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창과창

[스포츠서울]‘법과 원칙’은 박근혜 대통령 개인은 물론 현 정부의 대표적인 가치 아이콘이다. 사회 전반에 만연된 비정상적 관행과 적폐(積弊)를 일소하겠다며 정부가 힘껏 치켜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개혁의 기치도 바로 그 연장선에 있다. 개혁의 거센 물결은 체육계에도 밀어닥쳤다. 체육계가 일반 사회와 유리된 비정상적 관행이 판치는 대표적인 분야였던 만큼 개혁의 후폭풍은 거셌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반개혁적 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체육단체의 사유화를 통해 온갖 부정과 부패를 일삼던 그들은 개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야기될 수밖에 없는 조그만 역작용을 침소봉대하면서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체육개혁의 진실성을 호도하는 작태도 서슴치 않았다.

갈등과 분란을 조장하는 반개혁 세력의 선동적 움직임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체육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엄정성과 공정성이라는 두 가지 잣대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엄정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개혁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두 가지 기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개혁은 역풍을 맞아 비참한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엄격한 룰에 따라 칼집에서 빼내야 하는 개혁의 칼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빼든 칼이 어떤 이에겐 날카로운 ‘정의의 칼’이었다가 다른 이에겐 무딜대로 무뎌진 ‘칼춤용 칼’이 되어선 곤란하다. 아니,정의로운 사람들을 위협하는 ‘협박용 칼’로 쓰인다면 그건 정말 낭패다.

그런 점에서 SK텔레콤이 회장사를 맡고 있는 대한펜싱협회(회장 손길승)의 최근 처사는 어처구니가 없다.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을 통해 선임된 한국실업펜싱연맹 회장의 승인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새 회장은 펜싱개혁을 앞장서 이끌었던 인물이라 펜싱협회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 높다. 대한체육회조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펜싱협회의 ‘몽니 부리기’가 도를 넘어섰다고 안타까워했다.

사태의 본질은 이렇다. 한국실업펜싱연맹 새 회장에 뽑힌 인물이 펜싱계의 비리를 스포츠4대악센터에 제보해 펜싱의 권위를 추락시켰다는 게 승인 거부의 이유다. 펜싱협회 관계자는 “펜싱의 화합차원에서 파벌의 한쪽 축인 그 분을 실업연맹회장으로 승인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펜싱계의 생각”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펜싱은 정부가 추진했던 체육개혁의 한 가운데에 섰던 종목이다. 펜싱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A씨의 비리는 정부가 겨냥한 체육단체 사유화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부족함이 없었다. 정부의 고강도 개혁이 펜싱계를 압박할 즈음에 모 실업팀 감독이 자살하는 불상사도 겪었지만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된 A씨의 비리혐의는 결국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문제는 A씨가 펜싱계를 떠나고 난 뒤의 SK의 태도였다. A씨의 비리혐의를 줄기차게 제기하고 개혁을 요구했던 인물을 똑같은 파렴치한으로 낙인찍고 그가 오랫동안 진행했던 정의롭고 외로운 투쟁을 ‘진흙탕 파벌 싸움’으로 물타기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다. 그랬던 그가 새 실업연맹 회장으로 뽑히자 펜싱협회는 임원 승인권을 볼모로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산하연맹 임원 승인권은 본 협회에 있지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로 확대해석해선 곤란하다는 게 대한체육회의 유권해석이다. 체육회는 “새 회장이 임원 결격 사유가 없거나 선거 절차에서 하자가 없다면 승인해주는 게 맞다”면서 “펜싱협회의 실업연맹 회장 승인권 거부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적을 겨눠야 할 칼이 동료를 찔러서는 곤란하다. 10여년동안 펜싱협회를 농락한 부패인사의 비리혐의를 제보하고 개혁의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적이 아니라 동료다. 자칫 SK가 펜싱에서 범한 우를 바로잡지 못하면 그 불똥이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불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체육1팀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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