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척\' 오승환, \'따봉!\'
[주피터(미 플로리다주)=강명호기자] 오승환(34, 세인트루이스)이 2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 주피터의 로저 딘 스타디움에서 열리고 있는 스프링캠프에서 가볍게 캐치볼하고 있다. 2016.02.27.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세인트루이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시즌을 치르고 있는 오승환(34)이 ‘파이널 보스’로 가는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오승환도 기회만 돌아오면 거침없이 움켜쥘 기세다.

오승환은 한국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선 셋업맨으로 출발했다. 세인트루이스에는 트레버 로즌솔이라는 걸출한 마무리투수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즌 개막 이후 두 달 가까이 흐르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로즌솔이 예전과 같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반면 오승환은 낯선 무대에 연착륙하며 기대 이상의 호투로 뒷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로즌솔은 지난 22일(한국시간) 벌어진 애리조나전에서 1이닝 동안 홈런 1개를 포함해 2안타와 볼넷 1개를 내주며 2실점했다. 6-0의 넉넉한 리드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9회에 컨디션 점검차 마운드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결과였다. 로즌솔은 이닝을 마치기 위해 무려 34개의 공을 던져야 했다. 이상기류를 감지한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매서니 감독은 23일 애리조나전에 앞서 로즌솔에게 휴식을 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 직후 미국의 스포츠전문채널 ESPN은 로즌솔을 대신할 마무리 후보로 오승환을 거론했다. ESPN은 “세인트루이스에 오승환과 케빈 지그리스트가 없었다면 로즌솔이 나오지 못하는 날 몹시 고민스러웠을 것”이라며 오승환을 제2의 마무리 후보로 꼽았다. ESPN은 “지그리스트는 38.5%의 삼진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오승환은 더 인상적이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이 0.8로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들 가운데 6위에 올라있고 삼진율도 36.5%로 12위다. WHIP 역시 0.75로 10위에 랭크돼 있다”고 평가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마무리 투수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지그리스트보다 오승환을 우위에 둘 정도로 오승환의 주가는 급등했다.

로즌솔은 23일 현재 15경기에서 1승1패 8세이브 방어율 2.57을 기록했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년에 비해 볼넷이 늘면서 투구수도 늘어났다. 자신있게 정면승부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매서니 감독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하게 등판할 필요가 있는데 로즌솔은 그런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전날 경기 등판도 그런 차원이었지만 오히려 로즌솔의 사기를 꺾는 결과만 초래했다.

상대적으로 오승환은 기세등등하다. 패배 없이 1승 6홀드에 방어율 1.19를 기록중이다. 삼진율에서는 로즌솔과 지그리스트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로즌솔(22개)와 지그리스트(25개)보다 훨씬 많은 31개의 삼진을 솎아냈다. 로즌솔이 2개, 지그리스트가 3개의 홈런을 맞았지만 오승환은 아직 단 하나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았다. 동료들의 신임도 두텁고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와도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8연속경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오승환의 마무리 가능성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이유다.

아쉽게도 임시 마무리 후보로 급부상한 첫 날 오승환은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팀 타선이 애리조나의 에이스 잭 그레인키의 8이닝 1실점 호투에 꽁꽁 묶여 2-7로 패한 탓이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라면 다음 기회도 머지않아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차분히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기회를 움켜질 일만 남았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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