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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수진(서현진)은 잘 나가는 변호사다. 비록 이혼했지만 하나뿐인 딸의 교육을 위해 전 남편이 머무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낼 만큼 욕심많은 엄마기도 하다.

젊은 시절, 해외 근무로 딸의 성장 모습을 보지 못한 인우(안성기)는 그런 딸이 자랑스럽다. 수진이 변호사가 됐을 때 그는 놀랍다고 했다. 결혼해 손녀를 낳았을 때는 고마워했다. 놀랍고, 고마운 딸이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을 안 순간 그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을 잃고 어린 아이가 돼 가는 수진을 보살핀다.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영화 ‘카시오페아’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30대 변호사 딸을 간병하는 아버지의 애틋하고 눈물겨운 부성애를 다뤘다.

과거 30대 알츠하이머 환자를 소재로 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천일의 약속’처럼 대개 알츠하이머 환자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가 연인관계, 부부관계, 혹은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과 달리 상처한 아버지가 이혼한 젊은 딸을 돌본다는 설정이 영화의 관전포인트다.

영화는 부녀의 관계에 오롯이 초점을 맞춘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수진, 그런 딸을 묵묵히 감내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인우의 간병기는 영화가 아닌 일상 속 한 장면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민배우로 꼽히는 안성기와 로맨스퀸이라 불리는 배우 서현진의 부녀연기 호흡은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서현진은 병의 진행속도에 맞춰 서서히 변해가는 수진의 투병기를 온몸으로 표현해낸다. 매일 운전하던 출퇴근길에서 방향을 잃어 혼란스러워하고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날이 선 모습,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다 끝내 기억을 잃고 아이같은 미소를 짓는 환자의 모습을 폭넓게 그려냈다.

발병 초기만 해도 다소 부담스러울 만큼 신경질적인 그의 표정이 미소로 변할 때쯤 극장 곳곳에서 훌쩍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현진은 17일 언론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진 역 연기를 위해 알츠하이머를 앓은 지인과, 외국 변호사 중 알츠하이머를 앓는 이의 동영상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수진의 병세가 악화된 뒤에는 아예 노메이크업으로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안성기의 연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인의 몸과 아이의 마음을 가진 딸을 목욕시키고, 기저귀를 채우고, 혹여 나쁜 일을 당할까 걱정돼 한마디, 한마디 교육시킨다. 딸을 향한 사랑의 깊이를 짐작조차 하기 힘든 부성애와 희생은 안성기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스크린에서 구현됐다. 서현진의 연기가 “이래도 안울래?”라고 작정했다면 안성기의 연기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아도 가슴 깊이 먹먹함을 안긴다.

영화 ‘페어러브’(2009)로 안성기와 호흡을 맞췄던 신연식 감독은 “안성기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의외로 부성이 강조된 역할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영화 ‘인턴’속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 같은 관계를 부녀지간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젊은 시절 딸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리버스 육아’에 방점을 찍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제목인 ‘카시오페아’는 북극성 옆에 위치한 가장 밝은 별자리를 뜻한다. 신 감독은 “가족 관계는 북극성처럼 직접 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내가 갈 길을 보게 해주는 ‘카시오페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제목의 의미를 전했다.

서현진은 “대본을 읽었을 때는 ‘수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촬영할 때는 ‘아빠와 딸’ 이야기라고 여겼지만 시사회에서 영상을 접하니 가족의 이야기였다. 부모자식 관계는 가장 가까우면서 많이 싸우는 ‘애증의 관계’ 아닌가. 그걸 3대에 걸쳐 보여준다. 우리 영화가 관객들에게 슬픔보다 따뜻한 영화로 비쳐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루스이소니도스, 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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