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감독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파주 | 이주상선임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동아시안컵 중국전은 승리도 승리지만, 상대를 기 한 번 펴지 못하게 하고 완승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뒤 축구대표팀은 이겨도 힘겹게 이긴 적이 적지 않았다. 중국전은 달랐다. 상대가 약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호주 아시안컵 8강에 오른 팀이다. 2년 전엔 그 전력 거의 그대로 와서 홈팀 한국을 꽤 힘들게 하기도 했다(0-0 무승부).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후반 12분 이종호의 추가골이었다. 중국 진영 왼쪽 측면에서 볼을 뺏긴 오른쪽 날개 이재성이 상대 선수 볼 컨트롤 순간, 다시 달려들어 볼을 가로챘고, 이는 김승대를 거쳐 이종호의 골로 완성됐다. 골도 골이지만 이재성이 인터셉트한 장면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볼을 소유한 그를 오른쪽 꼭지점으로 한 마름모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 프로 감독은 “이정협과 김승대, 장현수가 이재성과 함께 만든 마름모는 볼이 갈 길(김승대)과 공간(이정협)을 모두 창출해냈다. 압박도 훌륭했지만 선수 사이 간격이 일정해서 괜찮았다”고 칭찬했다.

‘슈틸리케호’가 동아시안컵 엔트리 소집 이틀 째 했던 훈련이 문득 생각났다. 당시 선수들은 독특한 워밍업을 했다. 17명이 4X4 형태로 배치되어(이정협 김신욱 같은 위치), 선수별로 전후좌우 10m 간격을 유지했다. 맨 앞 줄 선수가 하는 동작을 뒤에 2~4번째 줄 선수들이 그대로 따라하는 식이었는데 이런 워밍업은 슈틸리케 감독이 온 뒤 공식 훈련에선 처음 하는 것이었다. 대표팀 관계자도 “처음 본다. 이름을 뭐라고 붙여야 할까”라고 반문하다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하는 만큼 뭔가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성 인터셉트와 일주일 전 훈련을 함께 소개한 것은, 그 두 장면이 현대 축구의 큰 흐름 하나를 관통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압박을 더욱 강화한 역압박, ‘게겐프레싱’이 그 것이다. 게겐프레싱은 독일에서 강호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나, 유럽에선 ‘언더독’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발전시켰고,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가 업그레이드했다. 수비라인을 바짝 올리고, 공·수 간격을 좁히며, 상대에게 볼을 내준 시점부터 달려들어 다시 볼 소유권을 가져오는 것, 그래서 상대 진영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하는 것, 공격 때도 가로채기당하는 것을 염두에 둬 선수간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 등이 요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뒤 압박을, 특히 앞 선에서의 압박을 모든 플레이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 기초에서 패스와 연계 플레이를 추구했다. 중국전 완승은 독일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대표팀에서 게겐프레싱의 완성도를 높인 순간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는 해답을 중국전에서 찾았을 지도 모른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게겐프레싱의 요체는 1~2명의 압박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조직적인 압박”이라며 “그런 면에서 이종호 이정협 김승대 이재성 권창훈 등의 조합은 인상적이었다. 이들 모두 화려하진 않지만 수비와 연계, 희생을 고루 갖춘 선수들”이라고 평했다. “저런 압박이면 아시아권 국가는 물론 월드컵 본선에서도 1~2팀에겐 통할 것”이라는 지도자도 있었다. 여기에 슈틸리케 감독은 간절함을 불어넣어 선수들을 다부지게 뛰도록 했다.

물론, 아직은 섣부르다. 일본, 북한전도 해야하고 9~10월 중동 원정도 치러야 한다. 그러나 뭔가 엉성했던 압박이 조금씩 맞아들어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해외파가 없는 상황에서 ‘슈틸리케 축구’에 살이 붙고 있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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