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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산체스(왼쪽에서 첫 번째)가 5일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 칠레 우승을 확정지은 뒤 오른팔을 치켜들며 환호하고 있다. 출처 | 칠레축구협회

[스포츠서울]남미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2015 코파 아메리카의 최고 스타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도, ‘세계 축구의 신성’ 네이마르(브라질)도,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득점왕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도 아니었다. 바로 개최국 칠레를 대표하는 공격수 알렉시스 산체스(27)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유명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버텼던 산체스가 그야말로 ‘남미 축구의 왕’으로 등극했다.

산체스는 5일(한국시간) 칠레 산티아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 결승 아르헨티나전에서 승부차기 4번째 키커로 나선 뒤 골을 넣어 조국의 이 대회 첫 우승을 완성했다. 전·후반 및 연장전을 0-0으로 마친 뒤 접어든 승부차기. 아르헨티나 2~3번 키커가 실축하면서 3-1로 리드, 한 골만 더 넣으면 우승을 확정짓게 되는 상황에서 칠레 대표팀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은 산체스를 카드로 내밀었다. 1994 미국 월드컵 로베르토 바지오 등 결정적인 순간, 모두가 인정하는 스타들의 승부차기 실축 사례가 많았지만 산체스는 오히려 대담했다. 상대 골문 가운데로 느리게 ‘툭’ 차 넣는 일명 ‘파넨카킥’으로 혈전을 마무리하고 상의를 벗어던져 환호했다.

산체스는 우디네세(이탈리아)와 FC바르셀로나(스페인)를 거쳐 지난 해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2014~2015시즌 52경기 25골)에서 뛰고 있다. 지금은 그렇게 유럽 톱클래스 공격수로 인정받으며 부와 명예를 모두 챙겼지만, 어린 시절 그는 불우한 가정에서 배고프게 컸던 소년에 불과했다. 칠레 북부 광산촌 토코피야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면서 어머니, 외삼촌과 함께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두 동생을 책임졌다. 학교를 다닐 나이에 세차나 야채 장사를 했고, 공사장 막노동도 했다.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광산까지 들어가 구리도 캤다. 산체스는 “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가 거기서 청소 일을 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어머니와 마주칠까봐 학교에서 숨어다니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에겐 축구가 있었다. 외삼촌이 준 낡은 축구공 하나를 갖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개인기를 익혀나간 그는 지역 구단 코브렐로아에 입단, 16살 때 성인팀으로 승격하면서 대성의 싹을 틔웠다. 그에겐 ‘경이로운 소년(El Nino Maravilla)’이란 별명도 붙었다. 이듬 해 이탈리아 우디네세로 이적하면서 성공스토리를 활짝 펼쳐나갔다.

그는 자신과 동고동락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나 다름 없었던 외삼촌과의 약속을 가슴에 품고 산다. 산체스는 끼니 걱정하던 15살 때 “언젠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어 우리 집을 살려내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하며, 축구 선수 길을 본격적으로 걸었다. 2011년 잉글랜드 명문 팀들의 러브콜이 쏟아질 땐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너를 보는 것이 꿈이다”는 외삼촌 유언을 기억하며 스페인으로 길을 정했다. 코파 아메리카 우승 뒤에도 그가 떠올린 것은 가족이었다. 산체스는 결승전 직후 “4년 전 돌아가신 외삼촌이 생각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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