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파이널세트

[스포츠서울]세월은 무심코 흘러 지나가는 게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것 같지만 얄미우리 만큼 차곡차곡 쌓이는 게 바로 세월이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며,현재는 미래의 가늠자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게다. 세월의 맥을 관통하는 인과응보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 “오늘의 불행은 과거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잔인한 보복”이라는 나폴레옹의 아포리즘(aphorism)은 그런 의미에서 탁견(卓見)이 아닐 수 없다.

여자 프로배구 도로공사가 세월의 잔인한 복수(?)를 실감하고 있다. 불과 7개월 전의 실수가 날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물랐다. 기억의 잔상이 아직도 생생한 탓인지 부메랑이 후벼 판 상처는 더욱 아리고 쓰라렸다. 도로공사는 지난 4월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낸 서남원 감독을 내쳤다. 감독 선임이야 구단의 고유권한이라지만 만년 하위팀 도로공사를 10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서 감독을 내친 구단의 처사에 비난 여론은 들끓었다. “얼마나 좋은 감독을 데려오냐 두고 보자.” “정규리그 우승 감독을 자르는 건 모독이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에 3연패로 무너진 게 구단이 서 감독을 내친 결정적인 이유겠지만 우승에 눈이 먼 도로공사는 결과적으로 좋은 지도자 한 명을 스스로 버리는 자충수를 둔 꼴이 됐다.

단견(短見)의 도로공사는 또 다시 두번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감독 후보군 상당수가 사령탑 제의를 잇따라 고사하자 마음이 급해진 도로공사는 지도자의 자질과 품성에 대한 냉정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는 뼈 아픈 실수를 저질렀다. 때 마침 배구계에 불어닥친 사령탑의 세대교체라는 거센 바람에 편승해 ‘젊은 피’ 이호 감독을 서둘러 영입하면서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았고,차곡차곡 쌓였다. 그로부터 7개월 뒤 결국은 사달이 났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탈이 나듯 이 감독은 ‘불미스런 일’에 발목이 잡혀 낙마했다.

두번의 실수로 팀을 망친 도로공사는 그래도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데도 뻔한 3류 거짓말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호 감독이 건강이 나빠져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둘러댔다. 구단은 박종익 감독대행체제로 맞는 첫 경기인 18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전에 앞서서도 “이 감독이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났을 뿐”이라고 진실을 은폐하는데 급급했다.

도로공사가 진실을 은폐하는 세번째 실수를 더는 계속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상처받은 여자 선수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그렇다.

선임기자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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