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신혜연기자]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레이싱 경기에서 남성 레이서와 속도 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녀 레이서 문혜민. 그는 대표적인 남성 스포츠로 꼽히는 레이싱 무대에 뛰어들어 남성 레이서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실력을 겨루며 여성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작은 체구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지닌 문혜민 레이서는 TCSA(투어링카 시리즈 인 아시아)의 레이서로 국내를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활약 중이다. 다양한 레이싱 무대를 통해 경험을 넓히고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는 문혜민 레이서는 "부족해도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올라가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었던 2016년 시즌을 지나 2017년에는 더욱 전력을 다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문혜민 레이서를 만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Q 자신을 어떤 레이서로 소개할 수 있을까.


부족하지만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려는 레이서인 거 같다. 어려서부터 레이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차근 차근 단계를 거친 레이서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기에 항상 노력하는 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열정과 욕심이 많은 거 같다.


Q 레이싱 무대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는.


본격적으로 레이서의 길을 걷기 전에는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 자동차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자동차를 유난히 좋아해 유학 시절에도 면허를 빨리 취득하고 운전을 했다. 이후 대학 생활을 하고 평범하게 지내다 인연이 있던 비엠 코포레이션 이동호 대표님의 제안으로 '트랙 데이'에 참가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레이서라는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동경의 대상이기만 했는데, 운전에 재미를 느끼고 레이서에 도전하게 됐다. '트랙 데이' 이후 2015년에 86 원메이크 대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시즌 중반부터 출전한 KMSA 최정원 대표님과도 인연이 돼서 자연스럽게 레이서의 길을 걷게 됐다.


Q 두각을 보였던 2016 시즌을 돌아보며.


TCSA에 출전한 것은 첫 도전이었다. 모든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열심히 하지만 한국에서 열렸던 마지막 대회에서는 꼭 우승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 폴포지션을 잡게 됐고, 폴투윈으로 이어졌다. 특별히 전략적으로 탄 건 아니었지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려고 노력했다. 폴포지션을 처음 잡아 봐서 어색하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자리만 잘 지키자는 생각으로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뒤에서 쫓아오는 경쟁 차들을 보며 정신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차분히 타기 위해 계속 머릿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썼다.


Q 2016 시즌 중 아쉬움이 남았던 순간은.


가장 아쉬웠던 건 차량 트러블로 리타어이했던 순간이다. 경기를 하다가 내 실수로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였다면 덜 아쉬웠을 거 같은데 차량 문제로 경기에 못 나가게 되니까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 또한 일본 대회에서 경기 전 머리 부상을 당해 결국 대회에 출전하지 못 하고 귀국해야 했다. 나를 믿고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너무 죄송해서 끝까지 출전해보려고 급하게 큰 사이즈의 헬멧도 구입했지만 다친 부위가 너무 아팠다. 결국 대회에 출전하지 못 하고 귀국해야 해서 정말 아쉬웠다.


Q TCSA를 선택한 계기는.


TCSA 대회 오거나이저인 Danny가 내 86클래스 경기 영상을 보고 테스트를 제안했다. 지난해 테스트를 진행한 후 시즌 출전을 진행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좋은 지원을 받고 있다.


Q TCSA와 레이스카인 혼다 어코드 CL7에 대한 이야기.


TCSA는 아시아 전역에서 이뤄지는 투어링카 대회로 TCR과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경기가 개최된다. 올해는 한국의 인제, 영암에서 두 차례 대회가 열린다.


혼다 어코드 CL7은 국내에는 없는 차로, 최고 속도 220km까지 나가는 굉장히 빠른 차다. 또한 전륜구동 차량이고 기존에 탔던 차량보다 크기나 출력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변속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차량의 움직임에 대한 훈련을 많이 했다. TCSA를 아직 모르는 분이 많은데 앞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Q 2016 시즌이 끝나고 2017 시즌을 준비하며.


