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은메달
이상화가 21일 일본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제8회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오비히로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오비히로=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이)상화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땐 5위하고 펑펑 울었는데, 이젠 울지 않네.”

21일 일본 오비히로 포레스트 오벌. 2018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또다시 고다이라 나오(일본)에게 밀려 은메달을 따낸 이상화(28·스포츠토토)가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웃으며 얘기하자 옆에 있던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이상화는 2006 토리노 올림픽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출전해 500m에서 5위를 기록한 뒤 펑펑 울었다. 당시 성적은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500m에서 5위를 차지한 유선희와 함께 역대 한국 여자 선수 최고 성적이었다. 이른 나이에 올림픽 무대를 밟았음에도 그만큼 승리욕이 대단했던 이상화다. 그 저력은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대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2연패 역사를 세운 원동력이 됐다.

어느덧 대표팀 최선참으로 거듭난 이상화는 이젠 눈물이 아닌 독기어린 웃음을 짓고 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에서 3연패를 노리는 그는 올 시즌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고다이라에게 아시안게임에서도 두 번이나 금메달을 내줬다. 전날 1000m에서 4위를 기록하며 예열한 이상화는 주종목인 500m에서 7조 아웃코스를 배정받아 인코스의 고다이라와 정면 대결을 펼쳤다. 초반에 강한 스프린터답게 출발이 좋았다. 10초44로 끊으며 10초52인 고다이라를 앞섰다. 결승선을 앞두고 코너까지도 비슷했다. 하지만 이후 고다이라의 스퍼트가 빛났다. 결국 이상화가 0.31초 차로 아쉽게 패했다. 동메달은 37초735를 기록한 중국의 위징에게 돌아갔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이상화와 고다이라,위징이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도 이 종목 우승을 다툴 삼두마차임을 재확인했다. 지난 10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3명은 고다이라와 이상화 위징 순서대로 금·은·동메달을 나눠가졌다. 아시아의 1~3위가 세계의 1~3위인 셈이다. 시상대에서 선 고다이라는 밝게 웃으며 이상화 위징과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이상화는 표정에서 아쉬운 마음이 느껴졌다. 지난해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대회에서 오른 종아리 근육 미세 파열 부상을 입은 그는 2009~2010시즌 이후 7년 만에 ‘노골드’에 그쳤다. 그 사이 고다이라가 6차례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모두 가져갔고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마저 독식했기에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화는 웃었다. “정상에 있으면 다른 선수에게 잡힐까 봐 긴장할 것”이라고 말한 그는 “이젠 위치가 바뀐 셈이어서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500m가 한 번만 타는 것으로 바뀌면서 ‘이것만 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욕심이 과해진다. (오늘)마지막까지 내 스케이팅을 해야 했는데 조급했다. 그래도 이전까지 좋은 경기력이 나와서 만족한다”고 했다.

이상화 위징 고다이라 프로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거리에서 경쟁하게 될 이상화 위징 고다이라 나오의 프로필. 그래픽 | 김정택기자

이상화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월드컵에선 모두 정상에 섰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 인연이 없다. 2007년 창춘 대회에선 은메달,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선 동메달에 그쳤다. “징크스는 사람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강조한 그는 “물론 올해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전 (종아리)부상이 겹쳤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다”고 했다. 이상화는 평소보다 목이 칼칼하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일본에 와서 감기에 걸렸다. 뭐 누구나 다 걸리는 것 아니냐”며 경기력과 무관하다는 뉘앙스로 얘기했다. 그리고는 메달을 들고 사진 촬영을 요구한 취재진에게 “은메달이 더 예쁘다”면서 씩 웃었다. 부상을 안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쾌조의 오름세를 타는 고다이라를 바라보는 마음이 온전히 편할 수 없는 이상화다. 그러나 “이젠 대표팀 선배로 솔선수범하고 서로 예민해지지 않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어려운 상황에 대해 감정 표현에 솔직한 그였지만 이젠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더 강해지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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