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리는 대표팀
남자 검도 대표팀 선수들이 31일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제16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단체전 결승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 끝에 일본에 우승을 내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도쿄(일본)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야 이놈들아, 왜 울어 온 힘을 다했는데….”
한국 남자 검도대표팀의 뜨거운 눈물을 본 이종림(76) 대한검도회장은 이 같이 말했다. 박용천(52) 남자 대표팀 감독은 물론, 주변 관계자와 취재진 모두 강하게만 여긴 남자 검객의 눈물에 뭉클해졌다. 검도계의 영향력이 강한 일본세에 밀려 늘 2인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검도.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여기면서도 간절하게 싸웠기에 허탈할 뿐이다.

9년 만에 세계 정상에 도전했다. 남자 대표팀은 31일 일본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제16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일본계 주심의 편파 판정 끝에 결승에서 일본에 1<2PK3>2로 졌다. 지난 2006년 대만 13회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남자 대표팀은 통산 6번째 준우승에 그쳤다. 선봉으로 나선 장만억(26·구미시청·4단)이 다케노우치 유야를 상대로 머리치기 한판승을 빼앗겼으나 2위 조진용(25·남양주시청·4단)이 가쓰미 요스케에게 짜릿한 연속 머리치기로 2-0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중견 박병훈(30·용인시청·5단)은 석연치 않은 판정 끝에 쇼다이 마사히로에게 손목치기 패배를 당했고, 부장 유제민(24·구미시청·4단)과 주장 이강호(37·구미시청·6단)는 상대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개새끼
미국 국적의 일본계 주심 팀 유즈(노란 원)가 한국인 국제 심판의 거센 항의에 모른 척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판정이 난무했다. 대회 개막 전부터 콘서트 개최 등을 이유로 부도칸 마루도 밟지 못하게 하는 등 종주국 답지 않은 텃세를 부린 일본.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의 잔디 상태를 확인하듯 검도 선수에게 나무마루 상태를 점검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보편적으로 대회 열흘 전 타국 선수단에게 대회장을 개방한다. 대회를 앞두고 남자 선수 스스로 “판정의 불리함을 알고 있으나 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제 경기를 펼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45년 만에 ‘무도의 성지’로 불리는 부도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일본의 텃세를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검도 근대화에 이바지한 일본은 세계적으로 자국의 영향력을 확산해왔다. 이번 대회 36명의 국제 심판 중 12명이나 자국 출신이다. 나머지 심판진도 국적만 다를 뿐 대체로 일본계 출신이 많다. 한국인은 6명이다.
남자 개인전 3위를 차지한 장만억(26·구미시청·4단). 4강전에서 캐나다 국적을 지닌 다구치 요시아키가 주심으로 나섰다. 아미시로 타다카츠와 겨뤘는데 머리치기를 인정받지 못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단체전 결승 주심을 본 미국 국적의 팀 유즈도 일본계. 1-1 상황에서 승부처였던 중견 박병훈(30·용인시청·5단)이 일본의 쇼다이 마사히로 머리를 정확히 가격했으나 심판진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유제민(24·구미시청·4단) 이강호(37·구미시청·6단)도 상대를 타격하고도 점수를 받지 못해 애를 태웠다.

경기 후 남자 대표팀은 울음바다가 됐다. 국제검도연맹(FIK) 부회장인 이종림 회장이 선수단을 찾아 위로했으나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억울한 마음에도 심판 판정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종목의 특성상 고개를 떨어뜨렸다. 특히 세계선수권 5회 연속 출전한 ‘살아 있는 전설’ 이강호는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될지 모르는 가운데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뭉클하게 했다. 손뼈 일부가 부러지는 부상에서도 진통제 투혼을 발휘한 박병훈은 “동료들에게 정말 고맙다”며 “다친 부위보다 팀에 도움이 될 생각만 했다. 정말 아쉽지만 꼭 다음 대회엔 정상에 오르겠다”고 했다. 조진용도 “어제 1시간 동안 기도하고 잠을 잤다. (황당한 판정으로 패배해서) 가슴이 아파 울었다. 3년 뒤 인천에선 우리가 꼭 우승하겠다”고 했다. ‘맏형’으로 제몫을 다한 이강호도 “스스로는 물론, 한국 검도인들에게 말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며 “후배들이 판정의 어려움 속에서도 잘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무도(武道)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지닌 일본. 검도인의 꿈인 올림픽 진출에 반대 견해가 많은 건 ‘스포츠’가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올림픽에 진출하면 판정의 우위를 가져가기 어렵다. 한국 등 경쟁국들에 정상의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위기에서 비롯됐다. 무도의 기본은 일본이며, 정상에서 군림하겠다는 의지다. 남자 선수들은 실력은 물론, 이 같은 최악의 환경을 뛰어넘어야만 우승에 도달할 수 있다. “솔직히 속상하지만 평생을 해온 일이니 끝장을 봐야 한다”는 태극검객의 다짐이야말로 진정한 무도 정신이 아닐까 싶다.

남자 검도대표팀
한국 검도인도 한류 스타다. 한국 대표팀이 부도칸 근처에서 몸을 풀자 일본인 팬들이 몰려와 사진 촬영 및 사인요청 하고 있다.

남자 검도대표팀
세계선수권 5회 연속 출전 기록을 지닌 한국 남자 검도의 간판스타 이강호(오른쪽)가 일본인 팬과 사진 촬영하고 있다.

남자 검도대표팀
유제민이 한 일본 어린이 팬이 공식 가이드북을 내밀자 사인하고 있다.

남자 검도대표팀
대표팀 손용희가 2명의 일본인 여성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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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 출전을 앞두고 이종림 회장 등의 격려를 받고 있는 남자 대표팀.

남자대표팀 준우승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한 남자 대표팀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도쿄(일본)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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