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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선수들이 4일 서울전에 앞서 오범석의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 박준범기자] “꿈꿔왔던 은퇴식, 19년이 빠르게 지나갔네요.”

포항 스틸러스 오범석(37)은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1’ 38라운드 FC서울과 홈 경기를 끝으로 축구화를 벗는다. 전반 14분 그를 위한 1분간 박수가 쏟아졌다. 올 시즌 그의 등번호 14번에 맞춘 이벤트였다. 또 이날 선발 출전한 오범석은 전반 32분, 32번을 단 박승욱과 교체됐다. 32번은 오범석이 지난 2003년 포항 입단 당시 달았던 등번호였다.

오범석은 교체되면서 포항 동료들은 물론 상대 팀인 서울 선수들의 인사도 받았다. 특히 나상호는 깍듯이 인사하며 예우를 보이기도 했다. 안익수 서울 감독과도 진한 포옹을 나눴다. 오범석은 “사실 외국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제가 꿈꾸던 은퇴식이었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구단에 감사드린다. 되게 영광스러웠던 은퇴식이었던 거 같다”고 강조했다.

1984년생으로 한국 나이 38살인 오범석이다. 지난 시즌 13년 만에 포항으로 돌아와 2시즌을 뛰었으나, 그 역시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다.“여름부터였다”고 말문을 연 오범석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첫 경기 뛰고 나서 종아리 부상이 다시 찾아왔다. 그때 많은 생각을 하면서 그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90분을 뛸 수 없겠다는, 내가 원하는 수준의 축구를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지금 나이에서도 축구를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싫었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담담하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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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오범석(오른쪽)과 서울 기성용.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오범석은 경기 후 은퇴식에서 소감을 말하다 울컥해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포항 스틸야드를 보며 ‘언젠간 뛰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아이가 19년이 지나 포항에서 은퇴하게 됐다. 19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울컥하게 했다”고 돌아본 뒤 “은퇴한 친구들이 모두 ‘울 수밖에 없다’라고 하더라. 진짜 울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는데 나이 먹어서 그런지 감수성이 예민해졌다”고 미소 지었다.

은퇴식에는 오범석의 가족들이 함께 자리를 빛냈다. “아내는 오래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내심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선수로 이제 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웃은 뒤 오범석은 “그래도 아들이 6학년 될 때까지 선수 해달라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 당분간 특별한 계획은 없고,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오범석은 끝으로 후배들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보다는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프로는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열심히는 당연히 포함돼 있다”면서 “신광훈과 신진호 두 선수가 내년부터는 (포항의) 중심을 잡을 것이다. 어떻게 전통을 지켜가면서 준비하는지를 알고 있는 선수들”이라고 믿음을 드러냈다.

beom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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