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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록밴드 넬과 힙합그룹 에픽하이.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팀의 리더 김종완과 타블로는 가요계 소문난 절친이다. 무명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음악적인 교류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서태지 컴퍼니를 떠난 넬이 2006년 에픽하이 소속사 울림 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며 아예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양 팀의 전성기도 비슷하다. 에픽하이는 2005년 발표한 3집 수록곡 ‘플라이’로, 넬은 2008년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음원차트를 장악했다. 이들의 음악은 당시 인기의 척도였던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종종 사용되기도 했다.

1999년 결성한 넬이 데뷔 23년, 2003년 팀을 꾸린 에픽하이는 데뷔 19년차에 접어들며 각각 한국 록과 힙합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아이돌 그룹의 ‘중년 아이돌’이 됐지만 공연장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열정과 무대매너, 그리고 20여 년 동안 함께 해온 코어 팬들의 탄탄한 지지는 여느 아이돌 그룹 못지않다. ‘거리두기 완화’로 떼창과 함성, 스탠딩이 가능해진 5월, 한 여름보다 뜨거웠던 두 팀의 콘서트 현장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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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공연·코첼라 뒤 앵콜공연까지...‘힙합대디’ 에픽하이의 지치지 않는 열정

“모두 일어나 소리 질러”

1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거리두기’가 사라진 공연장 분위기는 ‘쇼미더머니’처럼 달아올랐다. 정규 10집 앨범 ‘에픽하이 이즈 히어 상’(Epik is here 上)의 인트로 ‘레슨제로’의 선율이 울리자 장내는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다.

타블로, 미쓰라, 투컷 3인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너나할 것 없이 모든 관객이 일어나며 120분간의 공연이 올 스탠딩으로 진행됐다. 누구 하나 자리에 앉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12월 개최된 ‘에픽하이 이즈 히어’의 앙코르 콘서트다. 지난 4월, 약 한달 가량 진행된 북미투어와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대장정의 마무리를 짓는 공연이기도 하다. 타블로는 “연말에 만났을 때만 해도 일어나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며 “그때 ‘우리 다시 만나면 마음껏 소리지르자’고 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질 줄 몰랐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날 객석에 뿌린 생수만 최소 5병 이상이었다.

타블로의 말처럼 이번 콘서트는 지난 연말 공연과 달리 관객이 제4의 멤버로 함께 했다. 떼창과 함성에 에너지를 받은 듯 에픽하이는 공연 내내 20여 년의 시간을 오갔다. 지금의 에픽하이를 있게 한 초창기 히트곡 ‘원’, ‘플라이’, ‘팬’은 물론 정규 10집 앨범 수록곡까지 라이브로 들려줬다.

2월 발매된 정규 10집의 두 번째 파트 ‘에픽하이 이즈 히어 하’(Epik is here 下) 수록곡이 이날 관객에게 처음으로 선보였다. 현란한 래핑, 감각적이면서 세련된 디제잉,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무대매너는 20여 년간 차곡차곡 쌓인 ‘힙합대디’들의 연륜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에픽하이의 스페셜 멤버로 불리는 가수 윤하의 게스트 참여는 공연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윤하 역시 관객의 열기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한층 흥이 난 윤하는 10집에서 입을 맞춘 ‘그래서 그래’를 비롯, 자신의 신곡 ‘사건의 지평선’의 첫 라이브 무대를 펼쳤다. 그는 마지막 무대에서 에픽하이의 최고 히트곡 ‘우산’을 들려줬다. 청아한 윤하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우자 2000년대 초반으로 시계가 돌아간 듯 했다.

타블로는 “힘든 일을 겪다보면 일상이 이상이 된다”며 “지금 이순간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10집 수록곡 ‘샴페인’. “숨 쉬는 이유였지 무대 위 모든 순간이/고통과 미소 눈물과 환희로 뒤엉킨 지난날들이 내 눈앞을 스치고/사라져 간 이들과 살아남은 모두를 위해서 잔을 들어 머리 위로”라는 가사처럼 20여 년을 함께 한 이들을 위해 공연장의 모든 이들이 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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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기억을 걷는 시간’ 떼창의 소중함, 이제야 깨달았죠

지난 달 22일부터 이달 8일까지. 밴드 넬은 팬데믹으로 소통하지 못했던 지난 2년 여 시간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9회에 걸쳐 공연을 진행했다.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넬스 시즌2022 싱글즈’는 매년 봄·가을마다 진행하는 넬의 공연 브랜드 ‘넬스 시즌’의 2022년 봄 버전이다. 넬은 팬데믹 기간에도 꾸준히 공연을 진행했지만 방역지침 때문에 적막함 속에서 록무대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싱글즈’라는 공연의 부제처럼 이번 공연은 넬이 ‘싱글’로 발매한 음원위주로 선곡했다. 최근 공연에서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고양이’(2003), ‘스타쉘’(2015), ‘그리워 하려고해’(2016) 등은 오랜 마니아 팬이 아니면 알기 힘든 곡들이다. 그러나 유니버설 아트센터에 모인 팬덤의 떼창 데시벨은 이 클래식한 공연장의 지붕을 뚫을 듯 했다.

멤버들 역시 모처럼 팬들과 주고 받는 에너지에 공연 내내 벅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공연을 마친 뒤 만난 이재경(기타)은 “이번 공연은 좀 시끄러웠죠?”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리더 김종완은 한층 수다스러워졌다. 그 자신도 “우리 공연을 처음 오는 분들은 원래 우리가 이렇게 말이 많은 줄 알 것”이라고 겸연쩍어하면서도 곡에 얽힌 사연을 하나하나 들려줬다. 멤버들이 만난 뒤 가장 먼저 발매한 싱글 ‘어차피 그런 거’, 이별의 감정을 담은 ‘잇츠 오케이’, 배우 정려원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3인칭의 필요성’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공개됐다.

공연의 1부가 록발라드 위주의 조용한 곡이 주가 됐다면 2부는 반전이었다. 김종완은 “2년 4개월 동안 침묵의 공연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기대된다”며 ‘굿나잇’, ‘유희’, ‘어떤 날 중에 그런 날’, ‘인어의 별’, ‘부서진’ 등 록킹한 선곡을 이어갔다. 넬의 오랜 팬들이라면 가장 기대하는 ‘오션오브라이트’ 때는 흥분한 팬들의 함성 때문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베이스의 이정훈은 “이번 공연은 여러분(관객)의 컴백 무대”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지금의 넬을 있게 한 ‘기억을 걷는 시간’은 팬들과 협업으로 완성됐다. 김종완은 “너무 많이 부른 곡이라 셋리스트에서 뺄까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방역지침이 바뀌고 관객과 함께 부르니 곡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팬데믹으로 이 곡이 갖고 있는 의미와 역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수백, 수천 번은 더 불렀을 법한 곡이지만 2년 동안 오롯이 가수 홀로 불렀던 곡의 후렴구가 팬들의 목소리로 완성됐다. 공연의 3대 요소가 왜 무대, 가수, 관객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은별기자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아워즈, 스페이스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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