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회장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올림픽회관. 2016. 12. 26.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위원석 체육1부장]어쩌면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한국체육사에 가장 치욕스러웠던 한해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건국이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스캔들에 체육계가 크게 휘둘렸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시작하는 체육계의 마음가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해 진통끝에 마무리된 엘리트와 생활체육 단체의 통합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대한체육회는 통합 이후의 실질적인 첫 수장인 이기흥(62) 회장의 진두지휘로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을 향한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의 첫 발을 내딛는다. 여기에 지난 3년간 상처받고 훼손됐던 체육계의 자율성 확보라는 큰 짐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마지막 준비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스포츠서울은 이기흥 체육회장과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체육계의 반성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다짐과 비전을 들어봤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이 회장이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체육계의 여러 난제들을 특유의 뚝심과 돌파력으로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체육계는 지난 3년 동안 많은 진통과 곡절끝에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우선 체육회가 새해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역점 사업을 밝혀달라.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다. 지난 과정을 통해서 체육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발전적 도약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체육회는 오는 2019년이면 창립 100년을 맞는다. 한국 스포츠의 지난 100년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 나가야 하는 출발점에 서있는 시점이어서 체육회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올해는 우선 체육인의 통합과 화합에 힘쓰겠다. 체육단체 통합과정에 체육인들이 큰 상처를 입었는데 이를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체육단체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노력하겠다. 셋째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대표선수 경기력 향상에 온 힘을 쏟겠다. 체육회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역대 최대종목, 최대인원인 7종목 130여명의 선수를 파견해 금 8,은 4,동메달 8개 등 총 20개의 메달로 종합 4위를 목표로 설정했다. 넷째 대표선수들의 요람이 될 진천선수촌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가겠다. 오는 9월이면 진천선수촌 2단계 공사가 완공되면서 대표선수 훈련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생활체육, 엘리트체육이 선순환 융합하는 체육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체육단체 통합으로 학교체육~생활체육~엘리트체육을 연계 융합운영해 유아, 청소년, 청년, 어르신 등의 4단계 생애주기별 스포츠활동을 확대 지원하겠다.

-새로운 출발은 지난 과거에 대한 성찰과 자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지난 3년간의 이른바 ‘김종(전 문체부 제2차관) 시대’의 공과를 한번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

그 부분에 있어서 체육인들 스스로 자성하고 쇄신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체육인 스스로 해내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진행된 부분 때문에 (권리를)침해받은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엘리트와 생체의)양 단체 통합은 이전에 이루지 못했던 큰 일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 민주적이고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자정력과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일정을 정해놓고 일사불란하게 힘으로 누른다고 해도 절차가 무시돼 오류가 생기고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통합 자체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서 우리가 이제 잘 이어나가야 한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맞다.

-체육단체 통합을 둘러싼 지난했던 과정과 그 이후 통합체육회장 선거 과정을 ‘김종 대 이기흥’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고 생각하나.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통합)과정속에서 있었던 여러 불합리했던 것들을 불합리하다고 얘기했을 뿐이다.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문제제기를 해서 바로 잡을 것을 바로 잡지 않아서 지금의 혼돈이 있었던 것 아닌가. 나도 체육계의 리더라면 리더중의 한명이었는데 당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런 목소리가 적었다는 것이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체육계 전체가 ‘김종 시대’를 종합적으로 뛰어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새로운 단계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 키워드는 자율이다. 혹자는 자율을 정부와 싸우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체육회는 고유 업무와 활동영역이 있다. 정부가 준 역할 안에서 최대의 자율성을 발휘할 때 창의가 발현된다. 지시하는대로 붕어빵만 찍어서 창의력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정부가 마련한 정책적 방향성을 따라가면서 고유의 업무는 자율적으로, 창의적으로 하자는 뜻이다.

-체육계가 지난 3년간 문체부에 의해 부당한 압력을 받아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체육인들이 자성할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체육인들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할 부분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판단하는가.

첫째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비리 문제가 없어져야 한다. 폭력, 입시부정, 약물시비, 회계부정, 심판비리 이런 것들 말이다. 다만 체육인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 같이 변해야만 한다. 그래야 실효성이 있다. 여러 비리 가운데는 이른바 ‘생계형’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일자리 문제, 생활을 위한 최소 경비 문제 등이 함께 정비되고 정돈되어야 한다. 열악한 환경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구분하고, 후진적인 제도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체육계처럼 열악한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래를 만들어나가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또 하나는 체육인 스스로가 체육계를 이끌어 나간다는 주체인식이 부족했다. 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해왔고 자립심이 부족했다. 체육분야는 체육인들이 책임진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체육계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제도와 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다. 이 회장은 후보때 공약이었던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의 수익금 정률 배분안을 체육회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법개정부터 기존 배분방식의 변화에 따른 일부 단체의 반발까지 현실화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나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배분 방식 변화를 위해 필요한)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법은 30년이 넘어서 손을 한번 봐야할 때가 됐다. 체육회는 토토 분배금으로 2016년 기준 약 4000억원을 받고 있는데, 법 개정을 통해서 토토 수익금 50%를 기금 편입없이 체육회가 직접 배분받으면 (2015년 기준)5500억원 정도 된다. 똑같은 돈을 정부가 편성하고 국민체육진흥공단을 통해서 집행하는 등 빙빙 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통으로 체육인에게 맡겨주면 우리가 직접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효율적인 예산 편성을 할 수 있다. 추가 확보된 재정은 지방체육 활성화, 학교운동부 및 스포츠클럽 지원, 은퇴선수 지원 등에 쓸 계획이다. 우리가 잘 편성해서 쓰고 정부는 지휘 감독을 철저하게 하면 된다. 집행결과는 체육회가 국회에 사후보고해 부적정한 집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과정을 거칠 생각이다.

