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보고 계십니까? 들리십니까? 당신이 꿈꾸어왔던 그 순간!"


2011년 10월 31일. 대구구장에서는 삼성라이온즈와 SK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 진행 중이었다. 우승까지 아웃카운트 한 개만을 남겨놓고 삼성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상대 타자를 3루수 땅볼로 잡아내고 우승을 확정한 그 순간, 당시 중계를 맡고 있던 한명재 캐스터는 故 장효조 2군 감독을 염두에 둔 듯한 우승 코멘트로 삼성팬들을 물론 많은 야구팬들의 마음을 적셨다. 당시 한명재 캐스터의 코멘트는 아직까지도 야구팬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6년에도 한명재 캐스터는 변함없이 야구 중계로 팬들을 찾았고, 여전한 샤우팅으로 팬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1997년 처음 방송을 시작해 어느덧 방송 경력 20년차를 맞이했고, 12년 째 KBO리그와 MLB를 넘나들며 풀타임 야구 중계를 이어오고 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캐스터 중 한 명인 한명재 캐스터를 만나 캐스터로서 삶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올해로 방송 경력 20년을 맞이했다. 감회가 남다른 한 해였을 것 같은데, 올해를 마무리하는 소감이 듣고 싶다.


한명재 캐스터 : 올해가 방송 경력 20년이라고 생각하고 방송을 시작하진 않았다. '하다보니 20년이 됐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딱히 감회가 있지는 않았다. 동기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데 운좋게 방송을 시작해서 나는 참 행운아란 생각을 한다. 20년을 한 분야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더 큰 행운은 시청자들이 꾸준하게 선택을 해준 것이다. 방송을 20년을 해서 감회가 남다른 것 보다 20번째 시즌을 하고 있어서 되려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시즌인 것 같다.


Q. 한명재 캐스터의 유년 시절이 궁금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었나.


한명재 캐스터 : 내가 자랐던 시기가 프로야구, 프로축구, 배구, 농구대잔치 등 많은 스포츠를 접할 수 있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우리 세대는 '스포츠키드' 세대다. 어렸을 적부터 많은 스포츠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단편적이고 막연한 관심뿐이었다.


Q. 그렇다면 캐스터의 꿈은 언제부터 갖게 된건가?


한명재 캐스터 :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참 운이 좋은 케이스다. 방송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는데 어떤 방송을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스포츠가 갖고 있는 매력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마침 국내에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도 생겨서 캐스터에 대한 꿈을 갖게 됐다. 스포츠라는 것이 승부도 중요하지만 승패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서 함께 느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캐스터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방송국이 아니라 공기업에 입사했다. 어떻게 된 사연인가?


한명재 캐스터 : 당시 고민을 많이 했다. 직장이 워낙에 안정적이었고 복지나 연봉 등이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스포츠캐스터를 하려고 보니 아나운서가 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아나운서가 돼서 경험을 쌓은 후에 스포츠캐스터 준비를 해서 스포츠캐스터가 되는 과정만 있었다. 지상파는 내가 도전할 때만 하더라도 15~20년 차 경력 선배들이 이제 막 중계를 시작하는 단계였다. 그만큼 스포츠 캐스터는 많은 경력을 지닌 선배들만이 할 수 있는 분야였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 때문에 고민을 하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이 돼 운 좋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기회가 생기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6개월 만에 도망 나왔다(웃음)


Q. 1997년 당시 유일한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국이었던 한국스포츠TV(현 SBS스포츠)에 입사해 캐스터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입사 후 첫 방송을 기억하는지?


한명재 캐스터 : 잊을 수 없다. 첫 방송이 ‘뉴스 라이브’라는 생방송 뉴스였는데 희대의 방송사고를 냈다. 당시 내가 진행해야하는 상황이 정경배가 만루홈런을 2개 치고 8타점을 올린 경기였다. 그런데 그 경기에 관한 원고를 놓고 갔다. 방송을 진행하며 해당 기사를 취재한 기자를 소개해야하는데 원고가 없으니 어떤 기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유일하게 알고 있던 당시 이효봉(현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기자를 소개했는데 방송에는 다른 기자가 나왔다. 다행히 좋게 봐주셔서 잘 넘어갔다.


Q. 그간 여러 스포츠 중계를 했고, 지금도 야구 비시즌에는 다양한 종목을 중계하고 있지만 한명재 캐스터가 야구만 중계하는 줄 아는 팬들도 많다.


한명재 캐스터 : 내 잘못이다(웃음). 사실 메이저 종목 중 가장 먼저 중계한 것이 축구다. 한때는 브라질축구리그를 중계한 적도 있었다. 국내 스포츠는 배구 현장 중계를 하기도 했다. 철인 3종경기도 해봤다. 당시에도 야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다른 종목을 잘하지 못하면 결국 야구도 잘 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맡은 중계를 열심히 했고 운 좋게 97년부터 메이저리그 중계를 시작으로 야구 중계를 하게 됐다. 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난 5, 6년간은 농구와 야구 외에 다른 종목은 거의 중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Q. 우문을 던지겠다. 12년 동안 야구중계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


한명재 캐스터 : 기억을 할 수 있는 경기는 별로 없다. 하이라이트를 보다가 ‘이 경기를 내가 중계했네?’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웃음). 반대로 내가 중계했다고 생각한 경기가 알고 보니 다른 캐스터가 중계한 경기인 적도 있었다. 그래도 프로야구 중계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경기는 연감에 기록돼 있는 LG와 KIA의 최장시간 경기다. 경기가 지연되지도 않았는데 5시간 58분을 했다. 아직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정확히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서 자정 2분 전에 끝났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완주를 해서 뿌듯한 경기이기도 했다. 당시 경기가 끝나고 이순철 위원이 “우리는 왜 중계만 했다하면 연장이냐”는 말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SS야구in ②] 한명재 캐스터 "한국의 빈 스컬리? 이제는 창피하다" 로 이어집니다.


뉴미디어국 superpower@sportsseoul.com


사진 | 서장원기자 superpow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MBC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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