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와 최희섭이 만났을 때!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오른쪽)와 코치 연수중인 최희섭이 24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에드 스미스 스타디움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라소타(美 플로리다주)=강명호기자 kangmycall@sportsseoul.com

[새러소타=스포츠서울 최희섭 객원기자] “초이,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야 겠어.”

지난 16일(한국시간)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고 있는데 총괄코치가 의외의 얘기를 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캠프도 새러소타에 있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볼티모어 벅 쇼월터 감독이 저를 호출했다더군요. 순간적으로 ‘(김)현수 때문이구나’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부진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심각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죠.

오후 6시쯤 메이저리그 캠프에 도착했더니 쇼월터 감독이 타격코치, 김현수와 함께 미팅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두산 시절 타격 영상을 보면서 문제점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한 시간 가량 비디오 분석도 하고 야구 외적인 얘기도 많이 나눴습니다. 함께 회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 ‘구단과 쇼월터 감독이 김현수를 정말로 아끼고 있구나’ 였습니다. 팀의 키플레이어로 생각하고 현수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아무리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여도 감독이 쓰고 싶지 않으면 벤치에 앉혀두는 게 메이저리그입니다. 냉정한 이 세계에서 감독이 직접 선수와 장시간 미팅을 하며 부진 탈출의 해법을 ‘함께’ 고민한다니! 보통 선수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김현수와 벅 쇼월터, \'은밀한 대화!\'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오른쪽)와 벅 쇼월터 감독이 24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에드 스미스 스타디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라소타(美 플로리다주)=강명호기자 kangmycall@sportsseoul.com

쇼월터 감독은 저에게도 여러가지를 묻더군요. 미국과 한국 야구의 차이점이나 제가 메이저리그 시절 느꼈던 고충에 대해 가감없이 얘기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미국 스타일로 훈련하면 안된다. 어릴 때부터 많은 훈련을 하면서 야구를 했던 선수들이기 때문에 양과 질 모두를 충족해야 자신의 루틴을 지킬 수 있다고요. 개인적으로도 미국에서 야구할 때에는 러닝도 많이 하고 타격 훈련도 매일 했습니다. 코칭스태프는 체력 등을 이유로 훈련을 많이하는 것을 반기지 않지만 낯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었습니다.

현수에게는 “네 루틴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수도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타격훈련 때 홈런을 펑펑 때리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밸런스가 완전히 깨졌다”라더군요. 낯선 곳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현수 앞에서 쇼월터 감독에게 물어봤어요. 김현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쇼월터 감독은 “성적이 안나와도 좋으니 과감하게 자기 스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쫓기듯 갖다 맞히지 말고 과감하게 스윙하면 된다”고 솔직하게 말하더군요.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는 선수인데 잃을 게 없다 싶었지요. 이번 미팅을 통해 슬럼프에 빠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야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인도 느꼈을 겁니다.

미팅을 마친 뒤 쇼월터 감독이 저를 따로 부르더군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김현수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최고의 타자이기 때문에, 타격에 관해서는 아무 걱정할 필요없다. 수비도 한국에서 최정상급이다. 공수를 겸비했기 때문에 ‘김현수’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화 끝에 쇼월터 감독이 “초이, 내일부터 이 곳으로 출근해”라고 하는데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한 달짜리 단기 코치 연수를 받고 있는 저에게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겁니다. 현수가 저에게 정말 큰 선물을 줬습니다. 메이저리그 라커룸에 제 이름이 붙은 라커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수 때 빅리그 캠프에 5시즌 정도 참가했는데 라커에 코치로 제 이름이 붙어있으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하나만 터져라!\' 김현수...\'서둘지 말자\'
[포트마이어스(미 플로리다주)=강명호기자] 7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의 제트블루파크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보스톤 레드삭스와 볼티모어 경기에서, 볼티모어 김현수가 타석대기를 하고 있다. 2016.03.07.

애드 스미스 스타디움에서 현수를 다시 만나니 전날보다 표정도 한결 밝아졌습니다. 느낌상 홈런을 치겠다 싶을 정도로 훈련 때부터 경쾌한 타구를 만들어 내더군요. 경기에서도 좌측으로 파울 홈런 하나를 쳤는데 ‘이거다!’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내야안타였지만 좌익수쪽으로 타구 방향이 형성돼 자기 스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너무 고마웠죠. 쇼월터 감독이 “김현수가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뒤 가장 좋은 스윙을 했다”고 칭찬한 것도 안타라는 결과가 아닌 스윙 궤도와 타이밍 때문이었습니다.

현수에게 정말 큰 생일 선물을 받았습니다. 언제까지 이 곳에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현수가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겁니다. 현수가 ‘타격기계’라는 명성을 되찾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함께 응원해 주세요.

정리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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