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LA 다저스 류현진(28)은 한화 시절부터 가장 탐나는 타이틀을 물을 때마다 방어율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에도 “방어율과 이닝은 욕심을 내고 싶다”고 밝혔다. 낮은 방어율은 그만큼 실점을 적게 했다는 뜻인데, 긴 이닝을 소화하면서도 방어율이 낮으면 승리는 자연히 따라온다는 게 류현진의 생각이다.

수준급 투수를 가리는 지표는 여러가지있지만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승리다. 요즘은 세이버 매트릭스 등이 널리 알려져 이닝당 출루허용율(WHIP)이나 대체선수 대비 기여도, 경기당 볼넷비율 등 다양한 숫자가 활용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역시 “몇 승 투수인데?”를 먼저 묻는다. 그 다음으로 방어율을 살펴보고, 삼진을 얼마나 잡아냈는지, 볼넷 숫자는 어떤지, 홈런은 몇 개나 허용했는지 등등을 따진다. 투수 3관왕 항목에 들어가는 다승과 방어율, 탈삼진 중 어느 항목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까.

올해 메이저리그, 특히 내셔널리그는 그래서 흥미롭다. 샌디 쿠펙스-돈 드라이스데일 이후 역사상 가장 강한 원-투펀치를 보유한 LA다저스와 2008년 이후 7년 만에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로 포스트시즌 입성에 성공한 시카고 컵스의 투수들 때문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잭 그레인키와 클레이튼 커쇼(이상 LA 다저스) 제이크 아리에타(컵스)가 올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로 각축 중인데,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든 시즌을 보냈다. 그레인키가 방어율, 커쇼가 탈삼진, 아리에타가 다승 1위를 사실상 확정했고, 팀성적까지 좋다. 누가 받아도 이상할 게 없지만, 탈락자들은 억울할 수 있는 시즌이 펼쳐진 것이다.

그레인키는 1일 현재 31경기에 선발등판해 18승 3패 방어율 1.68을 기록 중이다. 214.2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192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39개의 볼넷만을 내줬다. 그레인키가 이대로 시즌을 끝낸다면 1995년 그렉 매덕스(1.63)이후 최저 방어율 기록이다. 커쇼는 32경기에 선발로 나서 16승 7패 방어율 2.16을 기록했다. 2002년 애리조나를 전성기로 이끈 랜디 존슨-커트 실링 듀오가 삼진 300개를 빼앗아내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이후 13년 만에 300 탈삼진 기록에 도전 중이다. 커쇼는 다저스가 샌프란시스코를 꺾고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하던 날 13개의 삼진을 빼앗아내며 300 탈삼진에 6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압도적인 에이스 두 명을 보유한 다저스를 상대로 노히터를 완성한 아리에타는 32경기에서 21승 6패 방어율 1.82로 특급 활약을 펼쳤다. 223이닝을 던져 229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볼넷은 셋 중 가장 많은 48개를 내줬다. 그래도 이닝당 출루허용율은 0.88로 커쇼보다 0.01 낮다. 무엇보다 1920년 피트 알렉산더(27승 14패 방어율 1.19) 이후 거의 100여 년 만에 시카고 컵스에서 20승 1점대 방어율 투수가 된 것이다. 지난해 커쇼가 21승 방어율 1.77을 기록하며 사이영상 2연패에 성공했는데, 우완투수로 범위를 좁히면 1990년 이후 로저 클레멘스(21승 방어율 1.93) 이후 25년만의 진기록을 달성한 셈이다.

현지에서도 올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ESPN의 사이영상 예상 수상자 점수를 보면 지구 우승에 방어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레인키가 아리에타를 근소하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리에타의 성적을 보면 사이영상을 받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만, 그레인키와 커쇼가 받지 못할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ESPN은 1일(한국시간) ‘커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3위가 될 것’이라며 그레인키와 아리에타 2파전으로 세가 기울었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전체 방어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레인키와 다승 1위 아리에타, 탈삼진 1위 커쇼 중 누가 선정되느냐에 따라 선발투수가 가져야 할 가장 높은 덕목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지 않을까. 참고로 메이저리그가 양대리그에서 각 2개 지구로 나뉘어 시즌을 치르기 시작한 1969년에는 아메리칸리그 ‘방어율 왕’ 볼티모어 투수 마이크 크웨이러(23승 11패 방어율 2.38)와 ‘다승왕’ 디트로이트 데니 맥레인(24승 9패 방어율 2.80)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이영상 공동 수상을 했다. 당시 메이저리그 다승과 탈삼진, 방어율 전체 1위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뉴욕 메츠의 전설 톰 시버(25승 7패 방어율 2.21, 208삼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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