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류중일 감독
류중일 삼성 기술고문.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노랗고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처럼 가을잔치도 정점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올시즌 가을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푸른 유니폼을 입고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서 있던 삼성 라이온즈가 일찌감치 퇴장했다. 삼성을 이끌던 류중일 감독은 성적에 대한 책임과 세대교체의 흐름속에 퇴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재계약을 예상했지만 불발됐다. 선수로 시작해 감독까지 30년간 몸 담았던 삼성이었다. 시민구장을 떠나 말끔하게 지은 라이온즈 파크에서는 1년 밖에 보내지 못했다. 기술고문으로 예우를 받았으나 프로무대와는 잠시 작별이다.

감독 류중일은 퇴장하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뚜렷하다. 영웅과 역적이 하루만에 바뀌는 프로야구에서 그는 삼성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5년간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놀라운 성취다. 그는 ‘운과 복’의 탓으로 돌렸으나 그건 겸손의 표현일 뿐이다. 그는 인내와 긍정의 야구로 대표되는 ‘형님 리더십’으로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묶었다. 4년 연속 통합우승과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은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전인미답의 금자탑이다. 야통(야구 대통령)이라는 멋진 닉네임에 걸맞는 화려한 세월이었다.

삼성 우승
류중일 전 감독. 대구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삼성 주장을 지낸 박석민(NC)은 “감독님은 늘 기다려주셨다.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꼽은 바른 지도자의 롤모델이었다. 올해까지 삼성 코칭스태프는 1,2군을 더해 류 전 감독의 선배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구성이었지만 류 전 감독은 특유의 인화로 잡음없이 구단을 이끈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감독 류중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지휘력과 성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부를 초월하는 면모로 귀감이 됐다. 그라운드에서는 늘 깨끗하고 매너있는 야구를 지향했는데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지난해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두산에 패하며 5년 연속 통합우승에 실패했다. 삼성 선수단은 아무런 공식행사가 남아있지 않았지만 두산 선수들에게 우승 트로피와 메달이 수여될 때 그라운드로 나와 일렬로 섰다.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준우승 팀은 들러리가 되기 싫어 퇴장하는게 전례였지만 삼성은 달랐다. 상대를 존중하는 류 전 감독의 철학이 담겨있었다. 그들의 박수는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 증명했다. KBO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퇴장으로 남을 명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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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류중일 감독과 구자욱이 15일 오전 대구 중구 달성동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서 적십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김장담그기 봉사를 하고 있다.

감독 류중일은 그라운드 밖에선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지도자였다. 통합 3연패를 일군 지난 2013년 재계약을 하고나서 계약금 6억원 중에 2억원을 대구에 위치한 여러 요양 시설에 기부했다. 첫 우승을 한 2011년 이후엔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에 매년 성금 1000만원을 기부했다. 성심학교에서 연락이 안오면 “빨리 기부해야 하는데”라며 먼저 나서기도 했다. 그외 많은 장학금과 기부금을 꾸준히 쾌척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각 구단 감독에게 기부의사를 타진하며 뜻을 모았고 코칭스태프까지 동참하며 총 1억원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류 감독은 선행에 대해 부친의 영향이 크다고 밝히며 “받은 만큼 돌려주는게 의무이고 기회가 와서 기부를 하는 것이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아버님께서 어릴 때부터 내게 ‘너는 야구를 잘해 학교에 돈 안내고 다녔으니 프로에 가면 베푸는 삶을 실천해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라며 가슴에 품고 있던 선행의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야구인 중 최고액인 2억원 기부를 결정하고 나서는 “돈 보다 훨씬 큰 마음의 행복을 느낀다.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훌륭한 팀을 만나 우승도 하고 가치있는 일도 할 수 있고 그러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에 몰아친 격변은 감독 류중일의 지휘봉을 놓게 했지만 그가 달성한 혁혁한 기록, 현장에서 보여준 바른 가치관, 야구장 밖에서 실천한 베푸는 삶의 의미는 뚜렷하게 기억될 것이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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