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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19살, 콜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인 여고생이 저수지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학교는 침묵했고 현장실습을 나간 회사는 “가정불화가 심했고 돈을 밝혔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부모는 억장이 무너졌다.

지난 달 31일 서울 CGV용산 아이파크몰에서 베일을 벗은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는 2017년 전주의 한 이동통신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간 여고생이 사망한 실화사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영화는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돼 “충격적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춤을 좋아하고 당찬 성격을 지닌 소희(김시은 분)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뒤 인격체가 아닌 숫자로 평가받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담임교사가 어렵게 대기업 현장실습을 뚫었다고 보낸 회사는 대기업 직영이 아닌 하청 콜센터. 첫 출근을 위해 어색한 투피스를 차려입고 “드디어 사무직이 됐다”며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던 소희는 이곳에서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부터 배운다. 그러나 소희에게 돌아오는 건 욕설과 트집, 성희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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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희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짚어 나가는 1부와 극단적인 선택 후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경찰 유진(배두나 분)의 활약상을 그린 2부로 나뉜다. 평범한 사고사인 줄 알았던 유진은 파면 팔수록 기가 막힌 현실에 분노한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열악한 환경으로 현장실습을 보내는 학교, 이를 악용해 실습생을 착취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기업, 관리감독에 손 놓은 교육청까지 모두 소희의 죽음에 발뺌하려 든다.

영화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다. 하지만 소희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겪은 지옥같은 감정 노동자의 현실과 맞닥뜨리며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소희의 절박함에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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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야’ 이후 7년만에 뭉친 정주리 감독과 배두나, 신예 김시은의 빛나는 연기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은 2014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데뷔작 ‘도희야’에 이어 다시 한 번 고발성 짙은 영화로 관객의 시선을 훔친다.

정감독은 31일 시사회 후 이어진 언론기자간담회에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됐다. 이후 영화를 준비하던 중 2019년 여수에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교생 사망사건이 다시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뉴스에 보도되고 사회적인 분노가 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지는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참담했다.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배두나는 ‘도희야’에 이어 7년만에 정주리 감독의 손을 잡았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브로커’와 더불어 또 형사 역할이다. 같은 해 국제영화제 출품작 두 작품에서 형사 역할을 맡았지만 연기의 톤과 결은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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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유진은 배우 배두나의 이름을 널리 알린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의 엉뚱한 몽상가 태희의 20년 뒤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수사하며 절망하는 유진의 모습이 그 자체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유진같은 경찰이 드물다는 점은 깊은 한숨을 안긴다.

신예 김시은은 당찬 여고생에서 깊은 좌절을 맛보는 현장실습생의 그것을 날 것 그대로 표현했다. 기존 미디어에 알려지지 않은 그의 얼굴의 반짝임이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한다.

김시은은 “영화를 촬영할 때만 해도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막상 해외에 나가보니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 싶었다. 다른 나라 곳곳에도 수많은 소희가 존재할 수 있겠다 싶어 좋은 시나리오를 써 주시고 세상에 알리게 해주신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고 공을 돌렸다.

영화는 오는 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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