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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최북단 속초와 고성에 겨울이 왔다.

[고성·속초=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고성과 속초를 다녀온 날 밤, 마침 거실 라디오에선 좋아하는 노래가 흐르고 있다.“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 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캬~).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 명태라고 헛~ 쯧~.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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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프트(이집트)의 왕처럼 미라가 되버린 우리 물고기 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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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화사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 강원도.
양명문이 쓴 시에 변훈이 곡을 붙이고 바리톤 오현명이 부른 가곡 ‘명태’다. ‘독도는 우리땅’처럼 이 노래엔 명태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명태의 생태(그 생태가 아니다) 습성이나 생장, 회유지역, 이후 가공, 식습관까지 모두 들어있다. 동해에 사는 토종 명태는 수심 400m 정도의 차가운 바닷속에 살며 원산만에 산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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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가는 길. 눈덮힌 우리 산천이 너무도 아름답다.
이처럼 한국인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명태가 사라졌다. 그야말로 씨가 말랐다. 지금 식탁에서 만나는 명태는 죄다 러시아와 일본에서 잡아온 것들이다.그런데 얼마전 희소식이 들렸다. 회귀성 어종인 명태를 인공부화 및 자연부화시켜 방류했다는 소식이다. 얼마되진 않지만 연구 및 방류를 위해 양식도 하고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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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터널 지나기 전 만난 설경.
영동에 흰눈이 펑펑 내린 다음날, 속초와 고성을 찾아 떠났다. 명태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단 기대감을 가슴에 가득 담고.◇돌아오라, 명태여

대구목 대구과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북미 서해안에서 베링해, 오호츠크해, 홋카이도, 북미 서해연안 및 우리나라 동해까지 분포하는 북태평양의 주요 수산생물이다. 이중 남방한계선인 강원도 고성 거진항은 겨울철 명태잡이 어선으로 가득하던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생태찌개집이 많고 어시장엔 명태를 궤짝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정작 명태잡이 배는 없다. 명태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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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용대리 한 덕장에서 황태를 말리고 있다.

국민생선 명태(明太). 80년대 한때 동해에서 무려 15만 톤(노가리 포함)이 잡히던 단백질원이었다. 전국 어디나 명태가 식탁에 올랐다. 일년 중 가장 많이 대했던 생선이 명태다. 명태는 보통 국과 찌개를 끓이고 내장과 알, 아가미는 젓갈을 담근다. 차례나 제삿상에 오르고 교통사고나 악재가 들지말라고 방문, 차에 매달아 놓는다.

이름도 많다. 북쪽바다에서 왔다고 북어(北魚), 얼려서 동태(凍太), 누렇다고 황태(黃太), 꺼멓다고 먹태(墨太), 대가리를 잘라 말렸대서 무두태(無頭太), 코에 꿰어 꾸덕꾸덕 말린 코다리, 낚시로 잡은 조태(釣太), 그물로 잡은 망태(網太), 딱딱해진 깡태, 어린 놈은 노가리, 일월에 잡은 일태, 이태, 삼태 등 한 종의 생선이 수많은 이름을 가졌을 정도로 우리네 삶과 밀접한 인연을 가졌다.

이중 산란지인 원산만이 아니라 강원도 간성군 연안까지 내려온 놈을 간태(桿太)라 하는데, 요 간태가 요새 씨가 말랐다. 80년대 초반 최고 어획량을 기록한 이후 최근 몇년간 1톤 미만이니 아예 없다고 봐야한다. 동해안 최북단 고성 항구에는 이제 명태잡이 어선도 없다. 다른 어종을 잡으려다 가끔 한 마리씩 혼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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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속에 살아 유영하고 있는 국산 명태.

여러 원인을 들 수 있다. 고성군 소재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의 연구원은 “남획과 기후변화에 따라 명태가 내려오지 않고 있지만, 명태 성어를 구해 인공 및 자연부화를 하고 양식된 치어를 방류하는 등 명태가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송지호 인근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에서 살아서 유영하는 우리 명태를 직접 볼 수 있었다. 2014년 시작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그때 현상금 50만원을 내걸고 혼획된 암컷 명태를 산 채로 구해 수컷 몇마리를 합사, 자연부화시켰는데 바로 그 후손들이다.

섭씨 3도 정도의 해양심층수가 담긴 커다란 수조 속에서 빙글빙글 헤엄치고 있는 명태 떼를 보노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먹기야 늘 많이 먹었지만 살아움직이는 명태를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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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최북단 고성과 속초에선 어디서나 명태를 말리고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수온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남획도 큰 원인이었다. 80년대 초반 서울 시내에는 갑자기 노가리집이 많이 생겼다. 당시 불기 시작한 생맥주의 인기 열풍에 덩달아 몸을 실은 것이 노가리였다. 호프집마다 노가리를 구워다 커다란 100㏄ 생맥주와 함께 냈고 중고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도 큰 멸치만한 노가리를 통째 튀겨서 간식거리로 팔았다. 연육가공식품도 연달아 출시됐다. 흔한 명태살을 이용한 어묵은 물론이며 무슨무슨 맛살이니 게다릿살을 흉내낸 제품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사실 이 제품의 주재료 역시 명태살이었다. 이뿐 아니라 패스트푸드 햄버거 체인점의 오징어링, 새우버거 등도 죄다 명태연육으로 만든다. 명태를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곧 돌아올(?) 명태를 떠올리며 이제 노가리는 먹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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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속초 엑스포공원 쪽에선 우람한 설산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다.
◇관광종합선물세트 속초·고성

속초와 고성은 정말 축복받은 자연지세를 품었다. 기암괴석 우뚝선 바다만 있어도 멋진 곳일텐데, 박력넘치는 산, 그것도 백두대간의 산맥을 뒷편에 뒀다. 금강에서 설악으로 이어지는 천하절경을 말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호수도 있다. 청초와 영랑, 송지, 화진포까지…. 산자락엔 화암사와 건봉사 등 유서깊은 금강산의 고찰이 있으며 산속엔 뜨거운 온천수가 퐁퐁 솟는다. 어디 그것 뿐이랴 바닷물속엔 찬물에서 제일가는 먹거리가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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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쪽에서 본 울산바위.

