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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오른쪽)이 2003년 12월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상대 선수를 가격한 뒤 주심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도쿄 | 김도훈기자 camera@sportsseoul.com

‘공한증’은 적어도 6회째를 맞는 동아시안컵에선 다른 얘기다. 한국과 중국은 2002년 인천에서 열린 친선 경기를 끝으로 이후 5번 격돌했는데 모두 동아시안컵에서만 만났다. 결과는 2승2무1패로 한국의 근소한 우위. 그러나 한국은 두 차례 승리를 모두 한 골 차 ‘신승’으로 챙기는 등 중국의 강한 저항에 심심치 않게 고전했다. 2003년 초대 대회에서 나왔던 이을용의 ‘을용타’부터 ‘공한증’이 깨졌던 2010년 0-3 완패까지 적지 않은 스토리도 남겼다.

◇을용타, 그리고 김진규

두 팀은 2003년 12월7일 일본 대회에서 동아시안컵 첫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전반 종료 직전 터진 유상철의 결승골을 잘 지킨 한국의 1-0 승리였다.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 승리에 힘입어 한국은 초대 대회 우승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승리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이 이른 바 ‘을용타’ 사건이었다. 미드필더 이을용이 후반 15분 자신을 거칠게 대하는 중국 공격수 리이를 ‘보복’한 뒤 레드카드를 받은 사건이 그 것이다. 이을용의 행동은 잘못됐지만, 그라운드에 쓰러진 리이와 그를 매섭게 노려보는 이을용의 모습이 뚜렷하게 비교되면서 네티즌들은 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다. 한국과 격돌하면 거친 파울로 많은 부상을 안긴 중국 축구에 경고를 날렸다는 점에서 ‘시원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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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이 2008년 2월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2-2 동점포를 넣은 뒤 한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충칭(중국)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2005년 7월31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두 번째 동아시안컵 대결은 1-1로 끝났다. 순샹이 후반 7분 선제골을 넣어 중국이 앞서갔으나 수비수 김진규가 후반 28분 프리킥으로 상대 골망을 출렁여 간신히 비겼다. 이 경기 졸전은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중도 하차를 예감하게 하는 졸전이기도 했다.

◇2008년 대역전극…그러나 2010년 완패

동아시안컵 한·중전 최대 명승부는 2008년에 펼쳐졌다. 중국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차전. 박주영에 전반 42분 선제골을 내준 중국은 후반 초반 2골을 꽂아넣으며 2-1 뒤집기에 성공했다. 경기장에 모인 2만5000여 관중도 자국 축구의 선전에 응원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국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박주영이 후반 18분 2-2 동점포를 터트린 것에 이어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가 후반 46분 헤딩 역전 결승포로 홈 관중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박주영인 이 때 멀티골로 허정무 당시 대표팀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고, 허 감독이 과감하게 발탁한 곽태휘도 대표팀 롱런의 길을 다졌다.

하지만 한국은 2년 뒤 열린 4회 일본 대회에선 중국에 0-3으로 완패하며 쓴 맛을 봤다. 국내파 위주로 꾸린 대표팀은 이미 남아공과 스페인을 거치는 긴 전지훈련으로 다소 지친 상황이었다. 반면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한 중국은 단단히 준비하고 나와 한국을 상대했다. 유하이와 가오린, 덩줘상이 연속골을 터트리며 한국 수비진을 유린했고, 중국과의 A매치 무패 기록은 28경기 만에 깨졌다. 그러나 한국은 바로 다음 경기인 일본전에서 3-1 대역전승을 거두며 중국전 패배를 보란 듯 떨치고 자존심을 살렸다.

김민우
김민우가 2013년 7월24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다. 화성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2년 전 화성에서 열린 5회 대회 맞대결은 0-0 무승부로 끝이 났다. 유럽파가 없는 중국은 최정예 멤버로 나서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 대표팀의 끈끈한 수비를 뚫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에게 홈팀 한국과의 무승부는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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