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도형기자] 벌써 프로야구계를 떠난지 10년이 됐다. 2007년 11월 구단으로부터 함께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다시는 야구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그를 돕는 많은 이들이 있었고, 그렇게 그는 프로야구는 아니지만 야구판에 복귀하며 미소를 되찾았다.


1997년 1차 지명으로 OB 베이스(현 두산 베어스) 지명을 받은 우완투수 이경필. 그는 한양대학교 진학 후 국가대표 마운드를 호령할 정도로 에이스급 투수였다. 그래서 OB로부터 첫 번째로 지명을 받은 그는 마운드에 오를 때면 '신(神)과 동급'이라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고, 또 야구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로 살아가던 행복도 잠시, 팔꿈치 부상이 찾아오면서 결국 2007년 말에 방출 통보을 받았다. 이경필은 당시를 떠올리며 "솔직히 힘들었다. 다시는 야구 쪽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래도 과거와 지금의 힘듦의 정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지금은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처럼 좌절 속에 방황하던 이경필에게 버팀목이 돼 준 건 바로 아내와 종교(개신교)였다. 2014년 이후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는 그는 현재는 동대문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방송에 출연한 적 있어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신다. 손님들의 스타일을 코치해 준다고 해서 상호도 제 별명인 '필 코치'로 지었다"며 웃었다.


이경필이 근래 가장 집중하고,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해외로 건너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으로, 지난 2015년에는 몽골로 재능기부를 다녀왔다. 그는 "지난해 중국에 처음 가게 되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중 양국 교류에 앞장섰다며 산동성 연태 관계자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이경필은 "중국은 일반적으로 야구라는 종목에는 인색하다. 야구 말고 축구, 농구 등을 좋아한다. 특히 그날 방문한 학교에는 남학생보단 여학생이 많았다. 여자가 80%였다. 그런데도 다들 운동 신경이 있어서 야구를 잘하더라.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들고간 장비를 선물로 주고 왔다"며 "올해는 더욱 열심히 재능기부에 임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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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이경필 SNS, 김도형기자 wayn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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