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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판 할(왼쪽)과 거스 히딩크. 맨유 페이스북, 스포츠서울DB

역사는 돌고 돈다. 어제의 패자가 오늘의 승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로 내려갈 수도 있다. 네덜란드가 낳은 두 명장 거스 히딩크(69)와 루이스 판 할(64)이 그렇다.

히딩크 감독 퇴진 소식을 듣고 14년 전이 떠올랐다. 그 때와 정반대 상황이 지금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1년 가을, 당시 판 할 감독이 이끌었던 네덜란드 대표팀은 포르투갈, 아일랜드에 밀려 2002 한·일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지휘하던 네덜란드가 4강이라는 성과와 함게 숱한 스타들을 만들어내며 호황을 누렸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래서 실패한 판 할 감독에게 조롱과 비난이 쏟아졌다. 판 할은 ‘히딩크의 그림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15년이 됐고, 이번엔 히딩크가 ‘판 할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며 고개를 숙였다. 판 할 감독이 지난 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칭찬받은 이유는 아르연 로번과 로빈 판 페르시, 베슬러이 스네이더르 말고는 젊은 자국리그 선수들 위주였던 대표팀을 월드컵으로 데려가 ‘예상 밖의 3위’를 일궈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해 다시 맡은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한·일 월드컵 앞두고 판 할이 ‘히딩크 유산’을 받아 대표팀을 꾸렸듯이, 거꾸로 ‘판 할 유산’을 갖고 한 번 더 도전했으나 ‘새드 엔딩’으로 끝났다.

둘의 돌고 도는 역사 뒤에 ‘실패의 성공학’, ‘성공의 실패학’이 있다. 판 할은 네덜란드에서 대실패한 뒤 산전수전을 겪었다. 규율 위주 리더십에서 벗어나 유연함, 소통을 도입했다. 전술적으로도 더 공부했고, 이는 그가 공격적인 스리백과 효율적인 역습, 엔트리 23명을 모두 쓰는 용병술 등을 통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원동력이 됐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5-1로 대파한 뒤 그와 판 페르시는 강렬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개성 강한 공격수 로번이 “판 할은 내 생애 최고의 감독”이라고 칭송하는 등 선수들과도 호흡했다. 스스로도 자국 중형클럽 AZ 알크마르를 맡는 등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네덜란드 대표팀에 복귀했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고 있는 그의 축구 인생은 아직까지는 ‘실패의 성공학’으로 귀결된다.

히딩크는 성공에 너무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프랑스 월드컵에서 수비수로 중용했던 로날드 드 보어마저 지난 해 가을 “히딩크는 훌륭하지만 이젠 낡았다. (네덜란드엔)젊은 감독이 필요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는데, “낡았다”는 표현이 최근 히딩크를 잘 설명한다. 히딩크 감독은 공·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압박하는 ‘콤팩트 사커’를 잘 구현하는데 현대 축구는 더 나아가고 있다. 공격수가 수비를 하고, 센터백이 적진 깊숙히 치고 들어가며, 윙과 풀백이 위치를 바꾸는 등 보다 다이내믹한 축구가 도입되고 있다. 판 할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펩 과르디올라 감독 전술을 연구하는 등 시대의 변화에 익숙했고, 히딩크는 그렇질 못했다. 여기에 러시아와 터키에선 “걸핏하면 네덜란드로 돌아간다”는 등 정서적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린 선수들과의 관계에서도 진부한 ‘밀고 당기기’에 치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면에서 히딩크의 네덜란드 대표팀 하차는 ‘성공의 실패학’으로 부를 수 있다.

오늘의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오늘의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히딩크와 판 할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실패한 사람을 낙인 찍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는, 반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기다려주지 않는 그들의 문화도 인상적이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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