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실=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가을잔치) 분위기가 안나요. 이상하네요.”
11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넥센과 두산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같은 얘기를 했다.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이 열리는 날인데도 가을잔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큰 요인은 흐린 날씨일 것이다. 1차전이 열린 10일에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선수들 모두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2차전이 열린 11일에도 파란 하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양팀 선수들은 “비가 오려면 확 쏟아붓든지, 아니면 해가 쨍하고 나는 게 좋다. 낮경기인데 우중충하면, 기분도 우중충 해진다”며 볼멘 표정을 지었다.
또 하나 원인은 시즌 막판까지 순위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3위에 사활을 걸었던 양팀은, 시즌 마지막 10경기 가량을 한국시리즈 7차전 하듯 치렀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터라, 터질 듯한 긴장감이 사라진 뒤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준PO는 평정심과 ‘치어-업’(분위기 띄우기)을 얼마나 조화롭게 유지하느냐가 키워드다. 단기전 경험이 많은 선수들은 “큰 경기 일수록 (시즌 때와)다른 것을 하려면 안된다. 의식적으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경기 도중 흥분을 해서도,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조급해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두산 민병헌은 “배팅볼만 500개 넘게 친 것 같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 못치면 다음 경기, 그 때에도 못치면 플레이오프 때 치면 된다”며 웃었다. 국가대표 경험까지 쌓은 터라, 현재 부진이 포스트시즌 끝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긴 표정이었다.
|
투수나 타자 모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치어-업’이다. 넥센 홍원기 수비코치는 “1차전에서 홍성흔이 볼넷을 골라나가면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등 더그아웃에 기를 북돋우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런 동작 하나가 흐름을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경기에서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 하나에 승부가 좌우되기 때문에 시즌 때보다 더 위축되고 긴장할 수밖에 없다. 볼넷이나 적시타를 때렸을 때 마치 끝내기 안타를 때려낸 것처럼 분위기를 돋우는 동작이 필요한 이유다. 큰 세리머니 하나가 동료들에게 부담을 내려놓고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단기전을 기싸움, 분위기 싸움이라고 부르지만, 결국 그 분위기라는 것도 선수들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준PO 2차전에서도 두산 특유의 팀 컬러가 고스란히 녹아났다. 5회말 1사 만루에서 오재원이 친 중견수 얕은 플라이 때 3루에 있던 김현수가 홈으로 쇄도하다 넥센 포수 박동원과 부딪혔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한 번 더 홈플레이트를 터치한 뒤 쓰러졌다. 3-2로 승부의 균형을 깨는 귀중한 득점을 위해 한 몸 기꺼이 희생한 셈이다. 클리닝타임이 끝난 뒤 김현수가 외야로 달려나가자 1루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몸을 내던진 간판스타가 살짝 절룩이며 뛰어나가는 모습 그 자체로 두산 선수단에 투지를 불러 일으키는 듯했다.
|
반면 넥센은 선수 개개인의 눈빛에는 승리에 대한 열망이 엿보였지만, 화려한 제스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최대한 정규시즌 때와 비슷한 심리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8회초 무사 1, 2루 기회 때 서건창이 두산 2루수 오재원과 감정싸움을 하다 가벼운(?)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지만, 넥센 선수들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불필요한 신경전을 자제하고 자기 야구를 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흐름을 장악하는 데 실패한 부분은 넥센 선수단 전체가 한 번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팀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다소 과장돼 보이는 제스처 하나 일 수도 있다.
여기서 두산의 반전 포인트 하나. 마무리투수 이현승은 “과거에는 가을잔치를 하면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금까지 시즌 때 충분히 잘해왔기 때문에 가을잔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너스 경기라는 기분으로 마음껏 즐기자는 얘기를 선배들이 해준다.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대신, 편하게 플레이하자는 의식이 생기면서 우리 야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쩌면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넥센보다 두산이 먼저 평정심을 갖고 준PO에 돌입한 것은 아닐까. 여기에 특유의 화려한 세리머니가 가미돼 1, 2차전을 모두 쓸어담은 것으로 보인다.
zzang@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