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효원 대중문화부장]‘어쩌다가 언론은 연예기획사의 홍보대행사가 됐을까?’

지난 23일 가수 정준영이 성범죄 혐의로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정준영은 가수 출신으로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 연예인이다. 사안이 가볍지 않았고 긴박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다 최근 연예인의 성범죄 관련 기사가 워낙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다 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사실여부 확인이 중요했다. 즉각 취재 레이더를 가동해 전방위로 취재를 했다. 다방면의 심도 깊은 취재 결과 정준영이 일반인 여성에게 성범죄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이 여성은 당시 여자친구이며 경찰조사가 끝나 검찰로 사건이 이첩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범죄의 내용은 지금까지 유명 연예인들이 다수 연루됐던 성폭행이 아닌 ‘몰카’였다. 정준영이 25일 기자회견에서 “몰카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혐의를 완전히 벗은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여자친구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성범죄 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통상적으로 몰카는 피고소인이 변호사를 잘 선정할 경우 무혐의 판결을 받기 쉬운 범죄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러나 성범죄 사건을 오래 접한 한 전문가는 “몰카는 찍는 사람이 그 행위가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모른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만일 몰카가 유출될 경우 피해자는 평생을 자신의 수치스러운 장면을 상기하며 신체적 폭력보다 더 오래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어 큰 범죄행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극적 기사로 확대될 우려 때문에 성범죄 혐의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해당 연예인이 대형로펌 변호사를 선정해 무혐의를 받아낸다면, 이번 몰카 사건은 소속사가 주장한 대로 ‘사소한 해프닝’에 그칠 수 있다. 소속사 C9엔터테인먼트가 본지 기자의 ‘정준영 성범죄 혐의로 피소’ 단독 보도 이후 ‘무혐의’, ‘사소한 해프닝’이라는 보도자료를 낸 이유도 아마 이런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지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바탕으로 23일 밤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가장 큰 이유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연예인이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해서는 안된다는 대의였다. 만인은 법앞에 평등해야 한다.

기사가 나간뒤 소속사 측은 즉각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정준영이 일반인 여성과 사소한 오해가 생겨 당시 우발적으로 해당 여성이 고소를 했던 사실은 있으나, 고소 직후 바로 고소를 취하하고 수사 기관에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 등 지극히 사적인 해프닝으로 이미 마무리 된 상황이다. 비친고죄 특성상 절차에 의해 혐의 여부와 무관하게 검찰에 송치된 것 뿐이며, 현재 검찰에서도 정준영에 대한 추가 조사에 필요성이 없다고 보고 있어 무혐의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물론 소속사는 얼마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자료를 뿌릴 수 있다. 소속사의 대응은 자유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소속사의 보도자료를 받은 일부 매체들이 일제히 본지의 단독기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 매체는 “정준영은 올해 초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 경찰 조사는 이미 끝난 상태. 정준영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매체는 “결국 사실 확인 없는 보도가 정준영을 성폭행범으로 만들었다. 23일 오후 10시 50분경 정준영이 성폭행 혐으로 피소를 당했다는 단독 기사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이후 이를 따르는 후속 기사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정준영은 1시간 만에 ‘성폭행범’이 됐고, 1시간 40분 만에 혐의를 벗었다. 정준영은 1시간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엄청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정준영 측은 ‘정준영이 자신을 고소한 여성과 1주일 전에도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며 두 사람이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적인 해프닝이 사회적인 해프닝으로 번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준영 사실 바로잡았다, 수사종결된 사적 해프닝’이라는 제목 하에 “수사가 종결된 사적인 해프닝”이라고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과연 이들 매체는 정준영 소속사 대표의 변명 외에 어디에서 어떤 취재를 하고 이 같은 기사를 내보낸 것일까? 성범죄 수사의 ABC를 알고는 있었는지 의문이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경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거나 “사적인 해프닝이 사회적인 해프닝으로 번진 것”이라는 기사는 나올 수 없다.

성범죄는 친고죄가 폐지돼 당사자가 고소를 취하했다 하더라도 경찰의 조사는 계속된다. 게다가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는 것은 조사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무혐의는 검찰만이 내릴 수 있다. 무엇보다 성범죄는 결코 사적인 행위로 가볍게 치부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매체는 ‘경찰의 무혐의 처분, 사적인 해프닝’이라고 소속사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읊어주는 소속사의 나팔수가 되었다.

24일 오후 정준영의 성범죄가 해당 여성의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한 몰카라는 사실이 공개됐다. 소속사는 몰카 부분에 대한 공식 보도자료를 곧바로 내지 않았다. 소속사의 공식 보도자료가 없자 해당 매체들도 후속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무혐의’, ‘사적인 해프닝’을 강조했던 매체들은 왜 몰카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만 놓고 보면 언론인지, 연예기획사의 홍보대행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바로 잡아야 할 팩트가 있다. 본지는 최초보도에서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성폭행과 성범죄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썼다. 그런데도 본지의 ‘성범죄’ 단어를 ‘성폭행’으로 둔갑시킨 뒤 그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반박하는 보도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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