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회장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용 초대 회장이 야구회관내 사무실 입구에서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고진현 체육2부장]최고의 선수와 감독, 그리고 프로야구 사장까지 섭렵했던 그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한국 야구의 레전드 김응용에겐 어쩌면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도전일 수 있다. 평생 쌓아올린 명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두려움탓에 손사래를 치며 꺼려했던 대한야구협회 수장의 자리. ‘코끼리 감독’은 야구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떠밀려 선거에 나서 기대대로 당선됐다. 소프트볼까지 아우르는 통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초대 회장에 오른 그는 요즈음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현안을 파악하랴, 집행부 구성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랴, 하루 일과를 마치면 몸은 물먹은 솜마냥 축축 처진다. 몸은 힘들지만 의욕은 넘친다.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야구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겠다는 진심이 축 처진 몸을 다시 일으키게 하는 묘약이다.

지난 22일 늦은 오후 대한체육회가 주최하는 ‘체육인의 밤’ 행사를 위해 서울 올림픽파크텔에 모습을 드러낸 김 회장을 잠시 짬을 내 만났다. 이날 오전 일구회 원로 야구인들을 만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던 그는 호텔 커피숍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불쑥 볼멘 소리부터 늘어놓았다.

“사람들 만나기가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어!”

승부세계와는 달리 협회 수장은 야구계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리. 천성이 번드르한 말을 하기 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데 익숙한 김 회장이지만 빡빡하게 돌아가는 사람 만나는 스케줄을 소화하기가 벅찼던 모양이다. 지난 11월 30일 회장에 당선된 이래 한달이 다 돼가는 동안 그가 그리고 있는 행정의 큰 밑그림이 궁금했다.

김 회장은 말보다는 행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스타일이다. 어쩌면 숱한 승부세계에서 단련된 사람들의 공통점일 수 있다. 그들이 생각보다 행동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생각에는 힘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회장에 당선된 뒤 일성으로 야구개혁을 약속했다. 코끼리의 뚝심으로 새로운 야구판을 짜겠다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선거 한달이 지난 뒤 새판을 짜겠다는 그의 개혁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새로운 집행부의 인사 원칙은 세워졌다. “야구를 통해서 생활하려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제하겠다. 특권과 혜택을 내려놓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를 가진 야구인만이 함께 할 수 있다.”

코끼리의 뚝심이 느껴졌다. 그 진심은 가슴을 울렸다.

김응용 회장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용 회장. 야구회관.2016. 12. 19.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 선거에서 김응용 감독이라는 상징성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당선의 원동력은?

평생 야구만 보고 살아왔다. 내가 유명하다기 보다 야구에 대해서 잘 알고, 또 오직 야구만 생각한다는 것이 당선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선거 운동을 할 때도 일일이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때 “감독님, 믿습니다”는 응원을 보내와 힘이 났다.

- 선거과정에서 아마추어 야구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접했을 것이라고 본다. 아마추어 야구 최대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느 분야나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가장 먼저 협회 운영을 정상화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이어서 생활체육과 소프트볼까지 품에 안는 첫 걸음이기 때문에 엘리트 야구, 생활체육, 소프트볼 등이 통합되고 화합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

- 아마추어 야구의 파벌과 그에 따른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골깊은 파벌문제를 어떻게 치유할 생각인가?

파벌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두 야구인이고 나아가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야구의 미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한 마음으로 뭉치고, 또 봉사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파벌 때문에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일구회와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의 통합이 과제가 되고 있는데 두 단체의 행사에 모두 참석해 꼭 통합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곧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

- 선거를 치르면서 많은 야구인들을 만나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들었을 것이다. 그 동안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절박한 야구 현장의 목소리는 무엇이었는가?

역시 통합과 화합이 아닌가 싶다. 각 단체별, 또 지역별로 원하는 것이 달랐다. 초대 통합 협회장으로서 이 모든 목소리를 잘 새겨듣고 있다. 반목과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그래야만 협회도 정상화 되고 야구와 소프트볼이 고루 발전할 수 있다. 또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딸 수 있을 것이다.

- 협회장 선거에 뒤늦게 뛰어드신 이유가 궁금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사실 얼마 전에도 후배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고사했었다. 나이도 있고, 가족들이 “이제는 편안히 쉬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야구협회가 관리단체로 지정되는 등 프로야구의 뿌리인 아마추어 야구가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결심했다. 내 야구 스타일도 그렇지 않은가. 한번 결정하면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게 내 스타일이다.

- 당선 일성으로 야구개혁을 강조했다. 모든 걸 뜯어고치겠다고 개혁에 강한 의지를 밝히셨는데 개혁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정말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협회의 장 자리를 물려받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첫 통합 협회장인 만큼 해결해야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솔직히 요즘 잠을 설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개혁이 아니라 완전히 새 판짜기 같다. 우선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있고 야구 발전과 협회 운영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직과 기구가 정비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협회 운영의 시스템화가 이뤄질 것이다. 그 뒤에 우선순위를 두고 과제들과 내가 내걸었던 공약들을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 아마추어 야구의 골깊은 파벌은 역설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과 혜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혁의 첫 걸음은 집행부의 내려놓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인데.

당연하다. 선거에 임할 때 봉사라는 말을 유달리 강조했다. 회장인 나를 비롯해 집행부는 야구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돈이나 이익, 특권, 혜택 이런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부회장단과 이사진은 어떤 권한도 없다. 오히려 돈이나 시간을 야구 발전과 협회 정상화를 위해 바쳐야한다. 그런 각오가 있는 분들로 모실 생각이다.

- 야구계 일각에선 회장님의 당선으로 아마추어 야구인들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프로와 아마추어 야구인을 구별하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일 수 있지만 그 동안 프로 출신이 오히려 아마추어 야구에 대거 들어오면서 더욱 물을 흐려놓았다는 비판도 결코 흘려 들을 수는 없다.

