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키움 정찬헌, 승리를 위해!
키움 정찬헌이 2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키움과 삼성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고척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해봤죠. 안해봤겠어요?”

키움 정찬헌(31)이 작은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는 “지금 구속 1~2㎞ 증가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던거 잘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찬헌은 지난 2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삼성과 KBO리그 정규시즌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6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팀이 5강 턱걸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요한 길목에서 우승 도전 중인 삼성을 제압한 귀중한 승리였다. 이날 6이닝을 던져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이닝(114.1이닝)을 경신(종전 110.1이닝)했고, 한 시즌 최다인 9승을 따냈다. 3점대 평균자책점은 실패(4.01)했지만, 허리수술과 트레이드 등 곡절을 겪고 거둔 값진 소득이다.

이날 최고 구속은 140㎞에 그쳤지만 팔색조로 부르기 손색없는 투구를 했다. 정찬헌은 “한 이닝씩 끊어간다는 기분으로 던졌다. 좋은 불펜진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에 전력투구를 했다”고 말했다. 느린 공을 더 느리게, 더 많이 움직이도록 던지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만만디’ 투구가 특히 빛났다. 그는 “지난해보다 많은 경기에 나와 긴 이닝을 소화한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잘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자신에게 하고 싶다”며 웃었다.

[포토]힘차게 공 뿌리는 키움 선발 정찬헌
키움 정찬헌이 2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키움과 삼성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고척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LG 시절 마무리 투수로 27세이브를 따냈을 만큼 구위가 좋은 투수였다. 입단 초기에는 15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기도 했다. 허리 수술 이후 구속보다 제구와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맞혀잡는 투수로 변신을 꾀했고, 올해 풀타임 선발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빠른 공을 던졌던 투수는 구위를 회복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게 가장 힘들다. 정찬헌은 “(구속 회복을 위한 노력을)해 봤다”면서도 “안되더라”며 웃었다. 그는 “강속구를 던지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구속 1~2㎞ 끌어 올리려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더 정확하게 던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지금 가진 강점을 잘 지키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정찬헌의 투구를 보며 배영수(두산 코치)가 떠올랐다. 불같은 강속구로 전대미문의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비공인) 기록을 세웠던 배영수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후 구속 회복을 못해 마음 고생을 했다. 속구 하나로 리그를 평정했던 그는 구속을 잃은 뒤 큰 상실감에 빠졌다. 방법을 찾기 위해 비시즌만 되면 홀로 야구 유학을 떠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긴 여정 끝에 내린 결론은 “힘보다 밸런스”였다.

배영수는 2019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에 마운드를 지켰다. 현역 마지막 등판을 누구보다 영광스럽게 보낸 그는 “구속에 대한 집착을 일찍 버렸더라면, 야구를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구속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정찬헌은 이미 깨달았다. ‘볼넷 남발 시즌’을 치르고 있는 젊은 투수들이 곱씹어봐야 할 깨달음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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