재도약을 위한 교두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 판단하지 않겠다. 코칭스태프뿐만 아니라 협회 회장단도 공동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올인을 하겠다. 도쿄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겠다. 복식에서 우선적으로 (금메달)목표를 잡고 있지만 단식에서도 손완호(남단) 성지현(여단) 등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효자종목의 명성을 꼭 되찾겠다.

-한국 배드민턴은 전통적으로 복식이 단식보다 강했다. 단식을 강화할 방안은 있는가.

배드민턴은 5종목(남단,여단,남복,여복,혼복)이 기본인데 고르게 발전해야 하는 것이 맞다. 복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단식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대회 방식부터 바꿔 가고 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초등부 5단식 단체전 대회 개최다(이전에는 모든 단체전이 3단2복으로 열렸다). 단식 우수 선수를 양성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또 국가대표팀은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단식 지도자인 아구스 산토스 코치를 지난해 영입했다. 단신 선수들에게도 의욕을 갖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겠다.

박기현
데스크가 만난 사람박기현 배드민턴협회 회장. 2017.03.09. 올림픽공원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올해부터 열리는 코리안리그를 소개해 달라.

이전에 실업연맹맹이 주관한 코리안리그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대회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경기가 함께 열리는 축제로 벌어지게 된다. 동호인들에게도 자긍심을 주고 하나로 통합된 배드민턴도 기념하게 된다. 인천공항공사에서 스폰서를 해주기로 했다. 연간 4회 정도 열릴 계획인데 엘리트선수는 물론 동호인을 포함해 5000명 이상이 참가할 수 있다. 현재 코리안리그 관련 TF팀을 운영하면서 구체안을 연구하고 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통합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데 초대 통합 회장으로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지난 해 통합총회때 이런 말씀을 드렸다. 첫째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 소통의 통로를 활짝 열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해 엘리트,생체 구분없는 진정한 통합 배드민턴협회를 완성하겠다. 두번째 우리 배드민턴의 옛 명성을 회복해 위상을 높이고 저변 확대에 주력하겠다. 셋째 통합과 상생의 정신으로 100년 대계의 초석을 마련해 후대들에게 밝은 미래를 넘게주겠다. 이런 마음으로 협회를 이끌고 있다. (통합이후)17개 지방협회 가운데 무려 13개 협회의 장을 생체쪽 분들이 맡고 있다. 이분들이 배드민턴협회의 정책을 누구보다 이해해주면서 열성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나도 그분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모범적인 통합협회를 만들고 싶다.

-배드민턴은 축구 다음으로 동호인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생체쪽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배드민턴이 이렇게 국민스포츠로 성장한 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동호인수는 약 200~300만으로 추정된다. 아직 정확한 수치를 모른다. 그래서 현재 등록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새로운 시스템 적용을 위해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중이다. 등록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국 동호인 대회 운용 방안을 만드는 등 국민 스포츠로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한 여러 가지 안을 모색 중이다. 동호인대회 수는 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규모 대회만 5개다. 한 대회 참가인원수가 3000~5000명 수준이다. 각 시도협회에서 개최하는 대회는 17개의 시도협회장기 대회가 있고 시군구에서 개최하는 대회는 수백 개가 된다. 엄청난 규모다.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서 협회 주도로 등록시스템, 경기 진행프로그램 등을 개선할 방안이다. 배드민턴에서 생체 활성화는 매우 중요하다. 배드민턴은 가족 스포츠다. 적은 비용으로,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한 운동이다.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또 하다보면 (엘리트 경기를)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중독성이 크다. 이런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법과 질서가 있는 협회’, ‘공정하고 원칙을 지키는 협회’를 만들어 가겠다.

-배드민턴협회는 1957년 정식으로 창립돼 올해로 60주년을 맞게 된다. 이에 걸맞는 사업계획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올해는 통합 1년째로 안정된 협회를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또 한국 배드민턴 60년을 정리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올해 발간될 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그동안 이룬 성과를 잘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초창기 배드민턴 보급을 위해 고생하셨던 숨은 공로자분들도 자료를 확인하고 있고 연말에 이분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하고 싶다. 60년사 발간을 위한 기초 자료도 모으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먼 훗날 ‘박기현’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그냥 평범하게 남고 싶다. ‘우리 선배중에 이런 사람도 있었다’는 정도로. (나에 대한)평가는 후배들의 몫이다. 내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하는게 아니다. (이번에)회장을 맡기 전에도 고민을 많이 했다. 만일 후배들이 우리 선배들로부터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다면 그것은 돈이나 자산이 아닌 ‘바른 협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체육계가 다 알듯이 우리 협회는 자산도 꽤 많다. 그러나 이런 자산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귀감이 될 수 있는 협회’라고 믿고 있다.

batman@sportsseoul.com

◇박기현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프로필

▲1947년 12월 10일 광양생 ▲순천중고~경희대 체육학과 ▲한국체대 교수(1983~2012년) 한국체대 사회체육대학원및 교육대학원장(2008~2009년) 대한체육회 이사(2005~2009년) 한국대학배드민턴연맹 회장(2009~2012년)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2001~2016년)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현재) ▲제9회 뉴델리아시안게임 국제심판(1982년) 제10회 서울아시안게임 심판운영담당관(1986년) 제24회 서울올림픽 심판운영담당관(1988년)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사무총장(2002년·이상 배드민턴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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