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보경 여경
경찰로 변신한 지난해 일본 도쿄 세계검도선수권 여자 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인 원보경. 제공 | 대한검도회, 원보경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사랑하는 검도를 그만두는 게 쉽진 않았죠.”

지난해 5월 30일 일본 무도의 심장으로 불리는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제16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여자 개인전. 1995년생 대표팀 막내 허윤영(21)과 1994년생 원보경(23)이 나란히 은, 동메달을 따내며 검도 일본 천하에 균열을 냈다. 이전까지 15년간 종주국인 일본 여검객이 1~3위를 싹쓸이했는데 시상대에 태극낭자 2명이나 올라섰다. 일본은 마쓰모토 미즈키가 금메달을 땄으나 한국 여검객의 대반전에 침통한 분위기였다. 특히 원보경은 세계선수권 이후 지난 2월 열린 국내 최고 권위의 SBS배 전국검도왕대회 여자부 정상에 오르면서 차세대 기둥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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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세계선수권 여자 개인전 당시 원보경. 제공 | 대한검도회, 원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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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검도회, 원보경

하지만 지난달 돌연 그는 검도 도복과 호구를 벗고, 경찰 제복을 입었다. 경찰이 당당한 공권력 집행으로 경찰관 사건 대응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한 ‘무도 특채’에 원보경도 응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무도 특채는 해마다 남녀 포함 50명을 선발한다. 검도 10명, 유도 15명, 태권도 25명이다. 여자 검도 국가대표로 ‘여경’ 변신을 한 건 지난해 전가희, 서초록에 이어 원보경이 세 번째다.

‘잘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가 갑자기 여경으로 변신한 건 이유가 있다. 한국 여자 검도는 불모지와 다름없다. 동호회 활동을 하는 여성 검객 숫자도 줄고 있다. 국가대표 텃밭이 돼야 할 실업팀도 경주시청이 유일하다. 시도 체육회가 전국체전 등 대회에서 검도팀을 꾸려 출전하나 대표급 선수와 단기계약을 맺는 게 다반사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 나선 여자 대표 7명 중 경주시청 소속 2명(유현지 김승희)을 제외하고는 원보경을 포함해 모두 대학생이었다. 검도부가 있는 대학은 14개지만, 다수 인원을 운영하는 건 7~8개에 불과하다. 남녀 통틀어 3000여 개 팀이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열악한 현실이다. 무도 특채 종목에 포함된 유도와 태권도 처럼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정식 종목도 아니어서 비전을 뒷받침해 줄 지자체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원보경이 명예로운 태극마크를 내려놓고 여경을 선택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나뿐 아니라 모든 선후배는 검도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니지만, 진정 이 종목을 사랑하기에 하는 것”이라며 “경찰이 본래 꿈은 아니었다. 검도할 때 전국대회 우승이 우선 목표였고, 그 다음 국가대표였다”고 말했다. 또 “목표를 모두 달성했고, (용인대학교) 졸업을 앞둔 가운데 실업팀이 많이 없어 진로에 고민이 생겼다. 무도 특채로 먼저 경찰이 된 가희 언니와 대표팀 주장 이강호 사범께 조언을 구해 응시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여경 변신을 바라보는 검도인은 안타깝지만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대한검도회 관계자는 “워낙 좋은 재능을 지닌 선수여서 한국 검도 입장에선 아쉬운 상황이다. 하지만 대표 선수 미래도 책임질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베테랑 검객 이강호도 “검도인의 한 사람으로 좋은 선수가 빠져나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원보경의 꿈도 응원해줘야하고, 검도로 받은 사랑을 경찰이 돼서 국민에게 돌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원보경이 경찰 응시를 두고 가장 고심한 건 3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2018년 인천 세계선수권대회다. “세계선수권이 한국에서 열려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제 경찰 제복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검도가 인생에 걸림돌이 됐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도움이 됐고, 검도가 있었기에 여경 원보경이 있다. 좋은 실업팀이 많이 생겨서 후배들의 길이 열렸으면 한다”고 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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