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야구in ①] 김영덕 전 감독 "우승과 맞바꾼 박철순 선수생명, 아직도 가슴아파"
    • 입력2017-01-12 06:00
    • 수정2017-01-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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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33경기 255이닝 9실점. 평균자책점 0.32


1964년 대한해운공사 소속의 한 투수는 실업야구 데뷔 첫 해 믿기 힘든 기록으로 한국야구를 발칵 뒤집어 놨다. 이 투수는 이후에도 1967년 54연속 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현역 선수 시절 퍼펙트게임 1회, 노히트노런 2회 등 신화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대기록의 주인공은 바로 김영덕 전 감독(82)이다.


선수로서 화려한 족적을 남긴 김영덕 전 감독은 선수 은퇴 후 지도자로서도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82년 OB베어스 감독으로 팀의 원년 우승을 이끄는 등 그가 감독으로서 기록한 통산 300승부터 700승까지는 모두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남았다.


국내 프로야구 역사를 시작부터 함께한 김영덕 전 감독을 만나 그의 야구인생을 들어봤다.


▲ 지역 최고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김영덕 전 감독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다. 당연히 그의 야구인생은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적부터 야구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 전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집이 많이 가난했다. 유니폼부터 장비까지 다 자비로 사야했다. 학교에서는 공만 지원받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니폼부터 장비 비용을 충당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야구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끝에 김 전 감독은 지역에서 고교 최고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고, 4곳의 프로팀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다. 결국 김 전 감독이 선택한 팀은 난카이 호크스, 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였다. 하지만 그의 프로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입단 후 3년을 2군에서 고생하다가 4년째 처음 1군에 데뷔했고, 그 해 6승 6패를 기록했다.


▲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렇게 일본 프로야구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낸 김 전 감독은 야구에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그 때 눈에 띄었던 것이 김 전 감독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김성근 한화 감독이었다. 그는 "당시 김성근이 한국에 가서 1961년 대만에서 있었던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때 대표팀에 선발돼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일본 신문에도 보도됐다. 그걸 보고 한국에 가서 1~2년 하다가 일본으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당시 김 전 감독을 한국 실업팀에 소개시켜준 이가 바로 백인천 전 감독이었다. 김 전 감독은 당시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뛰던 백인천을 통해 한국팀을 소개해달라 했고 그를 통해 대한해운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김 전 감독은 "한국에서 1~2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야구가 좋으니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국 정착 이후를 설명했다.


한국에 와서 김 전 감독은 타자들을 압도하는 피칭을 선보이며 믿기 힘든 놀라운 기록들을 써내려갔다. 김 전 감독은 자신이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당시 한국과 일본야구의 수준 차이를 언급했다.


"우리나라가 당시 실업야구를 했어도 정식 야구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본 야구와는 수준 차이가 있었다. 내가 일본에서 큰 성공은 못했지만 그래도 일본 프로야구에서 8년 동안 몸담았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이런 기록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은 직구와 커브 정도의 구종만 던질 줄 알았는데 내가 와서 여러 가지 변화구를 던졌기 때문에 타자를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 한국 프로야구 원년 우승, 그리고 박철순


한일은행에서 선수경력을 마무리한 김 전 감독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베어스 초대 감독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김 전 감독은 원년 우승에 대해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감독을 맡았더니 대전 출신 고교 선수가 없더라. 다른 팀들은 각 지역마다 선수가 있는데 유독 대전만 뽑을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KBO에서 MBC 청룡에서 2명을 뽑으면 우리팀에서 1명을 뽑을 수 있게 해줬다. 근데 MBC에서 박철순을 안 뽑고 김재박을 뽑았다. 그래서 무조건 박철순을 뽑았다. 그래도 선수가 부족해서 윤동균, 김우열 등 베테랑들을 데려왔다. 결과적으로 성공을 했다. 운이 좋았다. 그땐 선수도 25명 밖에 없었다. 2군도 없었다. 코치도 김성근, 이광환 뿐이었다. 김성근이 투수코치를 보고 이광환이 타격, 수비를 모두 책임졌다. 베테랑들이 앞장서서 해주니까 팀이 알아서 잘 나갔다.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고마웠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OB베어스의 원년 우승에 가장 지대한 공을 세운 선수는 바로 '불사조' 박철순이다. 당시 그는 80경기에 등판해 224와 2/3이닝을 던지며 24승 4패라는 무지막지한 기록을 세우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부상으로 쓰러졌다. 아직도 여러 팬들은 그때 우승을 박철순의 선수생명과 맞바꾼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감독은 안타까움과 함께 그때는 그런 야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덧붙였다.