최근 중국 레이싱 팀인 '그리드 모터스포츠(Grid Motorsport)'와 팀 계약을 했다. 2017년에는 TCSA 외에도 다양한 레이스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TCR 아시아, TCR 차이나, 86 내구레이스 등 여러 레이스를 후보로 두고 테스트를 다니며 협의 중이다. 또한 이번 시즌을 겪으며 체력 보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CSA 대회를 나가며 더운 나라에서 뛰다 보니까 뜨거운 차 온도에 지칠 때가 많았다. 때문에 체력을 키우고 중국어 공부를 해볼 생각이다. 2017년에도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Q 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약 중인데, 국내 무대와 다른 점은.


우선 같은 국적의 사람이 없어서 외로울 때가 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같은 국적의,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외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해외 무대를 나가 보니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는 걸 느낀다. 아직 레이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한국과 달리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등은 관심이 높아서 많은 관객들이 경기장을 찾는다. 한국 레이싱도 많은 관객들이 응원해주고 관심 가져주면 더욱 힘내서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또한 국내 레이싱은 팀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느껴지는 반면 외국 무대에서 뛰고 있는 레이서들은 조금 더 가족 같은 분위기더라. 1, 2등 레이서들끼리 서로 스킬을 공유하고 조언을 해줄 만큼 교류가 잘 이뤄진다.


Q 다양한 대회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회.


아무래도 내구 레이스가 더 만족감이 큰 거 같다. 지난해 12월 31일에도 중국에서 열린 12시간 CEC 내구레이스에 참가했는데, 힘든 점도 많았지만 경기를 끝낸 후 희열이 느껴졌다. 같은 곳을 2시간씩 두 차례 달리다 보니 몸도 지치고 집중력이 흐려졌지만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한 걸 느꼈다. 특히 경기가 끝난 후 함께 고생한 미캐닉과 동료들, 스태프들과 나누는 기쁨이 좋았다.


Q 트라우마나 슬럼프 극복 방법이 있다면.


다행히 아직까지 큰 사고는 없었지만 욕심을 많이 내면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부터 최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타려고 노력한다.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거 같다.


Q 남성 레이서 사이에서 여성 레이서로서 겪는 고충과 좋은 점은.


평소 겁이 많고 안전에 민감한 편인데 서킷에서는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고 겁이 사라진다. 때문에 남성 레이서들과도 당당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거 같다. 하지만 부정하려고 해도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체력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지 않나. 신체조건도 다르기 때문에 함께 경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조금 더 섬세하기 때문에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드라이빙에서 유리한 부분도 있다. 또한 여성 레이서가 많이 없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 거 같다.


Q 평소 조언을 주고받는 동료는.


'비엠코포레이션' 이동호 대표님과 'KMSA' 최정원 대표님을 비롯한 'KMSA' 식구들, 임지송 선수, '인디고 레이싱' 서주원 레이서 등과 친하다. 평소에도 자주 만나 커피를 마시며 레이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고충을 털어놓으면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또한 해외 무대 경험이 많은 '한국 타이어'의 전홍식 이사님에게 조언을 받는다. 이번에 팀을 계약하면서도 이분들의 도움이 컸다.


Q 한국 레이싱의 부흥에 대한 바람.


여타 레이싱 선진국처럼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다양한 이벤트들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경기 홍보에 힘쓰고 쉽고 재밌게 레이싱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거 같다. 또한 해외 선수를 영입했다는 기사를 종종 보는데 좀 아쉽다. 이제 막 시작하는 나를 포함한 국내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생기고, 그들이 뛸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Q 앞으로 목표하고 있는 무대.


먼저 국내에 여성 레이서가 많은 편이 아니지만 여성이어도 실력 있고 노력하는 레이서로 기억되고 싶다. 또한 TCSA에서 실력과 경험을 쌓은 후 '팀 아우디 코리아'의 유경욱 레이서가 출전하고 있는 '아우디 R8 LMS Cup'에 출전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욕심에 그치지 않도록 실력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투어링카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단계를 밟아 나가 GT 레이스에서 뛰는 레이서가 되고 싶다.


뉴미디어국 heilie@sportsseoul.com


사진 | 스포츠서울 DB, TC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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