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팔이의일기

[스포츠서울]첫 경기가 끝났다. 전력이 떨어지는 태국이라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 타자들은 100㎞대 공을 보고 꽤 당황하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믹스트존에서 많은 분들이 “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느냐”고 물으셨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 진지하게 임했다. 상대가 약하다고 웃으면서 던지면 태국 선수들 기분이 어떨까 싶었다. 놀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던졌다. 공인구에 대한 감각도 첫 경기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낮게 제구하는 감각은 조금 찾아야 겠다.

선수촌에는 엄청 큰 식당이 있다.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땐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2008베이징올림픽 때에는 햄버거 가게가 있어 ‘셔틀’을 시킬 수 있었는데, 인천에는 햄버거가게가 없다. 완전 망했다. 병역 미필자들을 부릴 수 있는 도구 하나가 사라졌다. ㅋㅋ. 그래도 빨래는 갖다준다. 이제는 하나의 전통이 된 모양이다. 미필자들이 선수촌 내에 있는 빨래방에 유니폼 등을 갖다주고, 이튿날 가져온다. 햄버거 가게가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SS포토] 김광현, 콜드게임 가자
[스포츠서울] 한국의 김광현이 2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B조예선 1차전에서 태국 타자를 상대로 힘차게 투구하고 있다. 문학|최재원기자shine@sportsseoul.com

선수촌이 들어선 곳은 얼마전까지 그린벨트였다고 한다. 주소도 없어 배달음식을 시켜먹기도 애매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TV도 없고 냉장고, 에어컨, 아무 것도 없다. 넓은 집에 침대 이불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래서 대표팀 분위기가 좋다. 장정 여섯 명이 아무 것도 없이 모여있으니, 수다 삼매경에 빠지지 않겠는가. 자연스럽게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우리방에는 한현희 이재학 이태양 양현종과 (나)지완이 형이 함께 생활한다. (이)태양이는 호기심이 많다. 계속 선배들을 쫓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물어본다. 투수이다보니 타자들을 상대하는 요령, 경험담 등을 주로 물어보는데 배우려는 자세가 돼 있다. 좋은 후배인 것 같다.

한 방을 쓰는 (한)현희는 내 스타일이다. 민감하지 않아 편하다. 잠자리가 바뀌거나 생활환경이 바뀌면 예민해지는 선수들이 종종 있다. 나는 잠자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성격인데, 현희도 그렇다. 수다를 떨다 언제든 꿈나라로 빠져들 수 있다. 성격도 서글서글해 너무 귀엽다. 밖에서는 다른 팀 선수들과 섞여 있다보니 군기반장 역할을 할 선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팀에서 유지하던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하기 때문이다. 눈치봐야 하는 선배들이 없는 곳이니, 자칫 풀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대표다. 기본적인 예절과 선수들간 지켜야 할 것들은 알아서 지킨다. 각자 소속팀 선배들이 있기 때문에 너무 자유롭다 싶으면 선배들이 잡아준다. (한)현희가 너무 천진난만해지면 (박)병호 형이나 김민성 강정호 등이 주의를 준다. 그러면 꼼짝 못한다. 대표팀 생활은 사실 이런 것들에 적응하다 끝난다.

[SS포토]  김광현, 너무 싱겁게 끝났네
[스포츠서울] 김광현(오른쪽두번째)과 한국 선수들이 태국과 경기에서 5회 콜드게임 승을 거둔 뒤 관중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걸어 나오고 있다. 문학|최재원기자shine@sportsseoul.com

개인적으로는 결승전보다 준결승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24일 대만전에 지면 준결승에서 일본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해 놔야 한다. 시나리오대로 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하면, 그 때 가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면 된다. 그런데 표를 구할 수 없다. 준결승, 결승전에 가족들을 초대하고 싶은데 표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에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거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까. 햄버거 가게가 없는 것보다 사실 이 점이 더 아쉽다. 누가 표 좀 구해주세요. ㅠ.ㅠ.
국가대표투수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