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박정욱 체육2팀장] 완연한 가을이다. 그래서 야구 얘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 3일 막을 내린 제28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4강 문턱을 넘지 못한 한국 농구보다는 ‘가을 잔치’를 앞둔 야구 얘기가 더 밝고 힘차게 다가와 ‘수확의 계절’에 맞는 듯해서다. 10월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 하는 KBO리그 포스트시즌이 열리는 때이다. 포스트시즌을 빛낸 인물을 ‘미스터 옥토버(10월의 사나이)’라고 하지 않던가.

[SS포토]커쇼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LA 다저스 클레이턴 커쇼.(스포츠서울 DB)

지난 해 이맘때였다. LA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에 1승3패로 밀려났을 때, 이 코너에서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를 언급한 적이 있다. 커쇼는 당시 1,4차전에서 모두 패전을 안았다. 그는 크게 낙담해 고개를 떨궜다. 이 같은 모습에 개리 세필드 등 메이저리그 전설들은 “그(커쇼)도 인간이었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낙담한 커쇼에게서 (오히려)친근감을 느낀다”는 격려도 잇따랐다. 그러나 그는 패자일 뿐이었다. 지난 해 시즌 최다승(21승3패)과 가장 좋은 방어율(1.77)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MVP)와 사이영상을 휩쓸었지만 지역 라이벌 샌프란시스코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월드시리즈 MVP에 오르며 ‘가을 영웅’으로 우뚝 선 매디슨 범가너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뒤켠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커쇼가 올해 과연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을까. 지난해 패전의 빌미를 제공한 ‘악몽의 7회’를 ‘러키 세븐’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는 올해초 부상 탓에 힘들게 출발했지만 16승7패 방어율 2.13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기분 좋은 흐름으로 정규시즌을 마쳐 기대감도 높였다. 다저스가 지난달 30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전에서 8-0으로 승리하며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확정할 때, 주인공이 바로 커쇼였다. 그는 이날 홀로 9이닝을 책임지며 1안타 완봉승을 거둬 다저스의 첫 3년 연속 지구 우승 역사를 썼다. 이날 상대 선발투수는 범가너였다.

커쇼는 또 5일 샌디에이고와 시즌 최종전에 선발 등판해 3.2이닝만을 던지며 2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삼진 7개를 솎아내 2002년 커트 실링과 랜디 존슨 이후 13년 만에 한 시즌 300탈삼진(301개)을 돌파했다. 1966년 샌디 쿠팩스 이후 49년 만에 300탈삼진을 돌파한 다저스의 두 번째 투수로 기록됐다. 그는 오는 10일 열리는 뉴욕 메츠와 디비전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낙점돼 명예회복의 첫 발을 내디딘다. 커쇼는 그동안 네 차례 포스트시즌에서 통산 11경기에 등판해 1승5패 방어율5.12를 기록했다. 그의 정규시즌 통산성적(244경기 114승56패 방어율2.43)과 비교하면 형편없다.

[SS포토]한국시리즈 삼성 우승,  나바로 한국시리즈 MVP 신고합니다
삼성 나바로(앞쪽)가 2014년 11월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11-1로 승리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뒤 시상식에서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자 연호하는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2014.11.11잠실|최재원기자shine@sportsseoul.com

‘가을 영웅’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아주 어려운 일이다. 커쇼 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한국시리즈 MVP는 대스타에게도 쉽지 열리지 않는 영광이었다. 박철순 최동원뿐 아니라 ‘국보투수’ 선동열도, ‘헐크’ 이만수도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시리즈 MVP의 영예를 안지 못했다. 텍사스에서 첫 지구 우승의 감격을 맛본 추신수는 신시내티 시절이던 2013년 10월 2일 피츠버그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단 한경기 나서 3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한 것이 유일한 포스트시즌 추억이다.

여기서 문제 하나. 통합 5연패에 도전하는 삼성에서 지난 해까지 4년동안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영예의 주인공들을 모두 기억하는가. 연도순으로 나열하라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2011년 오승환(한신)부터 2012년 이승엽, 2013년 박한이, 2014년 야마이코 나바로까지 이어졌다. 정답을 맞혔다면, 당신은 열혈 야구팬이고 진정한 삼성팬의 자격을 갖추었다. 올해는 또 어떤 선수가 ‘가을 영웅’으로 탄생할까. 강정호(피츠버그)와 류현진(다저스)을 볼 수 없어 아쉽다.

9월은 야구기자에게, 또 체육기자에게 그리 달가운 달은 아니다. 4년전 9월에 한국 야구의 두 영웅, 고(故)최동원, 장효조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났고 올해 9월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명언을 남긴 뉴욕 양키스의 전설 요기 베라가 향년 90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했다. ‘검은 9월단’도 9월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검은 9월단은 1972년 9월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해 유혈사태와 인질극을 벌였던 테러조직의 이름이다.

9월은 정우영 SBS스포츠 아나운서의 (페이스북)추천대로, 책장 한켠에 방치해 뒀던 미국 록가수 레니 크래비츠의 LP판을 꺼내 ‘It ain’t over till it’s over’를 들으면서 보냈다. 10월에는 존 레논의 ‘스타팅 오버’(starting over·새 출발)가 제격이다. 정규시즌은 끝났지만 포스트시즌이 새로 시작되니 말이다.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팀들은 일본 등 훈련 캠프로 유망주를 파견하며 새 시즌 준비를 시작한다. 이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It’s time to spread our wings and fly/Don’t let another day go by(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때가 됐다/지금까지의 나날들처럼 하루를 보내지 마라)’다.

한국과 미국, 일본 야구가 7일부터 차례로 포스트시즌에 들어간다. ‘새로운 시작’이다.

jwp94@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