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파이널세트2

[스포츠서울]한쪽은 아름다웠지만 또 한쪽은 추했다. 아름다움을 보여준 쪽은 상생(相生)을 노래했다. 추한 모습을 보인 쪽은 공멸(共滅)을 부추겼다. 두 일은 공교롭게도 지난달 26일 동시에 벌어져 드라마틱한 대비는 더욱 도드라졌다.

가슴 찡한 감동을 안겨준 소식은 프로야구가 전했다. NC 김경문 감독이 이날 잠실 LG전에 앞서 “막내구단 kt 위즈에 2016년도 신인 1차지명 우선권을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김 감독은 “막내 팀이 싸울 힘이 돼야 야구 전체가 더 재밌다”면서 “야구를 먼저 시작한 팀으로서 이런 배려는 당연하다”고 넉넉하고도 훈훈한 마음 씀씀이를 보여줬다.

프로 스포츠에서 신인 드래프트는 다음시즌 전력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힐 만큼 중요한 문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적자생존의 냉엄한 정글법칙이 존재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NC와 김 감독이 내린 통 큰 결정은 그야말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자기 팀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좁은 소견이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를 생각하는 여유와 배려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프로야구가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은 데는 바로 소속팀에 국한되지 않고 프로야구 전체를 고려하는 야구인들의 상생의 마인드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프로야구의 성숙함이 아름다운 감동으로 꽃 피던 날, 프로배구는 낯 부끄러운 모습으로 무너졌다. 신영석(29·상무)의 비밀 트레이드 사태가 이날 열린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에서 법정 결과를 이유로 내세운 사무국의 주도로 각 구단의 의사에 반하는 결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7개월 전 우리카드로부터 신영석을 16억원에 트레이드해온 현대캐피탈은 신영석을 당장 소속선수로 등록을 하고 싶어했지만 각 구단들은 선수등록 규정 제10조 2항을 내세워 그의 선수 등록을 거부했다. 선수등록 규정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KOVO 이사회의 반발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한 현대캐피탈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가 선수이적등록 및 공시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정은 현대캐피탈의 손을 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각 구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KOVO 사무국은 ‘집안 일’을 법정으로 끌고가도록 방조하는 무책임한 일을 저질렀다. 프로배구 근간을 지켜내기 위해 본안소송을 준비하기는 커녕 오히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내세워 현대캐피탈의 요구를 들어주자고 바람을 잡는 상식이하의 행동으로 빈축을 샀다.

모 구단 단장은 “프로배구는 끝났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각 구단이 스스로 지키자고 만들어 놓은 규약과 규정은 이젠 아무 구속력이 없어졌다. 법의 잣대로 보면 허점 투성이인 프로배구의 규약과 규정을 법정으로 끌고 가면 프로배구의 기초와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고 한탄했다. 이제 국내 프로배구를 지탱하는 FA(자유계약선수) 제도도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면 무조건 지게 돼있기 때문이다. 이미 KOVO는 김연경 사태로 많은 걸 잃었다. 시즌이 끝나고 외국구단이 맘 만 먹으면 국내 선수를 영입해갈 수 있는 전례를 KOVO 스스로가 만들어주는 우를 범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사회에서 논의되고 합의점을 찾았어야 할 문제를 법정으로 넘어가게 한 KOVO 사무국의 행동은 프로배구 전체의 이익을 해친 중대한 실수다. 16억원이라는 트레이드머니를 지불하고 선수등록도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현대캐피탈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가더라도 대상은 KOVO가 아니라 트레이드머니를 반환하지 못하는 우리카드를 대상으로 했어야 옳았다. 현대캐피탈은 자신의 이익을 손쉽게 관철시키기 위해 KOVO를 걸고 넘어지는 얕은 수를 썼다.

최선의 판결보다 최악의 협상이 나은 법이다. 공멸을 부추긴 KOVO 사무국과 현대캐피탈이 상생을 도모하는 프로야구의 성숙한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하는 진리다.

체육1팀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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