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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 선수들이 지난 1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1만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K리그를 대표하는 ‘동해안 라이벌’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행 길목에서 격돌한다. ACL에서 K리그 클럽끼리 4강에서 맞붙은 건 지난 2016년 전북 현대와 FC서울 이후 5년 만이다.

K리그 팀은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을 포함해 이 대회에서 통산 12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AFC 가맹국 중 최다 횟수를 자랑한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중국 슈퍼리그(CSL)와 일본 J리그에 밀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K리그는 지난해 울산이 8년 만에 ACL을 제패한 데 이어 올해 2년 연속 결승 진출 팀을 내놓는 데 성공하면서 아시아 최고 리그로 위상을 회복하는 데 발판을 마련했다.

내용도 훌륭했다. 8강에서 포항 스틸러스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로 보였던 J리그 강호 나고야 그램퍼스를 3-0으로 완파하며 12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또 K리그1에서 우승 경쟁 중인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는 4강행 티켓을 두고 격돌, 연장 120분 사투를 벌이며 명승부를 연출했다. 울산이 전북을 3-2로 꺾고 결승에 올랐지만 양 팀 모두 K리그 최고의 팀다운 경기력으로 팬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현대가 라이벌전’에서 웃은 울산은 대회 2연패를 향해 더욱더 자신감을 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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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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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의 쾌속 질주는 지난해에 이어 코로나19 변수에 맞춰 철두철미하게 ACL을 대비한 각 구단 코치진, 프런트의 노력이 컸다. 여기에 기폭제 구실을 한 건 ‘8강과 4강 국내 개최’다. 포항이 일본이나 제3국에서 경기를 치렀다면 3-0의 압도적인 점수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울산-전북이 어느 때보다 온 힘을 쏟아낸 건 모처럼 1만여 관중이 뜨거운 함성을 내지르며 사기를 북돋웠기 때문이다. AFC는 지난 7월 조별리그를 마친 뒤 참가 국가 리그에 8강 및 4강 중립지역 개최를 제안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여파에 맞춰 토너먼트를 중립지역에서 여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6강에 K리그 4개 팀 전원 진출한 것을 고려해 국내에서 유치하는 것을 검토했다. 무엇보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방역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뿐더러 K리그 선수를 해외에 보내는 것보다 국내에서 안전하게 경기를 치르게 하는 게 낫다는 데 견해를 모았다. 또 사실상 4개 팀 모두 홈경기와 같은 분위기에서 뛸 수 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프로연맹은 AFC에 전주 개최(전주월드컵경기장)를 신청했다. 전주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전북이 빠툼 유나이티드(태국)와 16강전을 치르게 됐는데,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와 맞붙은 울산보다 8강 진출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AFC는 지난 7월30일 프로연맹의 신청을 승인했고, ACL 8강과 4강 경기는 전주에서 열리게 됐다.

프로연맹은 AFC 승인을 확인한 뒤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에 나섰다. 때마침 일본이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 유행으로 자가격리 면제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된 터라 조율이 필요했다. 프로연맹과 문체부는 철저한 버블 시스템 운영 계획을 수립했고, 대회 기간 각 팀의 외부 접촉 차단, 주기적 PCR 검사, 의학 전문가 현장 투입 등을 계획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도 문체부와 방역당국에 ACL 국내 유치 당위성을 밝히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등 지원 사격했다. 문체부도 아시아 축구 클럽 대회를 통한 국위선양이라는 명분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당국은 애초 올림픽, 월드컵 등 국가대표 경기만 방역 예외로 인정한다는 기조였다. 그러나 문체부의 전향적인 견해에 공감하면서 ACL 국내 개최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였다.

또 K리그 팀이 순항하는 데 프로연맹 기술위원회 TSG(기술연구그룹) 분석자료도 한 몫했다. TSG는 ACL 상대팀의 자국 리그 경기를 분석한 영상을 K리그 팀에 제공하고 있다. 김기동 포항 감독은 조별리그 참가 전 기자회견에서 “TSG로부터 제공받은 영상이 상대 전력 분석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ACL 8강과 4강 국내 유치는 ‘신의 한 수’가 돼 돌아왔다. 코로나19 특수 상황에서 경기력은 물론, ACL에 대한 팬의 관심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도 이바지했다. 이밖에 국내 방역의 우수성도 아시아 전역에 재차 강조할 수 있었고, 프로스포츠 위드코로나 모델 형성에도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단과 연맹, 프로스포츠협회, 문체부로 이어지는 민·관 협력이 프로스포츠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선례로 남게 됐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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