-체육회가 직접 수익 창출을 위해서 스포츠마케팅 자회사와 스포츠전문케이블TV를 설립하는 안을 추진중이다.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다면.

국가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체육회 수입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임기동안 자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현재 체육회 소유의 서울 무교동 체육회관과 하남시 체육부지 활용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검토가 마무리 중에 있다. 검토가 끝나면 사업수익 창출에 주력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스포츠마케팅 대행사를 선정해 자체 수익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수입원 확보를 위해 스포츠마케팅 자회사 설립까지 시도하겠다. 스포츠전문 케이블TV설립을 위한 1단계로 아마추어 경기를 중심으로 인터넷 중계방송을 올해부터 부활하고 2단계로 케이블TV방송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기흥 회장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올림픽회관. 2016. 12. 26.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당선된지 석달이 넘었는데 사무총장 선수촌장 등 주요 신임 집행부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사 구상은 어떻게 되고 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급하다(웃음). 우선 내가 충분히 (업무를)알아야 인사를 할 것 아닌가. 내가 오자마자 사표내라고 하면 그것도 민주적인 절차가 아니다. 내가 먼저 업무 파악도 확실하게 하고 (나가는 사람이 생긴다면)전임자 분들이 한 일에 대한 존중도 하고 예우를 갖추는 과정도 필요하다. (인사에 대해서도)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틀을 만들어야 한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체육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등 외부단체가 아닌 체육단체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집행부 구성이 필수적이다. 일부 소수가 아닌 다수 체육인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들겠다.

-통합 과정에서 신설된 상임감사제도가 당시 상당한 논란이 됐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나는 (제도의)필요성을 인정한다. 이 제도의 도입 취지는 체육회 감시기능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체육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데 있다. 현 체육회 규정에 따라 선임절차를 진행중에 있다. 감사경험이 풍부하고 역량있는 인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통합 이후 당분간 엘리트체육의 국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단기적으로 보면 엘리트 선수 저변이 약해질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체육단체 통합은 생활체육과 클럽스포츠를 활성화시켜 엘리트 선수 수급의 근간이 확대되고 지속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상생할 수 있는 선진국형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통합 과정에서도 큰 정잼이 됐던 올림픽위원회(KOC) 분리 운영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

합쳐진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분리 이야기가 나오면 되겠는가. 어렵게 통합을 했고 그 안에서 (KOC가)할 수 있는 기능을 찾아야지 또 분리 논의가 나온다면 소모적이고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체육단체 자율성 확대를 위한 정관과 규정 개정 문제, 스포츠4대악센터 이관 문제 등은 이제 상당히 진척을 이룬 것 같다.

지난해 말 조윤선 문체부 장관께서 ‘체육인의 밤’ 행사에 참석해 이런 문제들이 대해서 대부분 전향적인 의견을 말씀해 주셨다. 앞으로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정관및 규정 개정을 추진하겠다. 스포츠4대악센터도 이관되면 체육회 사무처내에 클린스포츠 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힘을 기울이겠다.

-비체육인 출신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체육계가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소개해 달라.

사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그만 기업을 꾸리다 보니 우연히 체육계와 인연이 됐다. 2000년 당시 (당연직 회장인)주택공사 사장으로부터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을 맡아 줄 것을 제의받았고 4년간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그 뒤에 카누연맹 회장도 맡게 됐다. 사실은 열악한 단체 운영을 지원해 달라는 구원 요청이었다. 이후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수영연맹 회장 일을 하게 됐다.

-체육계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은.

2012 런던올림픽 선수단장으로서 일하면서 종합 5위라는 성적을 올린 것이 특별히 기억난다.

-이 회장은 국제스포츠계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맞는 말이다. 부족하다. 하지만 회장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체육회안에는 국제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많다. 우리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도 있다. 부족한 것은 도움을 받아서 보충하면 된다. 회장은 국제관계 일에 능력이 있는 분들을 잘 지원해 주고 (함께)일을 해나가면 된다.

-전임 회장 시절 체육회장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자성이 많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대한체육회장은 어떤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대한체육회장 자리 자체가 비상근이다. 이 자리는 앉아서 폼잡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무적인 일을 해야 하는 자리다. 체육인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부분을 찾아내야 한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집약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체육회장의)가장 큰 힘이 되고 무기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즐기는 스포츠는 무엇이 있는가. 많이 관전하는 스포츠는 또 무엇이 있나.

등산을 좋아한다. 등산만큼 심신을 단련하는데 좋은 운동도 없다. 거의 매주 체력단련과 심신을 평안히 하기 위해 등산을 즐기고 있다. 체육회장은 특정 스포츠 한두개만을 보면서 즐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체육회 회원단체 전 종목을 즐기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한다. 앞으로 가능하면 전 종목을 관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먼 훗날 ‘이기흥’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웃으면서)어떻게 기억될지 내가 알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그동안 매순간 최선을 다해왔다. 순간순간 벽돌을 하나씩 최선을 다해서 쌓아왔다. 나중에 그 벽돌이 어떤 모습으로 쌓여졌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고 이야기할 부분이다. 다만 우리 체육인들이 한 마음으로 소통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기초를 놓았고 체육회를 비롯한 체육단체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법적 기초를 만들고 재정자립의 단초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난 체육회장 선거에서도 그렇게 벽돌을 쌓아온 것이 평가받았다고 판단하는가.

선거는 단순히 일주일이나 열흘동안 벌이는 이벤트나 퍼포먼스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살아왔던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에 진정한 선거의 필요성과 의미가 있다고 본다.

batma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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