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선수 시절 7번의 우승, 8번의 골든글러브 수상 등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한대화 KBO경기운영위원은 현역 은퇴 후 곧장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제 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비롯해 삼성 라이온즈 타격·수석코치, 한화이글스 감독, KIA 타이거즈 2군 감독·수석코치를 거치며 영광과 아쉬움을 함께 했다.


선수 은퇴 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연수가 계획돼 있던 한대화는 모교인 동국대학교 측의 부탁을 받고 연수 계획을 철회하고 동국대 야구부 감독을 맡게 된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최초로 대학 팀 감독을 맡게 된 것이었다.


동국대 감독을 역임하면서 그가 가르친 제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박정권, 송광민, 박한이, 박희수, 이여상, 유한준, 정원석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현재까지도 프로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대화 위원은 "제자들이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며 웃어보였다.


한대화는 2003년 자신과 인연이 깊은 선동열 감독이 이끌던 삼성 라이온즈 타격 코치로 부임하며 프로 무대에 지도자로 복귀했다. 이후 삼성의 수석코치가 된 그는 2005년과 2006년 2번의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지도자로서 처음 맛보는 우승이었다. 한대화 위원은 "사실 해태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엔 그렇게 특별하게 나서서 할 일이 없었다.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라며 "지도자로 복귀한 삼성에서는 선수들이 스스로 움직이게끔 유도했다. 선수들마다 개성이 다 다르고 그것을 빨리 캐치해서 관리하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의욕적으로 뛰게 끔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이 우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나 보람을 느꼈다"고 선수 시절 맛본 우승과 지도자로서 경험한 우승의 차이점을 밝혔다.


삼성에서의 영광을 뒤로하고 한대화는 2009년 한화이글스 8대 감독으로 선임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시 한화이글스는 주포 김태균과 이범호가 모두 일본으로 떠난 상황이었고, 거기다가 군입대 할 선수들마저 줄서 있었고 은퇴하는 선수도 많았다. 한 마디로 다음 시즌을 제대로 이끌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한대화 위원은 "김태균과 이범호가 일본에 간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다. 한화가 고향팀이고 먼저 제의가 왔기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감독을 맡기로 결정할 때 팀을 만들어보자는 뜻을 세우고 한화로 갔다"며 한화 감독직을 수락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한대화의 한화이글스 감독 시절은 다사다난했다. 2010년엔 프런트의 선수관리 미숙으로 송광민이 시즌 중 군입대를 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상황을 묻자 한대화 위원은 "이제와서 누굴 탓하겠나. 그 때 송광민이 3루수로 자리 잡으면서 공수에서 점점 좋아지는 상태였다. 그 런데 군대를 가게 된 것이다. 많이 아쉬웠다"고 답했다.



2010년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한화이글스는 2011년 공동 6위를 기록하며 탈꼴찌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2년 일본에서 돌아온 김태균과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영입하며 투타에서 전력강화를 이뤘다. 언론에서는 한화를 '4강 또는 우승전력'이라고 다음 시즌 성적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대화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전력을 약했지만 야구는 재밌게 했다. 선수들도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2011년에 공동 6위하고 그 다음 시즌에 김태균하고 박찬호를 영입했다. 언론에서 4강후보, 우승후보로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그럴 만한 팀 전력이 아니었다. 선수들도 이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꼈다."


기대 여론 속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지만 주변 환경도 한화이글스를 돕지 않았다. 한대화 위원은 "시즌 개막때까지 대전 홈구장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약 한 달간 청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또 공교롭게 일정상 한 달간을 천연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인조잔디에 익숙해져 있는 선수들이 천연잔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고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전했다.


또 한대화 위원은 "3할타자가 2010년 정원석 한명, 11년도 이대수 한명이었다. 12년도에는 김태균 한명이었다. 그 당시 잘나갔던 롯데는 3할 타자가 4~5명 정도 나왔다. 최다안타도 140~160개 친 타자도 다수였다. 박찬호도 노력을 많이 했다. 야수들이 뒷받침이 됐으면 10승 가까이는 했을 거다. 오죽했으면 류현진이 2012년도에 평균자책점이 2점대인데 9승밖에 못했겠나. 3할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별로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이 우리팀을 4강, 우승후보로 꼽으니 선수들의 부담이 컸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대화 감독은 2012년 8월 28일 한화이글스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다시 야인이 된 한대화는 2013년 선동열 감독이 이끌던 KIA 타이거즈 2군 총괄 코치로 가면서 빠른 시간에 현장에 복귀했다. 한대화 위원은 KIA로 가게 된 이유에 대해 "1군보다는 2군에서 선수들을 직접 키워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2군에 있던 한대화는 불과 1년만에 1군 수석코치로 승격됐다. 이에 대해 그는 "2군으로 간지 1년 뒤에 KIA가 성적이 안 좋으니 수석코치로 올라오라고 하더라. 1군보다는 2군에서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팀 사정상 1군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1군에 올라간 것에 대해 팬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2014년 선동열 감독이 물러나면서 함께 코치직에서 물러난 한대화는 2015년부터 KBO 경기운영위원을 맡아 전국 야구장을 돌며 한걸음 뒤에서 야구와 함께 하고 있다. "현장에서 경기를 운영할 땐 보기가 쉽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고 밝힌 한대화 위원은 감독 복귀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라며 "1, 2군 상관없이 선수들과 호흡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갈 준비는 되어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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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장원기자 superpow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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