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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답은 늘 그렇듯 머릿속이 아닌 현장에 있다. 202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해 충격에 빠진 야구계가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과연 어떤 해법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진다. 들끓은 비난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요식행위에 그칠지 아니면 한국야구의 구조변화를 이끄는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낼지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럴싸한 말의 성찬(盛饌)이 아닌 실질적인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선 맥을 찌르는 현장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분석이 현장과 유리된 채 머릿속에서만 이뤄진다면 오히려 엄뚱한 처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야구의 리그 경기력과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라는 현실적인 솔루션은 경기인들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대충의 답은 나올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지금 한국야구의 문제점은 단순한 게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솔루션 역시 여러가지 문제점을 하나 하나 푸는 것보다 복합적인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본질과 구조를 건드리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본질은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금 한국야구가 처한 위기는 현상적 치료보다는 본질적 치유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야구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다. 그러나 과거와 달라진 환경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야구는 여전히 인기가 높고 매스컴의 노출빈도에선 다른 종목을 압도하고 있지만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 야구가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게 중요한 변화다. 과거에는 그야말로 ‘야구 천지’였다. 장비는 형편 없었지만 야구는 놀이문화로 세상을 지배했다. 학교 운동장은 물론 동네 공터,골목 골목마다 야구는 놀이문화로 어른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랬던 야구가 지금은 사라졌다. 야구는 “위험한 스포츠”라고 낙인이 찍힌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은 우선 학교 교장선생님의 머릿속에 각인됐고,자연스레 야구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됐다. 그 때문인지 야구는 어린 학생의 경험에선 소외된 종목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소외된 스포츠는 충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야구에 대한 특수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집단이 아니면 경험할 기회가 사라지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여자에겐 사각지대나 다름 없다. 반면 일본과 미국은 어떤가. 어릴 때부터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여자 학생들은 야구와 비슷한 소프트볼이 대체재로 경험되고 있다.

학교에서 야구가 소외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 때문이다. 딱딱한 볼의 위험성,유리창 등 기물파손의 가능성,무엇보다 심각한 부상 위험성 등이 야구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학생들의 경험기회 박탈은 자연스레 팀육성에서도 후선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결국 야구는 ‘하는 스포츠’에서 ‘보는 스포츠’로 급격히 퇴조되고 결국 선수자원에서도 타 종목에 견줘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린다. 선수층이 얇다보니 경쟁력은 자연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력을 구성하는 다양하고 치밀한 전략은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다. 그건 누가 뭐래도 경기인들이 해야할 몫이니까. 다만 구조적인 접근을 통한 정책적 결정에는 보이지 않은 부분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잘못된 진단은 엉뚱한 처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의 중장기적 플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야구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강화하는 전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어릴 때부터 야구에 대한 노출과 체험 기회를 늘리기 위해선 학교 체육수업에 야구를 어떻게 접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학교가 인프라 부족과 안전에 대한 걱정탓에 야구도입을 꺼린다면 우회전략을 택하는 방식을 써야 할 게다. 딱딱한 볼을 안전한 스폰지볼로 대체해서 만든 티볼이나 ‘주먹야구’인 베이스볼 5 등을 학교 체육시간에 적극 도입하도록 하자. 이게 바로 야구 생태계 확산의 지름길이다. 전문 선수의 육성에만 공들이는 지금의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야구의 단순한 생태계에 구조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선 야구의 외연확장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야구에 대한 경험을 확산하는 정책이 야구 생태계를 튼튼히 뿌리내리게 하며 이게 바로 경쟁력있는 시장을 확대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야구와 관련된 정책 역시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전적으로 공급자의 입장과 편의에 따라 결정됐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을 상대로 한 손쉬운(?) 정책이 톱다운 방식으로 강제됐던 게 사실이다. 더이상 이건 아니다.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 아닌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더 나아가 수요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절실하다. 세련된 장비를 갖추고 멋진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학교 밖 근사한 운동장에서 배타적으로 누리는 게 야구의 전부가 아니다. 동네 공터,학교 운동장에서 누구나가 놀이로 즐길 수 있는 환경과 제도가 마련돼야 야구는 발전할 수 있다. 답은 결코 멀리서 찾는 게 아니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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