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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치른 KIA 스프링캠프. 김기태 신임감독(왼쪽)이 연습경기 후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zzang@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소신껏 운용하세요. 힘 실어 드릴테니.”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북부에 위치한 조그만 선술집에 김기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조촐한 회식을 했다. 스프링캠프 시작 후 3주 가량 지나 청백전 등 본격적인 기술훈련에 돌입할 시기라 코치들과 방향성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감독은 코치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얘기했다. 팀이 나아갈 방향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 안에서 각 파트별 코치들이 소신껏 선수들을 이끌라는 당부였다. 2013년부터 두 시즌 내리 8위에 머물러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위축돼 있었다. 호랑이 군단을 맡은 왕년의 돌격대장 김기태는 ‘눈치보는 문화’를 없애는 것을 첫 번째 시즌의 화두로 삼았다.

KIA 사령탑으로 부임해 처음 접한 선수들은 지난해 11월 일본 미야자키현에서 열린 가을캠프에 참가한 젊은 선수들이었다. 전임 감독이 뽑아놓은 마무리캠프 명단에 베테랑 최희섭이 이례적으로 추가된 정도였다. 양현종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참가와 1군 입성을 앞둔 kt에 보호선수 명단(20명)을 제출하는 시기가 맞물렸다. 선수단 파악이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던 때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쿠라가하마 구장 외야에 ‘나는 오늘 팀과 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왜!’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으로 쫓았다. 실시간으로 양현종의 거취를 체크하면서 코칭스태프와 프런트, 심지어 현지에 있던 담당 기자들에게까지 보호선수 명단을 작성해보라고 요청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선수들의 가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김 감독의 운용철학이 묻어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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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KIA 양현종(왼쪽)의 잔류와 윤석민의 합류로 투수력만큼은 해 볼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올 시즌이었다. (스포츠서울 DB)

같은 시기, 다른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는 선수가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보강훈련 등을 위해 선수단에 합류한 윤석민이 그 주인공. 윤석민은 “올겨울 준비 잘해서 내년엔 반드시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겠다”면서도 볼티모어에서 지명할당된 것을 두고 “어떻게 된 일인지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 감독 역시 허영택 단장과 오현표 운영실장에게 “윤석민의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면밀히 살펴보고, 움직일 수 있으면 다른 구단보다 빨리 움직여 달라”고 부탁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격 합류한 윤석민의 영입작전이 이미 이때부터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을캠프에서 후배들과 구슬땀을 흘리던 최희섭은 “감독님께서 부임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함평 챌린저스필드의 공기가 달라졌다. 노력한 만큼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선수들 사이에 퍼졌기 때문이다. 누구랄 것 없이 한겨울에도 구장에 나와 훈련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말 모처럼 느껴보는, 생동감있는 표정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말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고 계시니, 베테랑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선배들이 뛰어다니면 후배들은 전력질주를 해야한다. 불과 두 달 만에 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키나와에서 치른 연습경기에 9전패를 당했을 때에도 주장 이범호는 “시즌 때 얼마나 잘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전략은, 봄에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시즌 시작과 동시에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분위기가 좋으니 어떤 팀과도 붙어볼 수 있다”며 웃었다. 올시즌 지난해보다 한 계단 올라선 7위로 마무리했지만, 시즌 끝까지 5위싸움을 펼쳤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의 말처럼, 감독이 바꿔 놓은 팀 분위기 하나가 ‘최약체’ 평가를 무색케 할 만큼 박진감 넘치는 시즌을 선물한 것이다. 시즌이 끝났을 때 이범호는 “여기(막판 5위 경쟁)까지 와서 떨어져 팬들께 너무 죄송하다. 우리가 욕심을 부렸던 측면도 있고, 힘에 부친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분명 가능성을 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즌이었다. 지금부터 준비 잘 해서 내년에는 더 많은 팬들께 즐거움을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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