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제 (4)

[스포츠서울 | 심언경기자]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에 한 번, 치밀한 캐릭터 분석에 두 번 놀랐다. 눈을 반짝이며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왠지 그의 바람이 이뤄지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tvN ‘킬힐’, 티빙 ‘돼지의 왕’을 마친 배우 정의제(32)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의제는 깔끔한 마스크와 차분한 어조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 속 인물과 달랐다. “훈남 배우의 계보를 잇겠다”는 칭찬에 크게 기뻐하기도 했다. 그는 “그랬으면 좋겠다. 연기도, 외모도 잘 관리해서 꼭 그렇게 돼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의제는 ‘킬힐’에서 UNI 홈쇼핑 입사 6년 차 PD 준범을 연기했다. 성공하기 위해 모란(이혜영 분)과 부적절한 관계를 서슴지 않지만, 위태로운 우현(김하늘 분)을 향한 사랑은 진심인 인물이다. 언뜻 봐도 파격적인 설정이다. 우현, 모란, 옥선(김성령 분)의 치열한 쟁투 속 존재감을 띠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그의 무기는 철저한 캐릭터 이해, 탄탄한 서사 구축, 그리고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였다.

“(연기하기에)정말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이 욕망이 어디까지 가고 싶은 걸까’, ‘어느 정도의 마음이길래 그렇게 할까’, ‘(우현의)배경을 알고도 마음이 커지는 이유가 뭘까’, ‘후배한테는 왜 그렇게 까칠할까’ 생각했다. 혼자 서사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선배님들과 좋은 케미스트리를 내고 싶어서 세 여자를 둘러싼 사건을 읽고 이해하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궁금하거나 애매한 지점이 생기면 감독님들과 작가님들께 여쭤봤다.”

준범은 입체적인 면모를 지녔다. 우현, 모란, 성우(문지인 분) 등 맞붙는 인물들과 다채로운 관계성을 구축해 극의 재미를 높였다. 정의제는 이러한 캐릭터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 위해 장기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준범은)우현 선배님보다 모란을 먼저 경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내 선택이었든 회사 분위기에 합리화됐든, 너무 자신한테 상처가 되고 자존심이 상했던 때도 있었다. 우현을 좋아한 이유가 그런 욕망에 가득 찬 모습에 연민과 동질감을 느껴서인 것 같다. 후배들한테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까칠했다고 생각한다. ‘너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됐으면 한다’랄까. 사랑이 주는 힘이 크다 보니 모란이 불러도 거절하고, 후반부에서 우현에게 처음 감정을 드러냈다. 이렇게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어려웠다.”

준범과 동화되기 쉽지 않았지만 닮은 점도 있다고 했다. ‘승부욕’이다. 정의제는 “나도 잘하고 싶은 게 생기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어렸을 때 승부욕이 강해서 남이 나보다 잘하면 질투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기를 치열하게 하고 싶다. 준범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해가 됐다”고 털어놨다.

정의제에게 ‘킬힐’은 “감사한 작품”이자 “많이 남은 작품”이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같은 현장에서 호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없을 때는 선배들의 연기를 보며 배웠고, 촬영을 함께할 때면 선배들의 조언을 새겼다. 그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김하늘, 이혜영, 김성령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김하늘 선배님은 차분하시고 섬세하시다. 나와의 케미스트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나랑 붙는 신을 같이 고민해주고, 감독님과 감정을 고민해주셨다. 리허설이라든가 세심한 부분에서 경험이 많으니 이끌어주셨다. 이혜영 선배님은 독보적이다. 그런 느낌의 톤이 너무 좋게만 와닿았다. 혼자 하시는 감정 신이 많아서 구경을 많이 했다. 김성령 선배님과는 많이 붙진 못했지만 우아하고 여유가 있으시다. 닮고 싶었다. 세 분의 공통점도 있었다. (연기에)몰입하실 때 힘이 좋으시더라.”

정의제 (4)

정의제는 ‘킬힐’과 비슷한 시기에 작업한 ‘돼지의 왕’에서도 대선배 여배우와 함께했다. 극중 서울서동경찰서 강력2팀 막내 진해수로 분했던 그는 같은 팀 경위 강진아 역을 맡은 채정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킬힐’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고 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채)정안 선배님은 매력과 장점이 어마어마하게 많으시다. 그리고 엄청 털털하시다. 분위기 메이커로, 털털함 속에 섬세함이 있다. 나를 좋게 봐주셔서 긍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좋은 말도 많이 해주셨다. 진짜 선배님이고 극에서도 선배여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선배님과 돈독하고 밝은 신도 있었는데 전개상 편집됐다. 멜로는 아니지만 내가 연하남 느낌이었다. 그런 신도 너무 재밌고 편안하게 했다. 다른 작품에서도 뵙고 싶다.”

연달아 묵직한 작품에 참여한 정의제는 이제 가벼운 느낌의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킬힐’ 카메라감독님께서 24~5살로 보인다고 하셨다. 20살 때부터 이 얼굴이었다. 하하. 그땐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2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더 성숙해지기 전에 청춘물이나 로맨틱코미디를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러한 의지는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만에서 먼저 주목받은 그는 2016년 음반을 내면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과 단편 영화에 참여한 이력도 있다. 매 순간이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는 “그간 노력했던 것들이 다 재산이 됐다. 어두운 작품을 하든 청춘물을 하든 하루하루 살면서 겪는 것이 배우에게 재료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며 웃었다.

한때 연기자 중 노래를 제일 잘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던 정의제는 이제 ‘대중이 원하는 배우’를 목표로 삼았다. 그는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어느 순간부터 치열하게 고민하고 얻은 결론을 메모하고 있더라.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다. (대중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다. 그렇게 내 일을 잘 해내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의제 (4)

notglasses@sportsseoul.com

사진|HB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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