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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돼지국밥에 편육 한 접시면 왕후의 밥상이 따로 없다.

[스포츠서울]

편육(片肉)은 굉장히 신기한 고기요리다. 세계적으로도 이처럼 품위있는 고기 음식은 드물다.(돼지고기를 즐겨 쓰는 중국에서 편육과 유사한 음식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그리 고급 부위라고는 할 수 없는 머릿고기나 족발 등을 재료로 했음에도 정성과 편의성, 그리고 식탁에 올랐을 때의 정갈한 느낌은 상당히 좋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잔치음식으로 쓰여왔다.

편육은 비싼 부위를 사용하진 않지만 손이 많이 간다. 그저 삶아서 썰어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돼지고기 특유의 지방 속 젤라틴 성분(콜라겐)을 이용해 다진 잡육을 굳혀서 일정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선 핏물 빼기, 삶기, 식히기, 누르기 등 다양한 조리방법이 들어간다. 누르는 과정도 중요하다. 너무 세게 누르면 질겨지고 어설프면 부서진다. 그래서 편육을 ‘누른 고기’라고도 부른다.

편육은 관혼상제에 두루 쓰여왔지만 현대에 와선 주로 상갓집에서 만날 수 있다. 문상객들에게 새우젓과 함께 한 접시 내오는 게 가장 익숙한 풍경이다. 가끔 결혼식 뷔페 상차림에서도 접할 수 있다. 그 이외엔 파는 곳이 드물다. 덩어리째 삶아 썰어내오는 수육은 많지만 보기 힘들다. 예전엔 막걸리집에서 가끔 안주로 팔았지만 지금은 메뉴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 받지도 못할 것이 힘만 잔뜩 들기 때문이다. 업주 입장에선 수육이나 족발을 파는게 유리하다. 그도 아니라면 공장에서 만들어 팩으로 공급하는 편육을 사면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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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육은 과학적 조리기술이 녹아든 잔치 음식이다. 여러 고기와 특수부위가 젤라틴 속에서 하나가 돼 조화로운 맛을 낸다. 사진은 정동국밥의 약선편육.

그런데 돼지국밥을 잘 한다는 집에서 직접 만든 편육도 제대로 낸다고 해서 찾아봤다. 서울 덕수궁 옆길 성공회 별관 지하 1층 정동국밥이다. 세실극장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인데 성공회 푸드뱅크에서 직접 운영한다. 세실 극장에서 공연하는 넌버벌 ‘파이어맨’ 배우와 연출자 등도 꼭꼭 숨겨놓고 즐겨찾는 집이란다.

여느 국밥집과는 달리 분위기도 깔끔하고 조용하다. 인기메뉴는 돼지국밥인 정동국밥과 찹쌀순대, 그리고 머릿고기다.

돼지국밥과 머릿고기 편육을 주문했다. 따끈한 돼지국밥 한 뚝배기가 먼저 나오고 커다란 접시에 차곡차곡 뉘인 편육이 곧 식탁에 올랐다. 먼저 돼지국밥. 뽀얀 사골 국물이 진하고 새하얀 돼지고기들이 잔뜩 들었다. 숟가락을 뜨자마자 연이어 들어간다. 진한 국물은 혀에 짝짝 붙지만 입안에서 깔끔하게 떨어지고 보드라운 돼지고기는 존득하게 씹힌다. 수분이 많은 뜨거운 밥을 말아도 싱겁지 않을 정도로 고소한 국물은 여름철 몸이 허할 때 보양식으로 딱일 듯 하다.

밥을 말아 손수 담근 깍두기 하나를 올려 먹으면 한끼 식사로 든든하다. 편육을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부들부들한 젤라틴 속에 든 머릿고기가 조화를 이룬다. 쩝쩝 대며 한점 씩 집다보니 꽤 많은 고기가 금세 줄어들고 만다. 편육은 먹는 재미가 대단한 음식이다. 식감과 맛이 서로 다른 부위가 한데 어우러지고. 하나의 조각형태로 입에 쏙쏙 들어가니 이보다 먹기 편한 요리가 또 있을까 싶다. 잔치집에 기본으로 쓰인 이유가 따로 있다.

<육도락가·계경순대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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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하고 진한 국물, 고소한 고기까지 듬뿍 든 정동국밥.
★정동국밥=식품위생 기준 해삽(HACCP)에 맞춘 최첨단 조리시설을 이용해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을 내는 집이다. 식당 이익금은 도시 결식계층의 무상 급식에 사용한다. 뜻도 좋고 맛까지 좋은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정동국밥 7000원, 머릿고기편육 1만5000원. 찹쌀순대 6000~1만원. 반계탕 7000원. 서울 중구 세종대로19길 16.(02)725-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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