"혹사?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땐 그게 맞는 야구였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한 시즌에 38승 4패를 한 스기우라라는 투수가 있었다. 그 시절엔 일본 역시 잘 던지는 투수가 보직 상관없이 선발, 중간, 마무리를 모두 책임지던 시기였다. 나는 그곳에서 야구를 배웠고, 그게 올바른 야구라고 생각했기에 한국에 와서도 똑같이 가르칠 수 밖에 없었다. 전혀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은 우승하기 위해서 박철순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인정한다. 그리고 박철순이 그리 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아마 박철순이 지금 야구를 했으면 더 오래 던졌을 거다. 자기 선수가 망가졌는데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철순이가 모든 보직을 맡으며 우승을 했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게 아니겠나."


이와 함께 김 전 감독은 원년 한국시리즈 때 박철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한국시리즈 때 박철순은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다.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뛰었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야 알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지금 야구 시스템을 알았더라면 우승을 못하더라도 무리시키지 않고 더 잘 할 수 있게 도움을 줬을 거다. 그걸 못해줘서 너무 안타까웠다."




▲ 첫 통합우승, 그리고 은퇴


김 전 감독은 OB베어스 감독직을 내려놓고 곧장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맡아 1985년 시즌에서 전무후무한 전, 후기 통합우승으로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한국시리즈를 거치지 않고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김 전 감독은 우승 요인으로 두터웠던 선수층을 꼽았다. 그는 "삼성에 가니까 OB하고는 멤버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투수는 김시진, 황규봉, 권영호, 이선희 등 알아주는 투수가 4명이나 있었고, 야수에는 장효조, 이만수, 오대석, 정현발, 장태수 등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쟁쟁한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OB베어스와 삼성라이온즈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본 김 전 감독은 빙그레 이글스를 거쳐 1998년 LG트윈스 2군 감독을 마지막으로 야구계를 떠난 뒤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그가 밝힌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은 이유는 빙그레 이글스와 의리 때문이었다. 김 전 감독은 "빙그레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북일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1996년 당시 LG 감독이었던 이광환이 젊은 선수들을 키워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래서 LG에 가서 인스트럭터를 1년하고 2군 감독을 2년 더 했다. 기회를 준 이광환에게 정말 고마웠다"며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것은 북일고를 가르치면서 이광환의 요청으로 LG로 갈 때 김승연 한화 회장에게 1군 감독은 맡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빙그레 감독 시절 계속된 우승실패(6년 동안 4번 한국시리즈에 나가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에도 믿음을 준 빙그레와의 의리를 지키고 싶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감독직으로 복귀를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 전 감독은 감독 생활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OB베어스를 이끌고 달성했던 원년 우승을 꼽았다.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박철순이라는 최고의 슈퍼스타 덕에 우승을 했지만 또 그로 인해 박철순이 망가졌다는 것이 아직도 내 마음에 후회로 남아있다. 절대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빙그레 6년 감독하면서 왜 한 번도 우승을 못했을까 생각이 든다. 당시 송진우, 이상군, 한희민, 정민철, 이강돈, 장종훈 등등 멤버들이 괜찮았는데 너무 아쉽다. 구단에 빚 진 기분이었다"며 빙그레 감독 시절 느꼈던 아쉬움을 털어놨다.


[SS야구in ②] 김영덕 전 감독 "'혹사 논란' 김성근 감독 안타깝다"에서 계속됩니다.


뉴미디어국 superpower@sportsseoul.com


사진 |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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