전국에 숙소를 짓는 이들이 이것을 놓칠리 없다.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호텔과 리조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속초와 고성이다. 한화며 대명, 켄싱턴, 파인리즈 등 일찍감치 온천을 끼고 명산에 자리를 틀었다. 실내 볼거리도 풍부하다. 2년전 생겨난 국립산악박물관과 체험형 관람시설 ‘얼라이브 하트’도 설악산에 보금자리를 가졌다.

이쯤되면 관광산업으로선 ‘선동렬 급’ 조건을 갖췄다. 서울~춘천고속도로와 그에 못잖은 고속화국도까지 숭숭 뚫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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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와 고성에서 만난 설악산 설경.

게다가 지금은 겨울. 이름에서 눈치 챘겠지만 설악산은 역시 눈이 와야 제맛이다. 함박눈이 하늘 한가득 내려 우락부락한 근육질 산세를 뒤덮었다. 여름날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잔근육까지 잘 보인다.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도드라지게 보이기 위해 무슨 ‘구리스’같은 것을 바르는 원리다. 미시령을 넘기 전부터 눈꽃을 피우더니, 터널을 지나자 푸른 동해에 걸쳐 설산이 나타난다. 울산바위도 마산봉도, 수바위까지도 눈을 이고 삼두박근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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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와 고성에서 만난 설악산 설경.

설경을 감상하기는 우선 멀찌감치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포인트에 가야한다. 미시령 터널을 지나자마자 뷰포인트가 있다. 이곳에선 울산바위가 잘보이는데 아침 나절에 가야 ‘역광’을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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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와 고성에서 만난 설악산 설경.

멀리서 보기는 엑스포 공원 쪽 바다에서 산을 바라봐도 좋다. 아침에 나가면 푸른 바다 위로 새하얀 산들이 삐죽삐죽 솟아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해가 뜬 직후라면 붉은 기운을 받아 핑크색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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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힌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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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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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금강산 건봉사.

눈꽃을 가까이서 보려면 화암사에서 트레킹을 즐기면 된다. 눈이 내린 직후엔 나뭇가지에 송이송이 달린 ‘크리스마스 장식’같은 나무 터널 속 은빛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스패츠(각반)과 아이젠은 필수다. 한 세 시간 걸린다.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고성 금강산 건봉사에 가면 고즈넉한 산사고찰이 새하얗게 덮힌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같은 눈이라지만 도시에 길바닥을 더럽히는 ‘차가운 쓰레기’와는 느낌이 다르다. 이맛에 한겨울 북쪽에 간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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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산악박물관.

여행정보

●국립산악박물관=우리 산과 세계의 산, 그리고 이를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 도읍을 정하기 위해 북한산을 올랐던 비류와 온조, 그토록 금강산을 올라가고 싶어했던 중국과 왜의 대작들, 한라산을 유람한 임제, 그리고 히말라야 등 세계의 지붕에 선 여러 산악인의 자취를 만날 수 있다. 녹슨 철제 아이젠과 피켈 등 그들이 썼던 장비와 등반일지, 건조식량 등 산악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여러 전시물이 가득하다. 현재 ‘안나푸르나의 별’이라 불린 고 박영석 대장의 발자취를 쫓는 기획전을 하고 있다.강원 속초시 미시령로 3054. 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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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알탕. 속초 당근마차.

●먹거리=도치알탕이 제철 음식으로 딱이다. 꼬득한 살과 알이 가득한 탕은 김치를 넣고 끓여 시원하다. 그리 건더기가 많아보이진 않지만 알이 한가득인 국물을 떠서 밥을 말면 믿기 않을 정도로 든든하다. 영랑호 인근 포장마차촌에서 판다. 당근마차는 도치알탕 이외에도 자연산 백고동으로 무쳐낸 골뱅이무침과 도루묵구이가 유명하다. 곁들여주는 간장새우장도 밥도둑이다.(033)632-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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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 돈가스로 유명한 거진항 장미경양식집.

고성 거진항에는 옛날식 돈가스로 유명한 장미경양식이 있다. 크림스프와 넙적한 돈가스를 튀겨서 밥과 함께 내준다. 군인과 지역민들 사이에서 소문난 것이 지금은 ‘최북단 돈가스’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독특하게 시금치를 가니시로 내는데 별미다. 시원한 맛을 내는 강원도식 김치는 왠만한 칼국수집보다 낫다.(033)682-2084. 한화리조트 설악 쏘라노는 투숙객을 위해 12월부터 업그레이드된 조식 뷔페 메뉴를 선보였다. 추가된 메뉴는 겨울철에 더욱 좋은 어묵탕, 국물떡볶이, 단호박수프, 꿀호떡 등이다. 온라인 조식 뷔페 사전 예약 시 정상가(대인기준 1만8000원)보다 10% 할인해준다. 천연온천수를 이용한 물놀이시설 설악 워터피아 역시 다양한 패키지로 묶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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