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과 창 컷

[스포츠서울 | 고진현 전문기자]변화는 곧 익숙함으로부터의 탈피다. 변화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불편함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체육의 패러다임에 비로소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보는 체육’에서 ‘하는 체육’으로의 변화, 느리지만 분명한 그 흐름을 느낄 수 있어 반갑기 그지 없다. ‘보는 체육’이 머리로 즐기는 것이라면 ‘하는 체육’은 곧 몸으로 하는 체육이다. 체육 본연의 가치 회복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지난 4일 경기도 고양시 농협대학교에서 막을 내린 ‘2022 NH농협은행 올원(ALL ONE) 아마추어 테니스오픈’은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무려 1000여명의 테니스 동호인이 참가한 이 대회를 통해 한국 체육의 밝은 미래와 긍정적 변화를 읽을 수 있어 뿌듯했다.

전문선수들의 기량과 견줄 수는 없지만 그들의 표정 하나 하나에 기쁨과 행복 그리고 열정이 흘러 넘쳐 체육 본연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확인한 고무적인 변화는 젊은층의 체육 참여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동호인 대회에 이른바 MZ세대들이 대거 참여한 사실은 바람직한 체육 생태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그동안 생활체육은 중·장년층이 중심이 됐는데 젊은층의 유입이 가속화되면 체육의 토대를 훨씬 탄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체육의 종전 패러다임은 소수 정예의 전문선수들을 강한 훈련으로 길러내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목표에 집중했다. 체육의 국제 경기력, 이게 더 이상 생명력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경쟁은 체육에서 결코 버릴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의 진보와 역사의 발전을 고려해 체육에서도 다양성의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한국체육의 패러다임은 이제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감소는 저변이 얇은 전문체육의 기반을 흔드는 충격파로 작용한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 변화는 어쩌면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기본 뼈대가 바로 새로운 체육 생태계의 구축이다. 기반을 튼튼히 하고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 전문체육과 생활체육 그리고 학교체육이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체육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결국 ‘보는 체육’에서 ‘하는 체육’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한국 체육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비전인 셈이다.

한국 체육이 ‘하는 체육’보다 ‘보는 체육’에 익숙했던 이유는 체육이 수단적 가치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근대 체육의 유입기인 일제 강점기에선 체육이 민족적 울분을 토해내는 도구로 활용됐고 압축성장기에선 체육이 국가의 위상을 제고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복무했다. 이제 세상은 변했고 체육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 직면했다.

체육은 더 이상 ‘몸의 퍼포먼스’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몸과 머리는 서로 이어진 하나의 ‘공동 운명체’라는 얘기는 설득력이 있다. 몸을 쓰게 되면 창조적 상상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내로남불’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고질병도 ‘몸의 철학’으로 충분히 치유할 수 있다. 세상을 머리로 사유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몸의 철학’을 우습게 여기는 사회가 ‘내로남불’이라는 이상기류에 쉽게 빠지는 이유다. 세상은 머리로 사유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고 이해하라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훨씬 더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몸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한국 체육이 ‘보는 체육’에서 ‘하는 체육’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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