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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전북 감독이 지난달 31일 UAE 두바이 세븐스스타디움에서 열린 전북-아스타나 친선 경기 도중 관중석 상단에 올라 두 팀 격돌을 지켜보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두바이=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지 뭐.”

이국에서 만난 최강희(58) 전북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전북은 지난 2006년 신인 때부터 함께했던 ‘원클럽맨’이자 주장인 골키퍼 권순태를 일본 J리그 우승팀 가시마 앤틀러스로 최근 떠나보냈다. 물론 전북 입장에선 어느 정도 실리를 챙겼다. 권순태는 가시마에서 3년간 기본 연봉 1억엔(약 10억2000만원)을 받는데 전북도 그와 비슷한 이적료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권순태가 33살이나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이적료 수입이었다. 하지만 이면을 들춰보면 권순태의 이탈로 인한 공백이 큰 것도 현실이다. 전북은 이달 초 측면 공격수 레오나르도까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자지라로 이적시켰기 때문에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의 두 공신을 모두 잃은 셈이 됐다. 주축 선수의 둘의 빈 자리가 크다. 하지만 31일(한국시간) 전북 전훈장인 UAE 두바이에서 만난 최 감독은 담담했다. 그는 “전북은 이제 한두 명 빠졌다고 무너지는 팀이 아니다”면서 이들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골키퍼 긴급 미팅 “권순태도 방출될 뻔, 너희도 할 수 있다”

최 감독은 권순태의 이적이 확정된 뒤 두바이 전훈에 따라 온 다른 3명의 골키퍼인 홍정남 황병근 김태호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멤버였던 최은성 골키퍼 코치를 불렀다. 그런 뒤 그들에게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최 감독은 “지난 2014년이었다. 브라질 전훈 중이었는데 당시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한 명과 계약할 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며 “그 때 권순태가 먼저 내 방으로 찾아와 면담을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그의 간절함을 읽었다. 이후 새 골키퍼 영입은 없던 일이 됐다. 2013년까지 주전이었던 최은성 코치가 은퇴식만 남겨놓은 상태였는데 권순태를 주전으로 쭉 써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권순태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K리그 클래식 베스트11 골키퍼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해엔 주장까지 맡아 위기의 전북을 이끌고 ACL 우승으로 웃었다. 최 감독은 “가시마 측에서 거절할 수 없는 오퍼를 들고 왔다. ‘올 것이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골키퍼들과의 미팅을 통해 ‘이젠 너희들의 기회다. 3년 전 권순태처럼 애절하게 싸워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밝혔다.

레오나르도의 이적은 권순태보다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레오 같은 경우는 매년 여름 오퍼가 들어왔다. ACL까지 우승했으니 지금이 홀가분하게 떠나보낼 수 있는 시기였다”는 최 감독은 “지난해 수비도 열심히 하는 등 내 밑에서 4년 만에 공·수 모두 잘 하는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이제 전진만 하는 측면 공격수는 없다. 스트라이커 빼고는 모두 수비를 할 줄 하는 미드필더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오른쪽 날개 로페즈도 6개월 이상의 장기 부상으로 이탈한 전북은 이름값 만큼이나 애절하게 뛸 수 있는 외국인 공격 자원들의 영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수비에선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3월 올림픽대표팀 평가전에서 맹활약했던 연세대 출신 새내기 센터백 김민재(21)가 최 감독의 눈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훈련을 보면 눈에 쑥 띄는 수비수가 하나 있다”며 웃은 뒤 “볼을 받을 때 다음 동작을 판단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전진 패스도 곧잘한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몸으로 찾아온 ‘감독 12년차 후유증’…선수들 있어 웃는다

최 감독은 두바이에 온 뒤 시원한 날씨 만큼이나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한국에선 건강이 좋지 않아 꽤나 고생했다. ACL 우승과 이에 따른 클럽 월드컵 참가 등으로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시즌 일정을 소화했던 전북은 다른 구단들보다 열흘 가량 늦은 지난달 13일 두바이로 전훈을 떠나면서 새 시즌 담금질에 들어갔다. 하지만 최 감독은 닷새나 더 늦은 18일 출국할 수밖에 없었다. 전훈 초반 전술보다는 체력 훈련이 이뤄지는 점도 있지만 최 감독의 몸도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독주를 마시면 안 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는 최 감독은 “대장에 탈이 났다고 하더라. 대표팀 감독하던 2013년에 십이지장 궤양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휴식의 이유를 전했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만큼이나 격랑 속에서 지난 시즌을 이끌었다는 뜻이었다. 2005년 전북 감독 취임 뒤 12년간 받은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듯 했다. 특히 지난해 심판 로비 충격 속에서도 ‘비원’인 ACL 정상 탈환을 위해 전진한 흔적이 최 감독 몸에 스며들었다.

전북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올시즌 ACL 출전 여부 관련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CAS는 오는 3일까지 전북의 제소에 답을 주기로 했다. 전북은 지난 2010년부터 7년 연속 ACL에 출전해 이 부문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이 문제로 분위기가 좀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다. 선수들이 내게 ACL 출전 여부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면서 선수들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판결을 겸허하게 기다리겠다는 자세도 드러냈다. 그래도 K리그 최고를 달리는 전북 선수들의 자세에서 ‘새로운 내일’을 본다. 최 감독은 “김신욱이 1월 초부터 클럽하우스에서 하루 ‘두 탕’씩 운동하더라. 쉴 땐 쉬어야 하는데 걱정을 했다. 그러니까 새로 온 김진수가 ‘제가 신욱이 형 말릴게요’라고 나섰다”며 웃고는 “김보경도 소집 전부터 몸을 만드는 등 주전급부터 솔선수범하고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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