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매치
지난해 8월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슈퍼매치가 열리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프리미어리그 관전을 위해 영국을 갈 때 놀라는 것은 사람들이 ‘축구’란 상품에 쓰는 돈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리버풀 등 ‘빅클럽’의 머천다이징을 파는 메가스토어는 사람이 넘쳐 구단이 입장객 제한을 할 정도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필자는 2007년 이동국이 뛰던 미들즈브러를 찾아 토트넘과의 홈 경기를 관전한 적이 있었는데 후반 초반 3번째 골을 내줘 미들즈브러 패색이 짙어지자 2만여 홈팬들이 우루루 경기장을 뛰쳐나가 토트넘 원정팬들만 남아있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정도면 단순한 팬들의 항의를 넘어 구단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편하게 보기엔 영국보다 한국이 낫다는 역설도 느꼈다. “한국에선 박지성 경기를 지상파에서도 한 시즌에 2~3차례 해준다”는 말에 퀸즈파크 레인저스 관계자가 깜짝 놀란 기억도 난다. 지상파가 아니어도 한 달에 2만원 안팎의 시청료를 내면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비롯해 영화 예능 음악 등의 수백가지 채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한국 아닌가. 영국에선 한 달에 9만원을 내야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갖고 있는 채널을 고화질로 시청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경기장을 매주 ‘교회 가듯이’ 찾든가 아니면 맥주를 마시며 펍으로 발걸음을 옮기거나 아니면 BBC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본다.

물론 100년을 훌쩍 넘어 사람들의 생활이 된 프리미어리그와 한국의 K리그를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K리그의 사건 중엔 프리미어리그 ‘뺨 치는’ 일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부진하자 팬들이 구장으로 몰려와 감독을 불러내 사과를 받고 심지어 감독 무릎까지 꿇게 하는 것 등이다. 관중석에서 욕설과 비판을 하는 경우는 유럽이 더 심하지만 소수의 팬 앞에서 감독이 싹싹 ‘비는’ 사건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선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처럼 기업이나 지자체가 구단 운영비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현실에선 팬 혹은 서포터의 욕심과 공헌도에 괴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지난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맨유는 연간 수입 중 경기가 열리는 날 벌어들이는 ‘매치데이 수입’이 20%, 머천다이징과 스폰서 등에서 거두는 ‘커머셜 수입’이 53%라고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각각 19%와 48%, 이탈리아 유벤투스는 각각 13%와 30%를 기록하고 있다.

맨유나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입장에서 팬들의 불만과 항의는 곧 ‘돈’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팬들의 니즈를 충족하지 못하면 구단 재정부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이나 일본 프로축구가 최근 번성하고 거액의 텔레비전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는 이유에도 ‘팬=돈’이 성립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K리그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나 구단이 키워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팬들이 크게 만들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 시즌 막판 한 유력 구단 관계자는 “사실 관중 수가 늘어나면서 이런 저런 상품을 만들어서 팔아보지만 수입액도 미미할 뿐더러 상품의 질을 갖고 논란이 있어 고민이 많다”고 했다. 대부분 구단의 1년 입장객 총수입이 선수 중 최고 연봉자에 못 미친다는 부끄러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구단은 자선사업하면서 욕까지 먹는 곳이 아니다. 닭(좋은 상품)이 먼저인지, 계란(팬들의 소비)이 먼저인지를 따져야 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팬=돈’이 성립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감독의 무릎을 꿇게 하는 일은 ‘넌센스’란 것이다. 이웃 일본은 팬과 지역기업이 돈을 모아 축구전용구장까지 짓는 시대가 왔다. 올해는 팬들의 ‘팬심’ 못지 않게 ‘재정적 기여도’도 나아지는 해가 됐으면 한다. 그래야 팬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셀링 리그’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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