선거 때부터 그런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당선되면 프로 출신들이 모두 장악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런데 말씀하셨다시피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의 목표는 성공한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프로에서 성공하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번다. 명성과 부를 얻은 프로야구 출신이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지도자로서, 행정가로서 자기 시간과 돈, 노력을 들여 봉사할 수 있으면 최고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렇게 한다. 이런 선순환구조를 빨리 정착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프로, 아마추어 구별이 아닌 야구인이 있을 뿐이다. 특권과 혜택을 모두 내려놓으면 입지나 지위 등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프로,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겠다. 그러나 첫 통합 협회인 만큼 기존 대한야구협회에 생활체육과 소프트볼 등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은 꼭 필요하다.

- 늘 그렇듯 새로운 수장이 들어서면 집행부 인사에 가장 눈길이 모아진다. 인사는 만사라는 얘기가 있듯이 이번 김응용호의 인사 기본 원칙은 무엇인가?

인사의 원칙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청렴하고 투명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 야구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탤 수 있는 사명감과 함께 능력도 갖춰야 할 것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앞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열심히 찾고 있다.

- 야구라는 큰 틀안에선 결국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의 상생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 당선의 원인 중 하나가 KBO와의 유기적인 협력이라는 측면에서 김 회장이 많은 표를 얻었다고 보는데 앞으로 KBO와 어떤 협력을 펼칠 생각인가?

프로야구와 아마추어 야구는 한 몸이다. KBO와 유기적인 협조 관계 없이는 아마추어 야구의 발전도 한계가 있다. KBO의 협조 없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도 많다. 또 전임 집행부는 KBO와 관계가 소원했다고 들었다. 프로야구 삼성 사장을 6년여 했기 때문에 KBO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프로야구의 젖줄인 아마추어 야구를 살리는데 최대한의 협력과 지원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협회의 원활한 운영은 결국 돈이다. KBO의 지원은 김 회장의 당선으로 더욱 좋아질 것으로 예측되는데 KBO 지원외에 협회의 재정 자립을 위한 방안은 어떤 게 있는가?

결국 통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재정적인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한 다양한 홍보,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대표, 전국 규모의 사회인 야구 대회 창설, 고교와 대학 야구의 활성화, 중계권 및 광고 등이 모두 협회의 재정 자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부분에서 앞으로 임기 4년 동안 재정자립을 위한 토대를 다져놓고 싶다.

- 대학야구연맹이 분리 독립한 뒤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홍역을 겪고 있다. 대학연맹을 어떻게 처리할 방침인가?

대학야구연맹의 문제점도 듣고 있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고 새로 집행부가 구성돼야 한다. 취임 후 보다 깊숙하게 알아본 뒤 대학야구의 면모를 일신할 방도를 강구하겠다.

- 프로야구는 800만 관중 시대를 힘차게 열어젖히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반면에 아마추어 야구는 팬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아마추어 야구의 인기 회복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미디어와의 관계다. ‘미디어 프렌들리’ 정책을 통해 일반 야구팬들이 아마추어 야구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미디어에서 아마추어 야구도 많이 중계해 주고 보도해 주셨면 감사하겠다. 또 KBO 및 정부, 지자체, 교육청과도 협의해서 현행 주말리그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일본의 유명한 고시엔 고교야구대회와 같은, 관심을 끄는 커다란 대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아마추어 야구의 고질병인 입시비리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은 정부에서도 입시비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등을 도입하는 등 입시비리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영구 퇴출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비리와 부정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협회 내부적으로는 기술위원이나 심판위원들에게 공정성과 청렴성을 강조하고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강화하고, 풀로 가동해 그 어떤 부정이나 비리도 용납하지 않겠다.

- 감독과 프로야구단 사장으로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협회 수장으로 야구인생의 멋진 마무리를 하기 위해선 어떤 덕목을 지녀야 한다고 보는가?

내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알지 않나.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또 지키지 못할 약속도 하지 않는다. 협회 운영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나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봉사한다면 모든 관계자가 그렇게 할 것이다. 오직 한국 야구의 미래를 바로 세우는 것에만 매진하겠다. 나중에 야구 후배들에게 비난 받는 선배는 되지 않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하고 있다.

- 당신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야구는 오롯이 내 삶이다. 직책을 맡지 않았을 때도 야구를 하는 어린이들을 지도하거나, 야구장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 다녔다. 매일 야구만 보며 살았다. 이제 첫 통합협회장을 맡았으니 더욱 더 야구만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전혀 지겹지가 않다.

◇김응용 회장 프로필

▲생년월일=1941년 9월 15일

▲출생지=평안남도 평원

▲출신학교=부산상고~우석대학교

▲실업선수 경력=한국운수(1960),남선전기(1961),한국미창(1962),대한통운(1963),크라운맥주(1964~1965),한일은행(1966~1972)

▲지도자 경력=실업야구 한일은행 감독(1973~1981)/프로야구 해태 감독(1982~ 2000)/프로야구 삼성 감독(2001~2004)/프로야구 삼성 대표이사 사장(2004.12~2010.12)/프로야구 한화 감독(2011~2014)

▲국내 및 국제대회 주요 경력=한국시리즈 우승 10회(해태 감독 .1983, 1986, 1987, 1988, 1989, 1991, 1993, 1996,1997,삼성 감독.2002) /1977년 제3회 니콰라과 슈퍼월드컵 우승(한국 야구 세계대회 첫 우승)/2000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획득

▲상훈=국민훈장 석류장(1971)/체육훈장 백마장(1977)/세계야구연맹(IBAF) 최우수감독상(2001)/체육훈장 기린장(2005)

jhkoh@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